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40)

2015. 2. 19. 19:22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40회]


6-4-2. 이성계(耳聲界)가 곧 여래장


 [본문]         

[阿難又汝所明으로 耳聲爲緣하야 生於耳識하니 此識爲復因耳所生이라

耳爲界 因聲所生이라 以聲爲界 ]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서 이식(耳識)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러한 식(識)이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해설]

보통 사람이 알고 있듯이 귀와 소리가 서로 인연이 되어 들음을 아는 이식(耳識)이 생겼다면, 즉 귀와 소리의 인연으로 인해 이식(耳識)이 생긴 것이라면, 이러한 듣는 것을 아는 식(識)이 귀에서 나온 것이 되겠느냐, 아니면 소리에서 생긴 것이겠느냐?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본문]

[阿難若因耳生인댄 動靜二相旣不現前하면 根不成知하고 必無所知인댄

尙無成어늘 識何形貌리요 若取耳聞이나 無動靜故聞無所成이니 云何耳形

雜色觸塵함을 名爲識界 卽耳識界 復從誰立이리요 ]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이식(耳識)이 생긴다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상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에 귀[根]는 알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알지 못한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이식(耳識)에 무슨 모양을 말하겠느냐? 귀의 들음[耳聞]을 취하여 이식(耳識)을 말하려고 하나 ‘귀의 들음’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부진근(浮塵根)인 귀살[耳形]이 색(色)에 섞여서 대상에 부딪힌 것을 식계(識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이것을 식계라고 한다면) 이식계(耳識界)가 무엇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냐?

[해설]

​<만약 이식(耳識)이 귀로 인해서 생겼다면>에서, 귀에서도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읍니다. 한 가지는 부진근(浮塵根), 즉 귀의 물질적인 구조물, 귀의 하드웨어를 말하고, 또 하나는 승의근(勝義根), 즉 물질적인 귀 속에서 능히 듣는 작용을 하는 것,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 웨어, 요즘 의학용어로 귀의 신경계통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귀 속에서 듣는 작용을 하는 승의근(勝義根)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상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에 귀는 알지 못할 것이다>에서, 움직이고 고요한 두가지 상이란 바로 소리의 진동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요함이 따로 있고 움직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고요함과 움직임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소리진동파이므로, 이렇게 정동(靜動)이 교대로 반복되는 소리 진동파가 없으면 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죠. 여기 능엄경의 고대 도인들은 이미 소리진동파가 (0)과(1)로 반복되는 디지탈 진동파라는 것을 그 옛날에도 이미 과학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귀가 앞에 정동(靜動)이 반복되는 진동파가 없다면 소리를 분별못하는데, 만약 소리 진동파가 없다면 이식(耳識)이 무엇을 분별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근(耳根,귀)은 듣는 작용만 하는데, 이근이 작용해서, 귀로 들어서 알 때에 동시에 제6식(識)이 앎의 작용을 해주어야 분별하는 것이죠. 이근만 가지고 듣는다면 듣기는 하지만 무엇이라고 분별하지는 못합니다. 즉 귀로 소리를 듣기만 해 가지고는 무슨 소리인지 분별이 안되고, 6식이 작용해 주어야, 이것은 새소리, 이것은 개짓는 소리,라고 안다는 것입니다. 눈(眼根)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무엇이 무엇인지 형상을 분별을 하지 못하고, 여기에 6식(識)이 작용해 주어야지 저것은 까마귀다, 저것은 사람이다, 등으로 분별하며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根(눈,귀등) 자체는 거울처럼 비치는 작용만 하지 분별은 못합니다. 분별은 그 뒤에 있는 6識이 따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근(根)의 그 작용은 마치 8識 작용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냥 맑은 거울처럼 비치기만 하니깐 말입니다. 중간에 6識이 있어야 분별하고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6識이 없으면, 생각도 없고 말도 없이 거울처럼 비치기만 합니다. 뒤에 나오는 이근원통(耳根圓通)이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6식(識)을 빼버리고 이근(耳根)과 8식의 비치는 작용(관), 듣는 작용만을 관(觀)하는 관법수행입니다.

일상생활에서예 를 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골똘이 하고 있을 때에 누가 옆에 와도 의식은 생각하는데에만 골똘해 있고 눈은 그냥 있으니깐, 앞에 뭐가 오는지는 알지만,누구인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다시 원문에서 동정(動靜), 움직임과 고요함이 반복진동하는 소리진동파가 없으면 귀가 뭘 가지고 듣겠느냐는 말입니다. 즉 소리진동파(聲塵)가 없으면 귀의 듣는 작용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알지 못한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이식(耳識)에 무슨 모양을 말하겠느냐?>에서, 귀가 들음을 알지 못한다면, 안다는 것(識)의 아는 작용이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이식(耳識)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이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또한 귀의 듣는 작용자체가 없는데,어떻게 이식(耳識)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진근(浮塵根)인 귀살[耳形]이 색(色)에 섞여서 대상에 부딪힌 것을 식계(識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에서, 귀의 형체가 色,香,味,觸이 섞여가지고 된 것이니깐, 귀형상이 색진,촉진에 섞여 있는 것을 가지고 이름을 식계(識界)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승의근(귀속에서 듣는 작용을 하는 요소,귀내부 신경계)이 있어야지 승의근이 없이 부의근(浮義根, 물질적 귀구조)인 색진 촉진 두 개만을 가지고 이식계(耳識界)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즉 귀의 물질적 형태이든, 귀속의 신경계 작용이든 소리진동파가 없이 이식계(耳識界)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若生於聲인댄 識因聲有일새 卽不關聞이요 無聞卽亡聲相所在하며 識從聲

하고 許聲因聞하야 而有聲相인댄 聞應聞識이요 不聞非界니라 ]

  만약 이식(耳識)이 소리에서 생긴다면 이식(耳識)이 소리를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듣는 것[聞]과는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고, 듣는 것과 상관이 없다면 소리의 소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이식이 소리에서 나오고, 그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그 소리의 현상이 있다’ 하면 들을 때에 응당 식(識)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듣지 못한다면 계(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해설]

만약 이식(耳識)이 耳根(귀)하고는 상관없이 소리에서만 생겼다면 ,귀에는 듣는 작용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남쪽에서 소리가 나는지, 북쪽에서 소리가 나는지, 북소리인지,나팔소리인지, 소리의 형상과 소재를 알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소리는 귀로 듣는 것으로 인해서 소리의 형상이 있다고 확인하는 것이므로, 귀로 들어야 소리형상이 있는 것인데, 소리에서 식(識)이 생기니까 소리를 들을 때에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식(識)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이식(耳識)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식(耳識)이란 소리를 들어서 생기는 것인데 어떻게 듣겠느냐는 것입니다. 계(界)라고 할수 없다는 것은 듣는 작용이 구성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聞卽同聲하야 識已被聞하니 誰知聞識이리요 若無知音인댄 終如草木이요 ]

  만약 식(識)을 듣는다면 식은 곧 소리와 같을 것이며, 식(識)이 이미 들렸으니 다시 누가 식(識)의 들음을 아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소리에서 나왔다는 그 식(識)은 마침내 초목과 같을 것이다.

[해설]

만약 식(識)을 듣는다면 식(識)이 소리와 같이 듣는 대상이라는 말인데, 저위 본문에서, 소리를 들을 때에 식(識)을 듣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식계(耳識界)가 성립하지 못하고, 또 이 문장에서, 만일 소리를 들을 때에 식(識)을 듣는다고 하면 식(識)이 소리와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로 이미 식(識)을 들었으니까, 식(識)이 ​듣는 대상(所聞)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식(識)이 알아야 되는데, 즉 식(識)이 듣는 주체(能聞)이 되어야 하는데,  듣는 대상(所聞)이 되었으니까, 무엇이 있어 가지고 식(識)을 듣는 줄을 알겠느냐는 얘기입니다.

소리 듣는 것을 아는 것은 이식(耳識)인데, 이식이 들리어서 (듣는 대상인)소리와 같아졌으니까, 이식(耳識) 듣는 것을 무엇이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능히 아는 작용이 있어야 유정(有情)인데, 아는 작용이 없다고 하면 무정물(無情物), 즉 초목과 같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不應聲聞雜成中界하니 界無中位하면 則內外相 復從何成하리요 ]

  그렇다고 응당 소리[聲]와 듣는 것[聞根]이 섞이어서 그 가운데 이식계(耳識界)가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위(中位)의 계(界)를 이미 세울 수 없는데, 안[根]과 밖[塵]의 모습을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겠느냐?

[해설]

근(根,귀)와 소리 사이의 중간에 있는 것이 계(界,이식계)인데, 그 둘이 서로 섞여 중계하지 않았다면, 계(界)에 중(中)이라고 하는 이식계(耳識界)의 위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중간에 이식(耳識)이 있어야 안쪽에 근(根,귀)이 있고, 밖에는 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가운데 이식계가 없으니 어떻게 안(귀)과 밖(소리)이 생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식(識)을 중간에 두고 중계(中界)가 있어야 내상(內相,귀), 외상(外相,소리)을 말하게 되는데, 중계(中界)가 없다면 내외상(內外相)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是故當知하라 耳聲爲緣生耳識界어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耳與聲及聲界三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

  그러므로 응당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 허망한 이식계(耳識界)를 내거니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귀와 소리 그리고 이성계(耳聲界) 이 셋이 그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해설]

그러므로 당연히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 이식계를 내는데, 이 세가지가 모두 실재하는 것이 아닌 허망한 상(相)이며, 이것들의 본 바탕 성품(性)은 인연으로 생긴 것도 아니요, 자연적으로 있는 것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如來藏 妙眞如性)이라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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