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그것이다(2)

2014. 1. 20. 20:05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질문 : 이 '나'라는 생각은 소리와 느낌과 같은 속도로 진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를 생각할 때는 그 소리가 상기됩니다. 이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계속 진행되는 이 진동을 상기하기 위해서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안나말라이 스와미 : 그대가 자신의 진정한 자기(진아)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유일한 방도는 그대의 진정한 자기(진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시간 동안 그 빛을 켜줄 수 있으면, 어둠은 그대의 방안으로 들어 올 수 없읍니다. 설사 그대가 문을 열어서 들어 오라고 해도 들어 올 수가 없읍니다. 어둠은 단지 빛이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단지 자아에 침범되어 진아의 빛이 의도적으로 차단된 어두운 지역일 뿐입니다. 타당성이 없는 관념들을 그대가 고집스럽게 신봉하면 그 어둠 속에서 살게 되고, 좋고 나쁜 관념들을 포기해 버리고 나면 진아의 빛 안에서 살게 됩니다. 

 

질문 : 그러니까 당신께서는 제가 하나의 육체이고 특정한 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 순전히 상상이라고 말씀하시는군요. 아니 그보다도 오히려, 그것은 제가 떨쳐 버려야 할 하나의 나쁜 습관이라고 할까요?

 

스와미 : 맞습니다. 이 습관이 너무 강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을 여러 생에 걸쳐 보강하고 강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의 진정한 자기(진아)에 대해서 명상하면 그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 습관은 마치 얼음이 물이 되듯이 녹아 없어지겠지요.

 

질문 : 바가반께서는 언젠가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의 행위는 예정되어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권은 (자신을) 그 행위들을 하는 육체와 동일시할 것이냐, 아니면 그 안에서 육체가 나타나는 저변의 진아와 동일시할 것이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어떤 사람이 한번은 바가반에게 말했읍니다. " 만약 제가 이 부채를 놓는다면, 그것은 이 순간에 일어나기로 항상 정해져 있던 행위입니까?"

그리고 바가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것은 예정되어 있는 행위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예정된 행위들은 모두 신이 정해놓은 것이고, 그 결과 신의 의지가 아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신이 정해놓은 각본에서 벗어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납니다. 만약 제가 진아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신의 의지입니까?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기억하는 것을 잊어 버린다면 그것 역시 신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저 자신의 경우를 예를 들어, 만약 제가 '나-나'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신의 의지입니가, 아니면 개인적인 노력입니까?

 

스와미 : 진아를 잊어버리는 것은 탐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탐구를 통해서 망각을 제거하라"고. 잊어 버림과 잊어버리지 않음은 그대의 운명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가 순간순간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이 바가반께서 말씀하신 뜻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그대는 (자신을) 육체 및 그 행위들과 동일시하여 진아를 잊어버리든지, 아니면 진아와 동일시하여, 육체는 자기에게 예정되어 있는 행위들- 진아의 힘에 의해 발동되고 유지되는- 을 수행한다는 것을 이해하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에게 기름등잔이 있다고 할때 그 안에 기름 넣는 것을 잊어 버리면 불빛이 나가버립니다. 불빛이 나가버린 것은 그대가 기름 넣는 것을 잊어 먹었고, 정신 차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딴데로 가 있었던 것이지요. 생각이 등잔을 돌보는 데 가 있지 않았습니다. 매순간 그대는 단 하나의 진정한 선택권을 갖습니다. 진아(자기)를 자각할 것이냐, 아니면 육체 및 마음과 동일시할 것이냐 하는, 만약 후자의 길을 택한다면 , 신이나 신의 의지, 혹은 (모든 일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신은 그대가 진아를 잃어버리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대 삶의 매순간 그대 자시닝 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 스와미님의 책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께 여쭈었읍니다. "저는 결정을 합니다만, 제가 이런 결정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운명이거나 신의 의지일 뿐입니다." 당신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 말이 옳다고 답변하셨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자기 탐구를 하느냐 않느냐가 운명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스와미 : 진아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대가 자초한 무지 외에는 어떤 것도 진아에 대한 그대의 자각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수행은 이 무지를 제거하는 데로 향해집니다. 이 무지가 제거되면 진정한 자기(진아)가 드러납니다. 이 드러남은 운명의 일부가 아닙니다. 외부적인 육체적 행위들만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질문 : 그러니까 저의 내적인 삶은 저 자신의 책임이군요. 제가 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가반을 비난할 수 없겠읍니다.

 

스와미 : 바가반은 그대의 안에, 그리고 그대의 앞에 항상 존재합니다. 그대가 자신의 에고로써 바가반에 대한 시선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에고는 '나는 육체다' 하는 관념입니다. 이 관념을 제거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진아로써 빛나게 됩니다. 그것이 금생에 그대가 해야 할 단 한가지입니다. 그대의 삶에서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 - 그대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 - 은 모두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를 그대가 원치 않고, 심지어 그것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해도, 그 일은 일어 납니다. 그리고 설사 그대가 자신의 운명에 없는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해도, 그런 일은 그대에게 닥쳐오지 않습니다.

그대의 삶에서 겪는 외부적 사건들에 대해서 걱정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런 정해진 행위들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생에서 그대의 책임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지, 그대의 인생각본을 새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신, 운명 혹은 바가반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스와미 : 맞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이 바가반은 한 육신, 즉 어느 때에 존재했던 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가 바가반이고 모두가 라마나입니다.  바가반의 길을 따르는 데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가반은 항상 타오르고 있는 영원한 빛, 항상 베풀어 주고 있는 하나의 은총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가반을 자각한다는 것은 이 내적인 진리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이 바가반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책임이지 그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는 그대로부터 숨지 않습니다. 그대가 그로부터 숨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그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자신이 그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질문 : 바깥세상은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스와미 :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 역시 바가반의 은총, 바가반의 자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는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유인(誘引)으로써 세상을 이렇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의 진정한 선택을 설정합니다.

즉,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문제들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평안이 있습니다.

 

질문 : 때때로 제가 고민하게 되는 이 문제의 다른 어떤 측면에 대해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진아 안에 몰입되고자 하는 욕망은 어떤 원습같이 보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욕망이고, 거기에 몰두한다는 것은 제가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되면, 저는 자신이 깨달음을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닌 어떤 미래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태도에는 아주 이원적인 면이 있어서, 저는 때때로 이런 느낌을 갖습니다. 즉, 제가 만약 지금 여기 없는 어떤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제가 현재로서는 바가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요.

 

스와미 : 그런 욕망이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에 대한 욕망은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대가 진아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발걸음을 결코 내딛지 않을 테니까요.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어떤 특정한 장소로 걸어가려는 욕망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런 욕망이 없으면 첫 발자국도 결코 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아를 깨닫게 되면 그런 욕망도 사라집니다.

 

질문 : 진아는 불변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저에게는 그것에 대한 저의 경험이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더 강렬하고 깊습니다. 어떤 때는 평안과 지복이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은 더 많은 평안과 더 많은 지복을 원합니다. 아함스푸라나('나-나'의 방사)를 듣거나 느끼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에게 문제가 생깁니까? 제 수행을 계속 밀고 나가고 싶은 욕망은 올바릅니까? 매순간 저는 변치않는 어떤 것에 대한 약간의 체험을 갖는데, 그것은 아함 스파루나를 듣거나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더 깊히 들어가고 싶고, 더 많은 평안, 더 많은 지복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제가 갖는 경험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수행을 하고 싶은 이러한 욕망은 좋은 욕망입니까, 아니면 그것은 진아자각을 방해하는 것입니까?

 

스와미 : 그대가 궁극적인 욕구는 진아의 변치않는 평안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읍니다. 만일 그대가 실재하는 상태에 있으면, 아무 부족한 것도 없고, 어떤 다른 상태를 밀고 나가려는 아무 욕망도 없겠지요. 깨달음 안에서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아무 욕망도 없을 것이고, 어떤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없을 것입니다. 이 최종적 상태는 오직 평안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욕망과 의심이 없습니다.

 

질문 : 저는 스와미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뭔가 더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와미 : 그대가 누구인가를 보십시요.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조언입니다. 그대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이 되십시오. 그러면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아무런 갈망이 없을 것입니다.

 

질문 : 문제는 그 평안을 요구한다는 것,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스와미 : 요구하는 자는 그대가 아닙니다. 오고 가는 생각들은 그대가 아닙니다. 오고 가는 그 어떤 것도 그대가 아닙니다. 그대의 실체는 평안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슈리 안나말라이 스와미의 마지막 가르침

                                                      -마음은 없다-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