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신)은 지고아 파라부라만(절대진아)이다

2016. 6. 6. 09:37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만일 여러분이 신과 함께 하기를 열망한다면 환(마야)을 버려라.

여러분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어떤 소망은 환(幻)일 뿐이다.

환이 진아 위에 하나의 베일을 드리운다.

진아는 내면에 있고, 그 위에 환이 어떤 막을 씌웠다.

브라만은 순수의식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은 성품상 보통 밖을 향하며, 대상에 집중한다.

마음이 무욕이 되어 그 상태로 머무를 때, 그것이 브라만이다.

그러나 마음을 브라만으로 여기지 말아라.

감각의 대상들을 부단히 생각하는 것은 진아를 가리는 것이다.

주의가 진아에서 벗어나 대상들을 향할 때, 그것을 일러 가려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환이다. 그것이 마음이다.

 

생각이 없는 머무름이 브라만이다.

자연스러움이 브라만의 표식이다.

아무 걱정도, 정욕도, 욕망도 없다.

이 자연스러움 안에서는 설사 그 사람이 왕국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그 마음은 근심을 느끼지 않는다.

마음의 대상적인 작용이 끝나면 그 자연스러운 상태가 생겨나고, 우리는 진아 안에서 안정된다.

세간적 삶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그치면 진아의 가려짐이 끝난다.

 

그럴때 환(幻)은 신의 유희로 보이고, 오직 그일 뿐임을 보게 된다.

환이 신의 유희로만 보일 때, 마음은 무욕이 되고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개인의 환은 갈망과 욕망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개인적 에고의 욕망은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입 안에 물 한방을을 얻어야겠다고 기대하는 수준까지 간다.

한편 진아인 의식은 몸뚱이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을 때 신의 이름이나 진언을 염하는 것이 진아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무욕의 열쇠다.

이승의 삶은 얼마나 가는가? 한 발은 무덤 속에 있고 한 발은 집 안에 있다..

'이 가정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태도가 무욕의 표지이다.

 

그러나 세간적 삶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치 자신의 수명이 수백 년이나 될 것처럼 모든 활동을 한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십만 년의 수명을 한 순간처럼 여긴다.

심장 속의 집착은 모든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형태를 띠지만, 그것은 신의 환적인 유희일 뿐이고, 세속성과 걱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고아 빠라마트만을 위해 살아야 하고, 우리의 시간은 빠라마트만에 대한 봉사에 쓰여져야 한다.

                                    -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