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1. 10:36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저는 가족이 있는 사람입니다. 가족 내에 있는 사람들도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런데 가족이 무엇입니까? 그게 누구의 가족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발견하면, 다른 의문들도 스스로 풀립니다.
(방문객이 대답하지 않자, 마하리쉬 답변이 계속되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그대는 삶의 세 가지 측면, 즉 생시,꿈, 잠의 상태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잠 들었을 때는 가족이나 그들과의 인연을 자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런 질문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나 그들과의 인연을 자각하고, 그래서 해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방문자 : 저는 지금 가족 내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하리쉬 : 맞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하고 말해 보십시오. 그대가 가족 안에 있습니까, 가족이 그대 안에 있습니까?
(다른 방문객이 끼어 들었다) : 가족이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바로 그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문자 : 제 처가 있고 제 자식도 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족입니다.
마하리쉬 : 그 가족 구성원들이 그대의 마음을 속박합니까? 아니면 그대가 자신을 그들에게 묶어놓습니까? 그들이 와서 그대에게 "우리는 당신의 가족입니다. 우리와 함께 있어 주십시오" 합니까? 아니면 그대가 그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방문자 : 제가 그들을 저의 가족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속박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마하리쉬 : 아무렴 그렇지요. 아무개가 그대의 아내이고 아무개가 그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그들에게 속박되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은 그대의 것입니다. 그 생각들의 존재성은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그런 생각을 계속 할 수도 있고 그것을 놓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속박이고, 후자는 해탈입니다.
방문자 :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마하리쉬 : 생각을 하려면 그대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 생각들은 변하지만 그대는 변치 않습니다. 지나가는 그 생각들은 가게 하고, 불멸의 자기를 착파하십시오. 그런 생각들이 그대의 속박을 이룹니다. 그것을 놓아 버리면 해탈이 있습니다. 속박을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해탈을 위해 어떤 외적인 치유책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을 하고 그래서 속박되느냐, 아니면 생각을 그치고 자유로워지느냐는 그대가 능히 할 수 있는 범위내의 일입니다.
방문자 :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하리쉬 : 생각을 그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생각들의 뿌리를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찾아서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진아가 스스로 빛납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생각들은 저절로 그칩니다. 그것이 속박으로부터 자유입니다.
방문자 : 예, 이제 이해됩니다. 이제야 그것을 배웠습니다. 스승은 필요합니까?
마하리쉬 : 그대 자신을 한 개인으로 여기는 한, 스승이 필요하지요. 그대는 제한들에 의하여 속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대의 성품은 제한들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그대에게 보여줄 스승말입니다.
다른 방문객 : 행위들은 속박입니다. 우리는 무슨 행위인가는 하지 않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속박은 계속 늘어 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그 속박이 강해지지 않고 약화되도록 행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심(私心)이 없는 행위입니다.(150)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여담(餘談)]
위 본문에서 <억지로 생각을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의 뿌리를 찾아서 발견하면 생각은 저절로 조용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의 뿌리를 계속 생각하면서, 그것을 추구하면 결국은 생각의 뿌리에 안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아탐구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생각의 뿌리는 어떤 것인가요?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오늘도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었네요.
생각의 뿌리는 바로 "내가 있다"를 말합니다. 나의 존재의 뿌리가 바로 생각이 나온 뿌리이며, 또한 이원적인 앎, 또는 분별앎, 지성(知性)의 뿌리입니다.
위의 원문에서 마하리지는 <생각의 뿌리를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생각의 뿌리'는 우리 구도자가 이원화 분별의식으로 느끼 때 어떤 상태일까요? 과연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략은 알아챌 수가 있습니다. 일단 "내가있다" 그 속에 들어가서 하나가 되어야 겠지만, 우선 그 전에 우리가 보통 이원화 분별생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일단은 초기에는 '꿈없는 잠'같이 전혀 자신의 존재조차 잊은 망각상태와 같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속에 들어가서는 전체적인 깨어있음이 있지만, "내가 있다"를 알지 못하는 구도자의 입장에서는 "깊은 잠"과 같이 아무 것도 모르고, 지복을 느끼지 못하는 지복상태, 즉, 나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망각상태가 바로 나라는 느낌의 뿌리인 "내가 있다"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런데 이원화상태의 생시 상태에서 바로 "깊은 잠"같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진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생각의 움직임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수많은 수행체계와 방편들이 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몸도,마음도,생기의 움직임,세상도 아닌 이 나는 무엇인가?"라고 자신의 내면을 행해서 질문하면서 내면(모름) 속으로 깊히 들어가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있다"는 바탕에 도달해서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이죠.
간화선 같은데서 이와 비슷한 화두는 "이뭣꼬?" 화두가 있고, 또한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던고?"하는 화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법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라마나 마하리쉬와 같은 인도 비이원적 베단타 계통의 도인이면서도 좀 다른 방편으로 가르쳐 주는 이가 바로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입니다. 이분은 "내가 있다"에 안정하려면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합니다. 즉 "깊은 잠"같은 상태로 말없이 그냥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이전의 기초수행은 간단한 만트라 같은 것으로 마음을 안정되게 자리잡으라는 말씀도 간혹 하십니다.
불교 선수행 측면에서 보자면 라마나 마하리쉬는 간화선 방식의 수행방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는 <묵조선>방식으로 수행하라는 가르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실참하는 방식(자아탐구법)을 뚜렸하게 말씀하셨는데,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님은 "내가 있다"에 머무르라는 말씀만을 강조하시는데, 초보수행자들은 뚜렸하게 "내가 있다"에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있다"가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하게 마음에 새기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다"상태를 어떤상태와 비슷한가를 굳이 표현하자면 새벽에 깊은 잠이 들었다가 처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라는 느낌이 밖으로 주의가 나오기 직전 상태, 즉 홀로 깨어있음의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잠과 깨어있음이 반반 섞여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상태를 말로만 들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상태를 직접 되어보아야 알지요.
따라서 평상시 깨어있을 때에 눈 감고 수행을 할 때에, 마음이 안정되어 무심해지면, 눈 감은 속에서 깊고 검푸른 빛이 충만한 공간의 시야가 눈앞에 나타나는데, 바로 그 검푸른 빛의 공간인 시야를 주시하지 말고,그 속에 들어가 하나가 된 상태로 말(생각)없이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몸의 느낌이 그 깊고 검푸른 무한 공간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는 바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선불교에서 묵조선 수행과 비슷한 것입니다.
반면에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법은 간화선의 "이뭣꼬?"(是甚痲)나 "부모미생전 나는 무엇이었던고?"같은 화두선 수행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수행체계나 스승들의 가르침을 상호 비교해 보면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비교 연구하는 과정에서, 깨달음법에 대한 이해가 쉽게 오고, 실참수행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홀로 수행공부를 하는데 참고되시기 바랍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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