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8. 10:50ㆍ성인들 가르침/금강경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21)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불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不來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불래 시고명아나함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이름이 '돌아오지 않는 자'를 말하오나 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없기에 그 이름을 아니함이라 하였을 뿐입니다.">
아나함은 불환(不還) 또는 불래(不來)라고 하므로, 돌아오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욕계(欲界)에서 모든 업의 빚을 갚어서 욕계의 인간세상에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나함에 이르른 사람이 과연 "내가 아나함과를 도달했다"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남에게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물었읍니다.
그러니깐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 아나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함이 아니므로 그 이름을 아나함이라고 한다"라고 대답합니다. 즉 돌아오지 않는 자, 아니함이라는 것은 이름일 뿐이고, 실제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고, 나간다는 생각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아나함을 얻었다"라고 말한다면 실제로는 아나함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스스로 남에게 이야기한다거나 혼자서 생각한다면 이것은 실제로는 깨달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착각 속으로 들어가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주요한 핵심 가르침이 모든 상(相)과 함께 절대 깨달음 상태인 법상(法相)에 대한 집착마저도 완전히 없애 버려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일반 명상단체에서는 오히려 최면암시기법을 활용해서 법상(法相)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는 가르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일반인이 운용하는 여러 종류의 명상단체나 소규모 종교 같은데서는 오히려 신자나 수행자들에게 절대 깨달음의 상태인 법상(法相)을 최면 암시기법으로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방편을 써서 자기최면에 의한 상상적인 유사 견성체험을 유도하고, 그런 유사체험을 한 수행자가 견성한 것처럼 인정해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견성을 했다고 소문이 났고, 그 동안 별로 수행도 하지 않은 보통사람 또는 초보자라 할지라도 쉽게 견성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난 명상단체를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견성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소문이 난 명상단체는 가르치는 사람의 최면암시기법이나 자기 최면기법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순진한 구도자들에게 견성체험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간판으로 소문을 퍼트려서 유혹하는 경우가 흔하게 있읍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의 명상단체를 의도적으로 지적해서 비판하는 말이 아니며,
현시대 구도 사회의 일반적인 잘못된 분위기를 이야기를 한 것 뿐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名 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명 아라한 세존 약아라한 작시념
我得阿羅漢道 卽爲着我 人衆生 壽者.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 인중생 수자.
世尊 佛說我得無爭三昧 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 인중최위제일 시제일이욕아라한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 아불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則佛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세존즉불설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而須菩提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이수보리실무소행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을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진리라고 할 것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라한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라고 하면 이는 곧 아상, 인상,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함이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며, 욕심을 여읜 제일의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셨으나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지만, 실로 아란나행을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
아라한은 그 단어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아>는 "없다"는 뜻이고, <라한>은 "도적"이라는 뜻으로 <탐심(貪心)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뜻으로 모든 번뇌를 다 끊어서 마땅히 공양받을 만 하다 하여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며, 또는 안과 밖이 다툼이 없으므로 무쟁(無諍)이라고도 하며, 번뇌의 도적을 죽인다하여 살적(殺敵)이라고도 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여 무학(無學)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영원히 악(惡)을 벗어났다 하여 이악(離惡)이라고도 하고, 더 이상 나고 죽지 않는다고 하여 무생(無生)이라고도 합니다.
깨달음 상태에서는 가장 높은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는 석가모니도 아라한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소승 아라한보다 더 높은 과위에 부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읍니다.
위의 본문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아라한이 자기가 아라한이라고 생각하겠느냐?" 고 물었읍니다.
그랬더니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아라한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진리라고 할 만한 상(相)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읍니다.
즉 아라한이 되면 모든 상(相)에서 벗어 났으며, 원래부터 있는 청정한 자성은 생멸(生滅)도 없고, 갈등이 없으며, 본래부터 부동한 자성뿐이므로 드러날 것이 없는 것이죠. 즉 비이원적인 상태에 있으므로 "없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아라한이 자기가 아라한에 도달했다고 여긴다면 아직까지 "내가 있다"는 아상,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깨달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아직도 "나라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말하는 주체가 "나"이므로, 아직 "나"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깨달았다면 깨달은 주체가 사라져서 나라는 상(相)조차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며, 욕심을 여읜 제일의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셨으나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지만, 실로 아란나행을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
무쟁삼매(無爭三昧)라는 것은 마음이 텅 비어 안과 밖이 고요하고, 상대성을 떠나서 경계를 대해서 거스르거나 따라가지 않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응하고 너그럽게 수용하는 까닭에 항상 다툼과 거스름이 없는 경지로 절대 본 바탕에 안정되어 있되 무위행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물처럼 다툼없이 자유스럽게 흐르는 상태를 무쟁삼매라고 합니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수제자로서 무쟁삼매를 얻은 성인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하고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합니다.
"아라나행을 즐기는 자"라는 말은 "번뇌가 없는 고요함, 적정을 즐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어떤 시비분별도 없는 텅 비고 고요한 본 바탕에서 있는 그대로, 마치 물이 자유롭게 흐르듯이, 무위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보리 자신은 번뇌없이 고요한 절대바탕에 머물러 적정을 즐긴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번뇌없이 고요한 적정 속에서 아나라행을 즐기는 자라고 인정해 주었다고 수보리 자신이 말하고 있읍니다.
어디에도 머문바 없이,
모든 것을 다 흘려 보내는 무위행(無爲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쉼(休)이죠.
어느 세월에 그 완전한 <쉼>의 상태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비추는 그 반야 안에
그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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