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2. 11:53ㆍ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 - - - -(前略) - - - -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망상집착이 자기 생각을 뒤덮고 있는 그 놈을 뚫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닦으면 모든 것이 깨끗해집니다.
우리가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할 때 물로 하는데, 깨끗한 물로 씻어야 그릇이 깨끗하지 흙탕물로 그릇을 씻으면 그릇이 더러워집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데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보고 들으면 동작 하나하나가 태초의 세계요 태고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태고,태초, 만고강산 속에 있는데 미혹 집착이 앞을 가려서 꿈 속에서 헤메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중생이라 하고, 못 깨달았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망상집착에서 한 마음이 번개처럼 일어나면 바로 깨달음입니다.
털끝 하나도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지 따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작이 아니고 크게 깨닫는 대오(大悟)입니다.
'아하'하는 작은 깨달음은 백년 깨달아도 소용없습니다.
'악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악"하면 일체 명상(名相)이 다 끊어집니다.
죽는다, 산다, 있다, 없다, 이런 것은 전부 자기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끝나느냐?
깨닫는 순간에 본래 미(迷)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보니까 깨달았다, 미했다는 것이 다 쓸데없습니다.
바로 깨달으면 그만인데 그것이 안되니까 방편으로 마음 공부를 시킵니다.
마음공부는 첫째, '불취외상(不取外相)'이니, 밖의 모양에 자꾸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중생은 항상 밖의 모양에만 따라가서 망합니다.
둘째, 섭심내조(攝心內照)이니, 마음을 거둬들여서 안으로 살펴야 합니다.
'보고 듣는 이것이 무엇인가?' 살피는 이것이 섭심내조입니다.
셋째, '무상무념(無相無念)이니, 공부가 깊어지면 어떤 형상을 보더라도 그 형상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모든 상에서 상을 여의면 됩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그 생각에 매이지 않는 것이 무념입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도 거기에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형상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아도 형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념무상입니다.
넷째, '원통자재(圓通自在)'가 됩니다.
무상무념하면 원통자재가 되는데, 그 원통이 무엇이냐?
관자관타(觀自觀他)입니다.
나도 보고 다른 이도 볼 때 친색친공(親色親空), 즉 색이기도 하고 곧바로 공입니다
색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입니다.
생겼다, 머물렀다가, 서서히 달라졌다. 없어지는 것이 생주이멸인데, 그것이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그대로 색이면서 공인 것이 원통이고, 원통자재가 마음공부입니다.
우리 본래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한 물건의 모습입니다.
미혹하고 집착해서 헛고생하고 있으니, 마음을 조금 더 자재롭게 써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돈 벌줄만 알지 인생 사는 법을 모릅니다.
언제나 벌다가 벌다가 죽습니다.
벌 줄만 알지 살 줄은 모릅니다.
생존을 위한 투자가 돈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기쁨을 위한 투자도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벌어서 쌓기만 하고 기쁨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인기도 없습니다. 사회적 투자를 해야 자기 존재가 인식됩니다.
여러 곳에서 기쁨을 얻으려면 기쁨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서도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 닦는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하십시오
그것이 도 닦는 것이고 마음 공부입니다.
-종범 스님의 '오직 한 생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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