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0. 20:01ㆍ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3.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聖諦)
우리 모두가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지극히 자연스런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의 원인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의 조건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이런 상황의 밑바탕에는 근본적인 혼란인 무지(無明)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 무지는 사물의 존재방식에 적용될 뿐 아니라 인과법칙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두 종류의 무지 -인과 법칙 특히 업의 변화에 대한 무지와 실체의 궁극적 본성에 대한 무지 - 에 대하여 말한다.
이 부분은 앞에서 설명한 연기(緣起)를 두 단계로 이해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첫 단계는 인과적 의존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과 법칙에 대한 무지를 없앤다.
두번째 단계는 더 심오한 단계로 실제의 궁극적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인데 이것은 근본적 무지를 없앤다.
하지만 이 말이 우리가 깨닫지 못한 존재로 남아 있는 이유가 오로지 무지때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지 이외에도 다른 많은 파생적인 원인과 조건이 있는데 그것들을 '괴로운 감정과 생각(煩惱)이라고 부른다.
번뇌는 매우 복잡한 유형의 감정과 생각인데 아비달마 문헌에 아주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비달마에 따르면 여섯가지 근본 번뇌가 있고, 이것은 다시 수므가지 번뇌로 파생된다. 아비달마에서는 감정전체에 대해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금강승의 문헌에는 윤회하는 존재가 겪는 과정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데 깨닫지 못한 우리가 보여 주는 여든 종류의 생각과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금강승 계열에 속하는 칼라차크라 문헌에서는 중생이 윤회하는 원인을 잠재된 성향 또는 타고난 경향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우리의 근본적 무지에서 비롯되는 괴로운 감정과 생각은 의지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무지와 업행(업행)이
고통의 근원이다.
- 업
우리 내면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클레샤(煩惱)라면 업(業)은 무엇인가?
우선 업의 법칙은 불교에서 인정하는 광범위한 자연적 인과 법칙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업을 우주에서 작동하는 자연적인 인과 법칙의 한 가지 특별한 예로 여기며, 모든 사물과 사건은 오로지 원인과 조건이 결합된 결과로서 생긴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업(카르마)은 일반적으로 인과 법칙의 한예이다. 업을 독특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의지작용을 수반하고, 행위자를 수반하기 때문이다.자연적인 인과적 과정에 행위자가 없을 경우에는 업이라고 할 수 없다. 인과 과정이 업의 행동이 되려면 의도를 갖고 특정한 행동을 하는 행위자가 있어야 한다. 이런 특정한 종류의 인과 과정을 업이라고 한다.
- 업행의 유형
일반적으로 업에 의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가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고통과 괴로움을 초래하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행동 또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둘째, 기쁨이나 행복처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은 긍정적인 행동 또는 도덕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 셋째, 평정이나 중립적인 느낌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행동들을 포함한다. 이런 경험들은 중립적인 행동으로 간주되며, 도덕적이지도 않고 부도덕적이지도 않다.
업행(業行)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정신적 행위와 육체적 행동이다. 정신적 행위는 반드시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육체적 행동은 몸으로 표현되는 동작과 말로 하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둘째, 행동을 표현하는 매개체의 관점에서는 정신적 행위, 언어적 행위, 육체적 행도응로 구분된다.
경전에서는 업행을 완전히 도덕적 업행, 완전한 부도덕적 업행, 이 두가지가 혼합된 업행으로 구분하고 있다.
법(다르마)을 수행하는 우리 행동에는 도덕적인 행위와 비도덕적인 행위가 석여 있을 것이다.
-업과 사람
불교 수행자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실제로 어떤 노력을 하는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염원하는 것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정신적 해방 또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주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번뇌를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보단계에서는 수행자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차단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실용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몸과 마음과 말로 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첫번째 단계는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지배받지 않도록 몸, 마음, 말이 부정적인 짓을 하지 않도롣 하는 것이다. 첫번째 단계의 목표를 달성하면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근본 원인 - 우리가 앞서 말한 근본 무지(無明) -과 싸울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번뇌의 힘에 직접 대항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면 세번째 단계에서는 단순히 번뇌의 힘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번뇌가 마음 속에 남긴 잠재적 성향과 흔적까지 뿌리 뽑는다. 그래서 아리야데바는 <중론사백송>에서 말하기를 참된 수행자는 첫단계에서는 부정적 행위를 극복하고, 중간단계에서는 모든 아집을 버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윤회세계에 우리를 묶어두는 견해들을 모두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면의 적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한, 그 적에게 지배받는 한,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내면의 적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며, 이 적을 물리치기를 열렬히 원하는 것이 바로 해탈에 대한 열망이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출리심(出離心)이라고 하는데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과 내면세계를 분석하는 수행이 중요하다.
첫번째 단계의 고통인 고통스러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짐승들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경전에서 말한다. 두번째 단계의 고통인 변화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은 불교수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비(非) 불교 수행자들도 삼매(三昧)를 통해서 내면의 평온을 추구했다. 하지만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진정한 열망은 세번째 단계의 고통인 조건에 의해 구성된 것의 고통 (行苦)을 인식한 다음에야 생길 수 있다. 우리가 무지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우리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들어설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다음에야 해탈에 대한 열망이 생긴다. 이 세 번째 단계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은 불교수행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 사성제(하루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