2018. 10. 15. 20:20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제불(諸佛)께서 공법(空法)을 설하신 것은 모든 지견을 부수기 위함인데, 다시 그 공을 집착하면 제불이 구제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생하였다 함은 오직 공이 생한 것이고, 멸한 때도 오직 공이 멸한 것이다.
실은 한 가지도 생한 것이 없고, 실은 한 가지도 멸한 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탐욕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마음, 일체법은) 안에 있지도 아니하고 밖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다.
분별이란 공(空)한 것인데 범부는 (분별로 인하여) 휘둘려진다. 그릇됨(邪)과 올바름(正)이 내(內)와 외(外)에 없으며, 또한 제방(諸方) 어디에도 없다. 분별이란 공한 것인데 범부는 휘들러진다. 모든 것이 또한 그와 같다.
[역자 해설]
1. <능가경(7권본)> 권4 <무상품(無相品)에 "차라리 아견(我見)을 수미산처럼 일으킬지언정 공견(空見)을 일으켜 증상만(增上慢; 자신이 空을 알았으니 다른 중생보다 뛰어나다고 아만심을 내고, 그 공견을 뛰어난 법으로 알아 이에 사로잡히는 것)을 품지 말라"고 하였다. 공의 법문을 여러모로 역설하신 것은 유와무, 생과 멸 등 갖가지 지견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함이다 공이어서 얻을 바 취할 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이라는 상념, 법상(法相)에 향하거나 취착(就捉)하게 되면 이미 그 공의 뜻에 이긋나게 되어 버린다. 공이라 설하니 그 뜻은 놓쳐버리고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하듯, 그 지시하는 공이라는 법상에 집착하기 쉽다. 그러면서 자신이 특별한 공의 법을 알았다고 자만심을 낸다. 또한 경에 " 모든 지견(知見)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여 공을 설하였는데 공에 집착해 버리면 이제 약이 없다"고 하였다. 위의 <능가경 무상품>에 설한다.
有無是二邊(유무시이변) 유,무의 지견은 두 가지 치우침이요.
乃至心所行(내지심소행) 심소행(마음의 상)이니
淨除彼所行(정제피소행) 저 심소행을 깨끗이 없애면
平等心寂滅(평등심적멸) 평등심과 적멸이라네.
공(空)을 설하는 뜻은 바로 심소행(心所行), 지견(知見)의 상(相) 내지 상념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행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데 있다. 공견(空見)에 향하고 있으면 아직 그 심소행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견의 심소행은 자만심이 함께 하기에 넘어서기 어렵고, 부서지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아견(我見)을 수미산처럼 쌓을지언정 - - -"이라 하였다. 공견에 취착하면 그만큼 아견도 증장된다. 아견을 전제로 하여 공견도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공견으로 증상만이 생기니 증상만은 곧 아견의 증장을 뜻한다.
그래서 공견에 취착하는 자는 아견을 증장시키며 공견에 다시 중첨하여 덮히게 되니 아견만 지닌 자보다 더욱 무겁고 굳은 장막에 갇히게 된다.
2. 생멸하는 상(相)은 단지 그림자이고 환(幻)과 같은 것일 뿐이다. 그 상의 체(體)는 단지 공(空)일 뿐 그 상(相)의 아(我)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체 현상은 공의 진동일 뿐이다. 파도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은 실은 바닷물이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즉 파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그렇게 출렁거리는 것이다. 그 파도의 아(我)가 없으니 그러한 면을 가리켜 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출렁거리는 바다가 항상하여 없지 아니하다. 공견에 빠지면 진실한 이 뜻을 놓쳐버린다. 여기서 바닷물은 곧 여래장을 비유한 것이니 여래장이 생멸하며 윤회한다. 그러나 여래장은 생멸하면서 생멸한다 함이 없다, 저 바닷물이 무심하게 출렁거리듯이.
3. 어디에도 있지 않은 것이 마음이고, 일체법이다.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텅 비어 고요하니 무엇을 지각한다 함이 없다. 그러니 무엇이 대상으로 인식할 바가 없다. 그래서 견문각지(見聞覺知) 그대로 무엇이 있다 할 바가 없다(無所有).
이렇게 되면 견문각지가 그대로 아무 데도 없는 마음의 묘용(妙用)이 된다.
만물을 뚜렷이 비치는 것이 거울의 묘용이듯이, 그러한 심성의 뜻을 모르면 견문각지 따라 분별하여 물들고 흔들린다. 그 분별이 일어난 당념 당처에서 심성이란 본래 분별하는 바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 분별을 제거하려 하면 본래 일어난 바도 없는 것을 없애려 하는 것과 같고, 그림자를 없애려는 것과 같다. 분별도 공이라 함은 바로 그 뜻이니 얻을 바 없다는 것이다. 유심(唯心)이고 일심(一心)일 뿐이니 달리 분별될 어떤 것이 생길 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생(無生)이다. 무생이란 생(生)한 그대로 무생이란 뜻이다 분별 그대로 무생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알 때 분별 그대로 무심(無心)의 자심(自心)이며 수중월(水中月)이다.
-박건주님 譯解 <二入四行論, 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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