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3. 11:36ㆍ성인들 가르침/반야심경 관련 법문
그래서 이런데 치우친 사람을 위해서<반야심경>에서는 다시 공불이색을 설합니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지만, 공은 또한 색과 다르지 않다라고 설하는 것이지요. 색이 공해서 허무하고 허망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 치우친 극단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것입니다.
색불이공으로 현실세계의 공함을 설했다가 다시 공불이색으로서 현실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방편으로 색은 '있다'는 개념이고, 공은'없다'는 개념이라면, 색불이공으로 있다고 여긴 모든 것들은 사실 없는 것이지만, 다시 없는 모든 것들은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즉 있다거나 없다라고 하는, 색이거나 공이라고 하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중도로 이끄는 것입니다.
즉 이 법문은 현상세계를 공이나 색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시선으로 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불교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긍정하거나,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이를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했지요. 색불이공이라고만 하면 '아 ! 불교는 세상 모든 것을 공하다고 하는 종교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공교(空敎)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하다는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일 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불교는 공사상이다'라고 불교를 정의내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법을 한쪽으로 치우쳐서 이해한 것입니다. 색은 공이지만 공은 다시 색인 것입니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고, 색이 아닌 것도 아니고 공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불법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무우정법이지요. 그것이 바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중도의 가르침입니다.
공불이색은 색이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기에 공한 것이지만, 공하다고 여기는 일체 모든 물질적인 현상세계는 현상세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설합니다. 색이라는 현상세계가 공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허무한 단멸의 공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공한 가운데 현상세계의 묘한 아름다움이 있고, 생생한 살아있음이 있습니다.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도 표현합니다. 참으로 공하지만 묘하게 있다는 것이지요.
색불이공이지만 다시 공불이색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세계를 공하다고 부정햇다가 다시 긍정합니다.
공하다는 사상을 잘못 받아들여 세상 모든 것이 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 필요도 없다거나, 대충대충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고 여긴다면 이는 색불이공에만 치우친 것입니다.
공불이색이라는 중도의 법문까지 한 발 나아간다면 공한 줄 알면서도 현실세게에 발을 딛고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지요. 색불이공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인연따라 생겨난 공한 것인 줄 알아 집착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이 아니라, 집착은 하지 않지만 매 순간순간에 인연따라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공불이색인 줄 아는 까닭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응무소주이생기심으로 마음을 낼 때는 '집착'하는 삿된 마음이 없고, 물질에 사로잡히거나, 애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집착심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바로 그 순간의 진실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100% 완전 연소하는 삶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때 우리가 행하는 것은 곧 무위행(無爲行)이 됩니다. 유위행은 내가 억지로 노력하여 행하는 것이지만, 무위행은 함이 없이 하는 행이라고 하여 억지와 인위적인 노력이 없지만 그 순간에 집착없이 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 힘들지 않고도 그것을 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무위로서 행할 때는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나'라는 사사로운 아상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의 자연스러운 근원적인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는 연기와 중도적인 가르침은 집착하는 바 없이 무위로써 살아가면서도 하나 되는 근원적인 힘을 얻는 실천행입니다.
-법상지음, 반야심경과 선공부(무한)에서 일부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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