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9. 21:59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역사 속에서 크게 신심의 모범을 보인 분이 있는데, 바로 자장(慈藏,590~658) 법사입니다.
<삼국유사>에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자장법사가 '나는 계를 지키는 일생을 살겠다.'라고 원을 세웁니다.
여기서 계(戒)는 금강계(金剛戒)입니다. 금강계는 진여의 계, 적멸의 계, 생사해탈의 계이기 때문에, 거기서 만족하지 못해서 밖으로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구하면 그 계를 파(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심이 부족한 것입니다.'밖으로 구하지 않고 진여, 적멸로서 만족하고 오로지 그 도를 닦겠다.' 이것이 계를 지키는 서원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전부 금강계라고 합니다. 금강은 불생불멸(不生不滅)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말합니다.
자장법사는 평생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렇게 원이 더욱 깊어져서 중국에 가서 문수보살을 만났습니다. 문수보살을 만난다는 것은 증도입니다. 도를 증득한 것입니다. 문수보살이 가르쳐 준 것이 '일체법이 자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이와 같이 법성을 알면 바로 비로자나불을 보는 것이다. 비록 만 가지 가르침을 배우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即見盧舍那 雖學萬敎 未有過此)
살고 죽는 하나하나에 자체성(自體性)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가 적멸입니다. 살고 죽는 하나하나에 자체성이 있다면 일체가 적멸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자장법사가 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곧 자장의 도입니다. 자장의 도가 따로 있고 문수의 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가 곧 자장의 도'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증도입니다.
자장법사는 귀국해서도 곳곳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습니다. 마지막에 만나는 것을 여래장엄(如來莊嚴)으로 장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여래의 장엄으로 스스로를 장엄합니다. 여래가 하신 덕을 내가 닦는 것입니다. 석가여래는 팔상성도, 즉 여덟가지 과정으로 도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처럼 입도, 증도해서 깨달음의 덕을 크게 펴는 것을 성도라고 합니다.
문수는 지혜이고, 지혜는 생멸이 적멸인 줄 아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그냥 평상 그것만 들여다 봅니다. 새로운 것을 공급하면 언제나 뒤만 따라갑니다.
들여다 보는 마음을 한번 깨달아 놓으면 좋을 텐데 생각도 못합니다.
들여다 보는 그 마음을 깨달음이 바로 생멸이 적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문수보살이 또 자장에게 나타났는데 아주 형편없는 거지의 모습으로 강아지 한 마리를 메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자장이 안 만났습니다. 그러자 문수가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만나겠느냐?"하고 돌아 갑니다.
문수보살도 '나'라고 하고, 자장도 '아상'이라고 하고, 두 '나'가 붙었습니다. 그러니까 강아지가 사자로 변하고, 나이 많고 힘없고 돈 없는 노인이 오색방광(五色放光)을 하고 갔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일체법이 자성이 있는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강아지가 자성이 있다면 어떻게 사자가 되고, 노인이 자성이 있다면 어떻게 오색방광을 하고 하늘을 날아가겠습니까? 자장은 자장대로 또 위의를 갖췄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허겁지겁 맨발로 쫓아갔을 텐데, 옷 입을 것 다 입고 위의를 갖추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문수는 문수대로 위의가 있지만 자장은 또 자장대로 위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를 갖추고 문수가 갔다는 방향으로 갔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냥 따라 갑니다.
이것이 그대로 도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장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찾아온 문수가 다르냐?
자장이 도가 높았기 때문에 문수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장없는 문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문수 그대로 자장의 도를 이루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까지 몸을 가지고 살다가 몸을 일시에 버린 것입니다. 생노병사가 바로 생사해탈입니다.
그래서 '몸이 가고 몸이 오는 것이 해탈경계다. 나고 죽는 것이 법계를 장엄한다'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봄과 꽃이 있는데,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은 봄을 장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봄을 떠나서 꽃이 지는 게 아닙니다. 꽃이 피는 것도 봄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고, 꽃이 지는 것도 봄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오고 몸이 가는 것이 해탈의 세계이고, 몸이 나고 몸이 죽는 것이 장엄법계입니다.
꽃이 봄을 장엄하듯이, 우리 몸이 나고 죽는 것이 우주법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근심걱정하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햇기 때문입니다. 봄소식을 알고 나면 일체가 봄입니다. 잡초도 봄이요, 꽃도 봄이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봄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나는 것도 그대로 우리 자신이고, 죽는 것도 우리 자신이고, 늙는 것도 자신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이 깨달음을 보면 모든 것이 장엄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세계를 믿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이와 같이 한결같이 나아가는 모범을 보인 분이 자장법사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하나의 신심으로 갑니다. 그래서 엄청난 공덕을 지어 곳곳에 부처님 도량을 세웠습니다.
신심은 우리가 나고 죽는 것이 그대로 생사해탈이라는 것을 믿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믿고 정진하는 가운데 증도가 됩니다. 또 믿고 정진하는 가운데 그런 도를 다 이루어 성도하게 됩니다.
-종범스님의 법문집<오직 한 생각>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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