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0. 23:29ㆍ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 티벳밀교 법문<대수인원문(大手印願文)>에서 발췌한 가르침 -
[본문]
볼 수 없는 마음 자주 관찰할 때에
數數觀察無可觀心時(수수관찰무가관심시
볼 수 없는 뜻 밝게 꿰뚫어 보며
宛然洞見無可見之義(완연동견무가견지의)
이것인가 저것인가 의심스러운 생각 영원히 끊어서
永斷是耶非耶之疑念(영단시야비야지의념)
어긋남이 없는 스스로의 면목 증지(證知)하길 원하옵니다.
願自證知無謬自面目(원자증지무류자면목)
[해설]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관찰하라는 말인가.
바로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함을 알고, 마음이 본래 무생(無生)임을 알며,
감소하지도 증가하지도 않음을 알며,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보지 못함을 알며(有心不見心),
마음에 일어나는 상념을 얻을 바 없음을 알며, 이 심성(心性)이 그대로 불성이요 법성이며,
일심법계(一心法界)임을 아는 것이 곧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심상(心想)을 얻을 바 없으니, 또한 그 심상이 무생임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그 마음을 어떻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그러함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곧 무관(無觀)이 관(觀)이다.
무수(無修)의 수(修)이다.
여기에서 볼 수 없는 뜻이 스스로 밝아져 온다. 밝게 꿰뚫어진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의심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의심하려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 자리에서 어긋남이 없는 스스로의 면목이 증지(證知)되는 것이다.
[본문]
대상에서 마음을 보아 대상을 보지 아니하고,
觀察於境見心不見境(관찰어경견심불견경)
마음에서 마음의 체성이 공함을 관찰하며,
觀察於心心無體性空(관찰어심심무체성공)
이자(二者)와 이집(二執)이 스스로 해탈되어 있음을 관찰하여,
觀察二者二執自解脫(관찰이자이집자해탈)
광명심체(心體)의 실상 증득하길 원하옵니다.
願證光明心體之實相(원증광명심체지실상)
[해설]
대상은 곧 이 자심이 나타난 것이니(自心所現), 대상에서 곧 이 마음을 보아야 하며,
그 마음 또한 체성이 공하여 어디에 있다 할 바도 없다.
대상과 마음의 두 가지(二者), 그리고 그 두 가지에 대한 집착인 이집(二執)은 모두 얻을 바 없는 마음일 뿐이요,
공한 자리의 법이니 바로 각(覺)이요, 해탈이다.
즉 심체(心體)는 공(空)이고, 공한 가운데 전개되는 일체법은 그대로 각일 뿐이다.
바로 옳게 보면 있는 그대로 모두 해탈되어 있을 뿐이다.
이 자리는 먼저 일체가 오직 마음일 뿐임을 요달해야 얻어지는 것이며,
오직 마음 뿐임을 요달하기 위해서는, 밖에 보이는 대상이 공하여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무량광의 심체, 본각, 실상의 자리가 드러난다. 이들 용어는 모두 같은 말들이다.
-박건주 역해 <대수인원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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