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3. 19:55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장법사(藏法師)가 말하였다.
"일체 모든 것을 얻음이 없는 자를 수도인(修道人)이라 한다.
왜 그러한가?
눈으로 일체 사물을 보는데 눈이 일체 사물을 얻음이 없다.
귀가 모든 소리를 듣는데 귀가 모든 소리를 어듬이 없다.
내지 의(意)의 연(緣)이 되는 경계도 또한 이와 같다.
까닭에 경에서 이른다.
'마음에 얻을 바 없으면 불(佛)이 바로 수기(授記: 성불할 것을 약속함)한다'
경에서 이른다.
'일체법은 얻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역주자 해설]
일체 모든 것은 오직 마음 뿐이어서 얻을 것이 없다.
마음에 얻을 것이 있다면 마음 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 되어 오직 마음일 뿐이라는 것에 어긋난다.
그런데 '얻을 것이 없다'는 법을 취하거나 향하고 있으면 그 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되어 얻을 것 없다는 뜻에 스스로 모순되어 버린다. 그래서 얻을 것 없다는 그 법에도 향하거나 머무르거나 취착할 수 없다.
요컨대 '얻을 바 없다'는 법에 의해 그 마음이 일어나 버리면 이 또한 마음이 동(動)한 것이고 마음에 떨어진 것이니
얻을 바 없다는 생각에도 향하거나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본문]
홍선사(洪禪師)가 말했다.
"무릇 여러 거동(擧動)에 모두 여(如)하다.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들음도 또한 여(如)하다. 내지 일체 모든 것이 또한 여(如)하다. 왜 그런가? 변이(變移)함이 없는 까닭이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때에 눈이 바꾸어진 곳이 없으니 바로 눈이 여(如)하다.
귀로 소리를 듣는 때에 귀가 바꾸어진 곳이 없으니 바로 귀가 여(如)하다.
의(意)로 법진(法塵; 마음에 떠오른 모든 상념)을 인지할 때에 의(意)가 바꾸어진 곳이 없으니 바로 의(意)가 여(如)하다. 만약 일체 모든 것이 여(如)함을 알았다면 바로 여래(如來)이다.
경에서 이른다.
'중생이 여(如)하고, 현성(賢聖) 또한 여(如)하며, 일체 모든 것 또한 여(如)하다.
[본문]
각선사(覺禪師)가 말하였다.
"만약 마음이 속한 곳 없음을 깨달으면 바로 도의 자취를 얻은 것이다. 왜 그러한가?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되 눈이 모든 색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성해탈이다.
귀로 모든 소리를 듣는데 귀가 모든 소리에 속하지 않는다.
(내지 의(意)가 모든 것을 두루 인식하는데 의(意)가 모든 것이 속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자성해탈이다. "
경에 이른다. " 일체 모든 것은 서로 속하지 않은 까닭이다. 마음과 일체 모든 것이 각기 서로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 담림 편집,박건주 역주 < 달마대사의 이입사행론, 잡록>-
'성인들 가르침 > 초기선종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승오방편-10 (0) | 2018.10.31 |
---|---|
지관수행의 형태(2) (0) | 2018.10.26 |
지관의 형태(1) (0) | 2018.10.20 |
무심(無心)이라는 생각은 망념(妄念)일 뿐,실제 무심(無心)이 아니다. (0) | 2018.10.19 |
분별은 공(空)한 것인데, 중생은 분별에 휘둘린다. (0) | 2018.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