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2. 10:05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마하리쉬 : 거울이란 무엇입니까? 거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빛을 반사하는 하나의 지각능력없는 물건입니다.
개인의 거울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빛나는 진아의 빛이 대지성<Mahatattva)에서 반사됩니다.
이 반사된 빛이 마음-허공 혹은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그 개인의 원습들을 비추고, 그래서 '나'와 '이것'이라는 느낌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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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 무성명상(無性冥想: 성질없는 실재에 대한 명상)은 어렵고 위험하다 합니다.
그는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타>에서 '왜냐하면 미현현자(未顯現者)라는' 등의 구절을 인용했다.
마하리쉬 : 현현자(顯現者 : 드러난 세상)를 미현현자(未顯現者: 드러나지 않은 브라만)로 여기니깐 의심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즉유(卽有)하고 친밀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이 (자기보다 ) 더 쉬울 수 있습니까?
방문자 : 유성명상(有性冥想)이 더 쉬워 보입니다.
마하리쉬 : 그대에게 쉬운 것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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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리쉬 : 개인들의 다수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논쟁사항입니다. 하나의 개아라는 것은 에고 위에서 반사된 빛일 뿐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에고와 동일시하고,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더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런 소견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쉽게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꿈 속에서 많은 개인들을 보는 사람이, 깨고 나서도 그들이 실재한다고 믿으면서 계속 그들에 대해 묻습니까? (그러나) 이런 논변도 그 사람을 납득시키지 못합니다.
또 달이 있습니다. 누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달을 보든, 달은 같은 달입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이제 달을 반사하는 물 그릇이 몇개 있다 합시다. 물에 비친 모습들은 서로 다르고, 달 자체와도 다릅니다. 만일 그릇 하나가 깨지면 그 반사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진다 해도 실제의 달이나 다른 반사들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해탈을 얻는 개인도 그와 비슷합니다. 그 사람만 해탈을 얻는 것입니다.
다수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비이원성에 대항해 이것을 자신의 주장으로 삼습니다. " 만약 진아가 단일하다면, 한 사람이 해탈하면 모든 영혼이 해탈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비이원론은 옳지 않다" 이 논변의 약점은 진아의 반사광을 진아의 원광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에고, 세계, 개인들은 모두 그 사람의 원습에 기인합니다. 원습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환각도 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주전자 하나가 깨지면 상대적인 반사도 끝이 납니다. 실은 진아는 결코 속박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진아에는 어떤 해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에고에게 있을 뿐입니다.
질문자 : 개아들이 다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왜 잘못입니까?
마하리쉬 : 개아들은 분명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개아는 에고이고 진아의 반사된 빛일 뿐이니까요. 자아가 다수리고 하는 것은 잘못일지 모르지만, 개아가 다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마하리쉬 : 개아를 개아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 속에서 많은 개아들을 보지만 그들은 모두 실재하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만 존재하고 그가 모두를 보는 것입니다. 개인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의 자아만 있다는 교의가 있는데, 이것을 오직 하나의 개아만 있다는 교의라고도 합니다. 거기서는 말하기를, 개아는 단 하나인데 그가 전 세계와 그 세계 안의 개아들을 본다고 합니다.
질문자 : 그러면 여기서 개아는 진아를 뜻합니다.
마하리쉬 : 그렇게 되지요. 그러나 진아는 보는 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그가 세계를 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를 개아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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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 죽음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마하리쉬 : 맞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요. 그런 공포는 어떤 유용한 목적에도 이바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마음의 잠재적인 습에 압도되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탐구도 하지 못하고) 자연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포는 사람을 무집착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그 사람은 그 문제를 탐구할 수 없습니다.
질문자 :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방문객들을 구별하지도 않고 똑 같은 가르침을 주십니까?
마하리쉬 : 제가 뭐라고 합니까? 각자의 에고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에고더러 그 점에 대해 성찰해 보라 하십시오. 이 에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거듭 성찰해 나가면 점점 더 (탐구하기) 적합한 근기가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한담(閑談)]
이원성(二元性)이라는 것은 바로 마음의 거울에 비친 대상을 보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 세상이 모두 마음의 거울에 비쳐서 나탄난 이원상(二元相)들입니다. 이 개인에 있어서 마음의 거울은 바로 마하따뜨바에서 반사된 빛이라고 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전에 어디선가 말씀하시길,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어떤 빛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마하뜨 따뜨와를 통과한 진아의 빛이다. 그것을 우주적 의식이라고 한다. 그것은 무형상이다. 그 빛이 에고에 비치면 거기서 반사되고, 그러면 육신과 세계가 보인다. 이것이 마음의 형상이다. 대상들은 이 반사된 의식의 빛 안에서 나타난다. 이 빛을 쯔요띠라고 한다> 라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거울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내가 있다"는 핵점에서 반사된 빛을 말합니다. "내가 있다"핵점이 우주의식이고, 무형상입니다. 이 무형상의 "내가 있다"핵점에서 나온 빛이 육체에 반사되어 육체감각기관을 통해서 전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죠.
이 모든 만물이 형상없는 절대상태라는 말을 듣고는, 어떤 구도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대상들이 모두 형상없는 절대바탕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앞에 대상으로 보이는 형상들은 그것이 허공이든 무슨 물건이든 전부 환(幻)입니다. 말하자면 대상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구도자들은 그 물건 자체가 있는데, 그것이 형상없는 절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 방식자체가 환(幻)인 것이죠. 그런 생각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자체도 허황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마하지쉬는 현현자(나타난 것들)를 미현현자(나타나지 않은 절대진아)로 여기니깐 의심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체가 자기이지만, 앞에 대상으로 나타난 것은 환(幻)일 뿐입니다. 마치 눈이 눈을 알려면 어떤 행동도 필요없고 오직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눈인 것처럼, 자기 자신은 (대상으로)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즉유(卽有)라는 말은 어떤 앎의 틈새도 없이 바로 있는 그대로 그 자신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말할 틈도 생각할 틈도 알틈도 없이, 지금 즉바로 자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할 틈이 있다던가, 생각할 틈이 있다던가, 볼 틈이 있다던가, 알틈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즉바로, 즉유(卽有)가 아니죠. 조금이라도 아는 틈이 생긴다면(有漏) 그것은 이미 대상화가 됩니다. 아무 틈도 없어야 (無漏) 바로 즉유(卽有)가 되는 것이죠. 즉유는 아무 느낌(無性)도 없습니다. 즉 있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질문자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유성(有性)명상이 더 쉽다고 대답하니, 대상화 된 것을 명상하겠다는 것입니다. 마하리쉬가 그러면 그대 좋을 대로 하라고 내비러 둡니다.
개아라는 것은 진아에서 나온 빛에 반사된 환(幻)의 그림자인데, 그것을 주체라고 생각하니깐, 주체와 대상이 전도된 상태를 일깨우기 위해서 마하리지가 개아가 환이라는 것을 달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아가 보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은, 만일 진아가 보는 자라고 한다면 보는 자와 대상으로 갈라진 이원화 상태가 되므로 진아를 개아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진아는 일체이므로 보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전체가 진아만 있는데,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죠. 따라서 에고는 있을 수가 없고, 오직 진아 밖에 없습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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