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5. 09:33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스리 바가반이 메키버씨에게 <실재지(실재사십송>의 처음 몇 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다.
1. 첫째 연(기원문 제 1연)은 상서로운 시작입니다. 왜 이 작품의 주제를 여기 가져왔습니까?
지(知)가 존재 아닐 수 있습니까? 존재는 핵심, 즉 심장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고의 존재를 어떻게 명상하고 찬미할 수 있습니까? 순수한 진아로 머무르는 것이야 말로 상서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知)의 길을 따를 때의 '속성없는 브라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2. 둘째 연(기원문 제2연)은 속성을 가진 신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앞 연에서는 하나의 진아가 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지금 여기서는 만물의 주(主)에 대한 순복을 이야기합니다.
더욱이 두 번째 연은 1) 적합한 독자, 2) 주제, 3) 관계, 4) 결실을 보여줍니다. 적합한 독자는 그렇게 할 근기가 되는 사람인데 , 그 근기(능력)란 세간에 대한 무집착과 해탈하려는 열망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문제를 깊히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을 일시적입니다. 죽음을 왜 두려워 합니까?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 때문입니다. 누구나 육신이 죽으면 그것이 화장된다는 것을 압니다. 죽으면 그 육신이 상실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 때문에 죽음은 자기 자신이 상실되는 것으로 되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탄생과 죽음은 육신에 속할 뿐이지만, 그것이 자기(진아)에게 덧씌워짐으로써 탄생과 죽음이 자기와 관계된다는 망상을 야기합니다.
탄생과 죽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해 줄 지고의 존재를 우러러 봅니다. 그래서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그를 어떻게 숭배합니까? 피조물은 무력하고 창조주는 전능합니다. 그에게 어떻게 접근합니까? 자기 자신을 그의 보살핌에 맡겨 버리는 것이 사람이 할 수있는 전부입니다. 완전한 순복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자신을 내맡깁니다. 순복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을 자비의 주(主)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 자신도 없고 자신의 소유물도 없습니다. 태어나고 죽게끔 되어 있는 육신이 신에게 인계되었으므로, 그 사람은 그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탄생과 죽음이 공포를 안겨주지 않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육신이었고, 이제는 육신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닌데 왜 두려워합니까? 아니면, 두려워 해야 할 그 개인의 정체성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진아를 깨닭고 지복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주제'입니다. 즉,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것이지요. 이것이 얻어야 할 최고선입니다. 그래서 순복은 지복 자체와 동의어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결실'은 그 주제를 성찰하여 지금 여기 항상 존재하는 지(知)를 얻는 것입니다. 이 연은 '불멸인 자들'로 끝납니다.
3. (본문 제6연에서) 오관(五官)은 미세기능, 즉 듣고, 접촉하고, 보고, 맛보고, 냄새맛는 것입니다. 이 형태들의 변화된 모습이 전 우주입니다. 이들은 세 가지 구나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따마스에 의해 거친 원소들이 생기고, 라자스에 의해 아는 대상들을 위한 도구들이 생기며, 사뜨와 에 의해 감각기관들의 상이한 앎의 유형들이 생깁니다.
또한 따마스에 의해 거친 대상들, 즉 세계가 생기고, 라자스에 의하여 생명기운과 운동기관들이 생기며, 사뜨와에 의해 지각기관들이 생깁니다. 운동기관은 붙잡고, 걷고, 말하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기관들입니다.
자, 종이 울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소리는 듣는 것과 관계됩니다. 종은 대상, 곧 따모구나(따마스)의 변상입니다. 라자스적인 미세기능들은 소리의 진동이 변하면서 종 주위를 퍼지고, 그 다음에는 에테르가 귀와 연결되어야 그 소리가 느껴집니다. 그것을 하나의 소리로 인식하는 앎이 사뜨와 미세 기능입니다.
다른 감각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접촉은 공기 미세기능, 형상은 불 미세기능, 맛은 물 미세기능, 냄새는 흙 미세 기능입니다.
미세기능들을 물질의 미세한 입자들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니까요. 그것들은 소리, 접촉, 봄, 맛, 냄새의 미세한 형상들일 뿐인데, 그것이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를 이룹니다. 세계창조가 이와 같습니다. 적절한 용어가 없어 외국어로는 이런 개념들을 올바르게 표현 할 수 없습니다.
4. 이 시에서는 누구나 한 가지 점에 동의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원성과 비이원성, 주체와 대상, 개아와 신, 요컨대 모든 차별상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그것은 에고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에 어떻게 도달하는가?'가 질문사항인데, 세계를 포기하면 된다고 이 시에서는 말합니다. 여기서 '세계'는 그것과 관계되는 생각들을 나타냅니다. 그런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에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주체도 없고 대상도 없을 것입니다. 그 상태가 이와 같습니다. (156)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한담(閑談)]
실재사십송은 바가반이, 중요한 가르침의 핵심을 따밀어의 시 형식으로 지은신 40송의 시입니다. 처음에는 20송만 지었다가 나중에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20송을 더 지었습니다.
위의 본문 중에서, 1번은 절대진아, 즉 속성없는 절대진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명상을 시작 할 때에 속성없는 절대 진아로 머므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깨달으려고 수행을 시작하는 것은 절대진아가 되고자 하는 것이므로, 아예 처음부터 절대진아로 머무르는 것이 최상의 이상적인 수행법입니다.
이것은 불교경전에서도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능엄경,화엄경, 금강경에서도, 여래장을 얻기 위하여 수행을 시작한다면, 시작 때부터 여래장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경전에서는 사마타 수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누구나 다 모든 사람이 여래장을 지금 현재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18계가 모두 여래장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사마타 수행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여래장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머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절대진아의 순수한 성품을 잘 이해해서 바로 절대진아상태로 머무는 것이 가장 최상의 수행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무 속성도 없는 상태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2번에서는, 속성을 가진 신, 즉 "내가 있다" 존재의식의 핵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속성을 가진 부라만, 신이란 바로 "내가 있다"는 현상계의 원점(原點)을 말합니다. 이 현상계에서는 그 "내가 있다"가 바로 신입니다. "내가 있다" 존재핵점에서 몸과 마음, 온갖 세상의 현상이 나옵니다. 즉 , 만물의 주(主)에 순복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가 있다"는 만물의 주, 신에게 완전히 순복해야만 "나"라는 에고를 없애고 절대진아에 진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신에게 안정되게 머물려면 구도자의 근기가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무집착 또는 무욕과 해탈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공포감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자기가 육체라고 여기는 동일시 관념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육체 동일시 때문에 탄생과 죽음이라는 관념에 묶여 있는데, 이 생사(生死)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를 구원해 줄 지고의 존재인 신을 믿고 공경합니다. 그래서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생겨납니다.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방법은 기도와 헌신인데, 신에게 자기를 완전히 내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신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조물은 무력할 뿐이고, 창조주는 전능합니다. 따라서 자기를 완전히 신에게 내맡겨 버리면서 순복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과 자기의 소유물을 전부 신에게 넘겨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전부 신에게 맡겨 버리면 결국은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따라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탄생과 죽음조차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어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탄생과 죽음을 초월하게 됩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가 다 없어지면, 진아를 깨닫고 지복이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신에 대한 순복은 바로 지복을 얻는다는 것이죠. 모든 것을 포기하면, 모든 것의 근원인 진아가 된다는 것입니다. 진아 자체가 지복이므로, 죽음의 공포인 불행에서 벗어나서 행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3번에서, 육근으로 감각하는 대상이 육진(六塵)인데, 이 육진이 바로 현상계인 이 세상 자체를 말합니다. 육근과 육진이 상호작용해서 육식이 이루어지면 이 육식의 활동이 사람의 삶과 우주 그자체가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根,塵,識의 18계는 모두가 의식의 파동성작용의 조합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의식의 파동성은 그 기본은 가장 미세한 존재의식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것이 파동성이기 때문에, 파동성에는 움직임의 기본 3요소가 있습니다. 즉 파동성이 생기려면, 먼저 어떤 움직임의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생기력(生起力)이라는 최초의 시작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에 의해서 생기는데, 최초의 존재의식의 생기력은 그 원인을 잘 모릅니다. 그 다음에 최초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생기력이 생기면, 두번째는 그 생기력을 계속 유지하는 유지력이 필요합니다. 이 생기력이 유지되면, 또한 유지력을 최초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소멸력(원점 회귀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 소멸력은 생기력에 상대되는 반작용과 같은 것입니다. 생기력과 소멸력이 완전히 동일하다면 동시적으로 서로 상쇄되어 파동 움직임이 한순간도 생기지 않는 조화력 또는 유지력이 우세하겠지만, 어떤 원인으로 약간의 틈이라도 생기면 파동움직임이 생겨서 기동력(상승력), 유지력(평형조화력), 소멸력(하강력)의 세가지 요소가 일정하게 교대하여 변화하면서 파동 움직임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동력(상승력)은 라자스에 해당하며, 유지력(평형조화력)은 사뜨와에 해당하고, 소멸력(하강력)은 타마스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존재의식의 파동은 지극히 미세하지만, 현상계로 드러난 근(根),진(塵),식(識)의 의식파동들은 거친 파동의식이므로, 존재의식의 미세한 파동이 다시 거친 파동 주파수로 저하되어 변조된 것이어서, 처음에는 제일 거친 대상들의 의식파동들은 존재의식파동의 하강력인 타마스쪽에서 대상으로써 육진이 생기고, 이것에 상대해서 존재의식파동의 상승력쪽에서는 육근(六根)들과 운동기관(팔,다리 등)이 나타납니다. 이와 동시에 존재의식의 유지력 또는 조화력 쪽에서는 육식(六識)의 아는 인식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식파동의 하강력(타마스) 쪽에서는 보여지는 대상인 이 우주현상세계가 생기고, 이 거친 의식파동의 대상들로 인해, 존재의식의 상승력(라자스) 쪽에서는 눈귀코혀촉등의 감각기관과 팔,다리 등의 운동기관이 나타나며, 동시에 존재의식파동의 조화력 또는 유지력(기준선)에서는 보는 작용(안식),듣는 작용(이식),- - 등, 인식하고 아는 앎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위의 본문에서와 같이 예를 들어 보면, 종소리가 나서 귀로 들어서 그것이 종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종소리는 일종의 물질진동 파동이므로, 이 물리적인 진동파동은 존재의식파동의 소멸력(하강력)인 타마스쪽에서 생기면, 이 종소리에 의해서 존재의식파동의 상승력(라자스) 쪽에서 귀의 듣는 성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도 동시에 존재의식의 조화력(사트바)쪽에서는 그 종소리를 듣고 인식하는 작용이 생기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은 전체가 한 연못의 존재의식 파동 안에서 서로 서로 상호간섭하는 홀로그램식의 물결 파동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파동 움직임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고 작용하는 홀로그램 파동현상들 입니다. 이 의식에 나타난 모든 현상계 내면은 전부 파동의 한 바다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내면은 컴컴하면서도 검푸른 빛의 일렁임이 춤추는 무한한 파동빛의 한 바다입니다.
위 본문에서, 촉감은 공기 미세기능, 형상은 불 미세기능, 맛은 물 미세기능, 냄새는 흙 미세 기능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미세기능이라는 것은 파동성 의식에너지를 말합니다. 촉감은 공기미세기능이라고 말했는데, 공기분자 의식파동에너지를 말하는 것이고, 눈으로 보이는 형상은 불미세기능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광파주파수의식파동을 말하는 것이며, 맛은 물 미세기능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액체분자 의식파동스팩트럼 에너지를 말합니다. 또 냄새는 흙미세기능이라고 표현했는데, 고체 분자 의식파동스펙트럼 에너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감각기관이나 감각대상 또는 인식작용은 모두가 같은 존재의식파동에너지 안의 움직임이므로 그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동일한 의식파동의 작용입니다. 어떤 물질분자나 원자 등 물질의 기본입자가 아니라, 실체가 없는 파동 에너지인 것입니다. 파동이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순시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우주, 지구 등이 모두 견고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들의 미세한 존재의식파동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텅 빈 그림자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의식의 파동주파수로 그려지는 환상의 그림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환상의 그림처럼 허망한 세상과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면, 남는 것은 어무 것도 없는 것인데,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실재(實在),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實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 나라는 것이 바로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입니다.
이 원리를 체험적으로 완전히 깨치면 모든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지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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