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8. 10:30ㆍ성인들 가르침/금강경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19)
제9분 一相無相分(일상무상분)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다원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향미촉법
是名須陀洹
시명수다원
須菩提 於意云何 斯陀含 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사다함 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사다함명일왕래 이실무왕래 시명사다함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불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不來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불래 시고명아나함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名 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명 아라한 세존 약아라한 작시념
我得阿羅漢道 卽爲着我 人衆生 壽者.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 인중생 수자.
世尊 佛說我得無爭三昧 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 인중최위제일 시제일이욕아라한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 아불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則佛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세존즉불설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而須菩提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이수보리실무소행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제9분 깨달음은 상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생각하기를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노라'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이름이 '흐름에 든 자'를 말하오니 실은 들어 간 바가 없읍니다. 그는 형상에 들지 않았으며, 소리,냄새,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상에 든 것도 아니기에 수다원이라 이름 합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노라'고 말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이름이 '한번 갔다 오는 자'를 말하오나 실은 가고 온다는 생각이 없기에 그 이름을 사다함이라 하였을 뿐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이름이 '돌아오지 않는 자'를 말하오나 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없기에 그 이름을 아니함이라 하였을 뿐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을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진리라고 할 것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라한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라고 하면 이는 곧 아상, 인상,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함이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며, 욕심을 여읜 제일의 아라한이라고 말씀하셨으나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지만, 실로 아란나행을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수보리는 아란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
이 9분의 제목이 양나라 소명태자가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이라고 지었는데, 깨달아서 모든 것이 '하나'로 합일되면, 그 하나는 아무 것도 없는 무상(無相)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보통 수행을 해서 궁극의 도에 들어 가는 것을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하나'라는 것이 무상(無相)이라는 것입니다. 상(相)이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속세의 마음상태를 "이원화(二元化)상태"라고 합니다.
이원화라는 것은 보는 자와 보는 대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즉 주체와 객체가 둘로 분리된 것으로 의식이 분활되어 개인 각자가 주체가 되고, 자기 외에는 모두 객체로 여깁니다.
그런데 깨달으면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됩니다.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된 상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따로 떨어진 주,객이 합쳐지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로(無)가 됩니다.
이원화가 통합되면 일원화가 되어야 할것 같은데 그렇지 않읍니다.
그래서 이 상태를 비이원화(非二元化)상태라고 부릅니다.
얼뜬 생각하면 주,객 이원화가 하나가 되면 일원화(一元化) 상태라고 불러야 할텐데, 비이원화(非二元化) 상태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공(空)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주체와 객체가 합일되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 깨달으면 전체가 하나(一相)된다는 것은 바로 무상(無相)의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9분의 제목에서 모든 깨달음의 결과는 무상(無相), 상(相)이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대한 해설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소승(小乘) 사과(四果)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불교학은 대승 측에서 일방적으로 나눈 대승과 소승으로 나누어집니다.
또 소승도 성문(聲聞)과 소승보다 좀 높은 단계로 독각(獨覺), 연각(緣覺)으로 나눕니다.
대승측의 주장은 소위 소승이란 먼저 자신의 깨달음만 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소승의 성문은 다시 사과(四果)로 나누는데, 초과(初果)를 수다원, 이과(二果)를 사다함, 삼과(三果)를 아나함, 사과를 아라한 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들은 모두 산스크리트어의 소리를 비슷한 한자음으로 맞추어 지은 이름입니다.
그럼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사과(四果)에 이르는가?
여러가지 참고서적들을 종합해 간단하게 내용을 간추려 보겠읍니다.
이 단계에 올라가는 필수적인 요건은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끊어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견혹에는 다섯가지(五見)가 있는데, 바로 신견(身見내가 있다는 생각),변견(邊見어느 한 극단에 사로 잡힌 견해), 견취견(見取見,수행하는 동안에 얻은 체험에 집착),사견(邪見,항상 삐딱하게 보는 자세) 계금취견(戒禁取見 종교 계율,의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말하자면 견해와 관점,철학적 고정관념, 신념, 신앙등에 관계된 집착을 말합니다.
사혹에도 다섯가지가 있읍니다. 바로 탐(貪),진(嗔),치(癡),만(慢),의(疑)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본능적인 정신적 나쁜 습관을 말합니다. 즉 탐욕,성냄,어리석음,게으름,의심의 정신적으로 지니고 있는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습관들입니다.
초과인 수다원(須陀洹)은 그 산스크리트어의 의미가 "흐름에 들어간 자"입니다.
즉 성인의 지위에 처음 들어간 상태이며, 무위(無爲)의 흐름에 방금 들어간 자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보통 예류(預流)라고 부릅니다.
다섯 견혹(見惑)은 끊었으나 사혹(思惑)은 아직 완전히 끊지 못했읍니다. 남아 있는 습이 있어서 업을 완전히 갚지를 못해 욕계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앞으로 일곱번을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업을 갚아야지 욕계에서 색계인 천상에 올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욕계와 색계의 경계선 주위에 있는 상태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이과인 사다함(斯陀含)에 도달하면, 이 세상에 한번만 오면 됩니다. 수다원보다는 업이 많이 갚어진 상태로 죽은 뒤에 이 세상에 한번만 와서 남은 업의 빚을 청산하면 천상으로 올라 갑니다.이 자는 견혹(見惑)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사혹(思惑)인 탐진치(貪嗔痴)도 많이 희박해진 사람입니다.
삼과인 아나함(阿那含)의 뜻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천상에서 마지막 사과(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든다고 합니다. 욕계에는 완전히 부채를 상환하여 이제 아무런 빚이 없으므로 다시는 인간세상인 욕계에는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과인 아라한(阿羅漢)의 뜻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소승불교에서는 인간이 수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합니다. 아라한은 태어나지도 않고, 영원히 번뇌가 없으며, 마(魔)의 장애가 없고 마음 속의 적(賊)이 뿌리채 뽑혀서 영원히 청정하게 빛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無學"의 상태입니다. 아라한은 미망세계인 삼계(욕계,색계,무색계)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지만, 대승에서는 붓다의 위치보다 아래로 설정되어 있읍니다.
위와같이 소승불교의 사과(四果)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고 다음 회부터 본문 이야기에 들어가겠읍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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