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 바른 믿음은 드믈다"에 대하여(2)

2013. 8. 28. 19:38성인들 가르침/금강경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13)

 

제6분 정신희유분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불법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 후오백세 때에도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공부하는 구도자들이 어떻게 해서 시간의 변화에 전혀 관계없이 그 오랜 세월을 그대로 남아 있을 수가 있느냐 하는 원리에 대하여 부처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當知 是人 不於一佛 二佛 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

당지시인 불어일불 이불 삼사오불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

所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生淨信者

소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생정신자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은 한 부처,두 부처,세 부처,네 부처, 다섯 부처에서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에서 선근을 심어 놓았으므로, 이 구절을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이 생길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當知)"라는 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보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 확실하게 알아야 될 것이라고 부처님이 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주의를 주는 것이죠.  

 

<是人 不於一佛 二佛 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

이 사람은 한 부처,두 부처,세 부처,네 부처, 다섯 부처에서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 문장에 주의를 줄 필요가 있읍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여래가 멸한 후오백세인 현시대에 바로 깨달음을 구하고 있는,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나"입니다.

<한 부처, 두 부처, 세부처, 네 부처, 다섯 부처에서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다>라는 묘사는 어떤 사람이 한 부처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선근을 심고, 그 부처가 또 다음 사람에게 전수해서 선근을 심고,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계속 릴레이 식으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불법이 전수된다는 말씀 같읍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한 생애 안에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불법의 전달이 인과관계(因果關界)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이원화 세계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렇게 인과 관계의 사슬이 이어지면서 불법을 전승해 온 것처럼 여기지만, 불법은 그렇게 심어진 것이 아니라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것은 제자가 자기 생애에서 한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또 인연있는 다른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데, 이러한 인과관계로 선근(善根)이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과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으로 깨달음 불법이 시간적으로 전수된다면 세월이 오래되면 어떤 지역에서는 전통이 끊어질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인도 본토에서는 불법의 전수가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다만 고적만 남아 있읍니다.

그리고 이원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여래의 측면에서 보면 꿈이나 환상과 같이 실체성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부처님은 어떤 한 생애에서 한 부처나 두세 부처에게서 선근이 심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미 선근은 우리 모두의 내면속에서 과거의 수천만 부처에 의해서 심어져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형태로 선근이 심어질까요? 어떤 형태로 불법이 순수하게 보전될까요?

 

[已於無量千萬佛 所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生淨信者

이어무량천만불 소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생정신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에서 선근을 심어 놓았으므로, 이 구절을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이 생길 것이다.

<이미 수천만 부처에게서 선근이 심어져 있다>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의 조건 변화에 관계없는 전체 인연작용에 의하여 불법의 선근이 항상 내면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인연법에 의하여 수억천만년 과거에서부터 수천만회의 전생을 반복해 오면서 수천만 부처의 선근이 이미 심어져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현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전체 인(因)과 연(緣)으로 엮어진 파동성 의식그물인 제8아뢰아식에 항상 씨앗형태로 저장이 되어 있읍니다.

전체가 일체인 순수한 파동의식의 그물 안에 수억천만의 모든 정보의 종자씨앗들이 마치 홀로그램 파동형태로 엮어져서 저장되어 있읍니다.

 

이것이 어디에 새겨져 있겠읍니까? 

모든 만물, 모든 생명체 안에 동일하게 있으며, 또한 바로 "나"의 내면에 새겨져 있읍니다. 나의 어느 부분에 심어져 있겠어요?

의식의 뿌리, 아뢰아 저장식에 바로 과거부터 수천만 부처들이 심어논 선근(善根)이 이미 저장되어 있읍니다. 

따라서 이미 누구든지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것이 눈 앞에 드러나 있지만 분별마음에 가려져서 드러나지가 않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분별마음이 엷어져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즉 < 무릇 있는 바 상이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형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즉시 여래를 볼 것이다.> 라는 구절을 잠깐 듣기만 해도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이 즉시 일어날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청정한 믿음, 믿음 중에서도 순수한 믿음은 그 개인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항상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래부터 지니고 있는 선근(자연 주시,깨어있음)이 드러날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로 "지금 여기"에 머무르라는 것이죠.

'지금 여기'에서 항상 청정하게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선근(善根)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대상에도 머문바 없이 행하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맨 처음의 한부처, 두 부처-- 에게서 선근을 심을 때는 인과관계로서 시간의 흐름으로 따라가는 이원화된 유형(有形) 현상세계의 일이지만, 

두번째의 이미 수천만 부처가 동시에 선근이 심어져 있는 인연법은 시간요소와 공간요소가 생기기 이전의 내면의 비이원화된 무형(無形)의 종자(種子)의식인 것이죠.

그것은 바로 모든 만물의 공통바탕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선근이 잠자고 있는 곳이 바로 아뢰아식 또는 여래식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여기서 선근(善根)이라는 것에 대하여 좀 알아 볼 필요가 있읍니다.

이 선(善)은 악(惡)하다는 것의 반대인 '착하다'는 뜻이 아니라, '불법과의 인연뿌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꼭 불교와 관계된 불법만이 선근이라고 할 수 없고, 모든 종교와 모든 정신적인 것의 가장 순수한 공통적인 깨어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각묵스님의 산크리트어 원전 금강경 주해본을 보면 이 선근(善根)이라고 번역된 산스크리트 원문은 <쿠살라 물라>라는 말인데, 인도에 전통적 제사에 쓰이는 쿠사풀은 마치 억새풀처럼 억세고 날카로워서 그 풀을 뜯을 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손을 베이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살라 물라>라는 말은 <지혜로운 주의> 또는 <청정한 깨어있음> 또는 <자연주시>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선근(善根)이라고 번역을 한 것이죠.

다른 말로는 이것을 "탐진치(貪嗔痴)가 없는 깨어있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깐 순수한 마음의 뿌리라고 보면 되겠네요.

따라서 선근(善根)이라는 것은 '순수한 의식의 깨어있음', 즉 '원천적인 자연주시상태', '말없는 깨어있음'으로 이해하면 되겠읍니다.

이렇게 이미 우리들의 의식 뿌리에 수천만의 부처가 심어논 순수한 불법의 선근이 이미 심어져 있으므로, 어떤 사람은 금강경 사구게 한마디만 듣고도 한 생각에 즉시 순수한 믿음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금강경오가해에서 육조 혜능스님이 일상 삶에서 개인이 선근(善根)을 심는 것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내용을 들어 보겠읍니다.

<무엇을 이름하여 선근을 심었다 하는가, 아래에 간략히 설하면,

이른바 모든 부처님 처소에 일심으로 공양하여 교법을 수순하고, 모든 보살과 산지식과 스승이나 스님과 부모와 연세 많은 분이나 덕이 많은 분 등 존경하는 분들의 처소에 항상 공경공양하고, 높은 가르침을 받들어서 그 뜻을 어기지 않음을 이름하여 모둔 선근을 심는 것이라 함이요, 육도의 모든 중생에게 살해를 가하지 않으며 속이지도 않고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해치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으며 타지도 않고 채칙질도 않으며 그 고기를 먹지도 않으며, 항상 이익되게 행함을 이름하여 모든 선근을 심는 것이라 하느니라.

일체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중생에게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가벼이 여기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구하려 하면 힘을 따라서 베풀어 줌을 이름하여 모든 선근을 심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악한 무리에게 스스로 화애하고 인욕을 행해서 즐거이 맞이하여 그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해서 사나운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을 모든 선근을 심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선근을 심는다는 것에 대하여 쉽게 풀어 놓았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이 당대에 삶을 살면서 불심을 가진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지, 원래부터 마음바탕에 지니고 있는 수천만 부처가 심은 바탕 선근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네요. 

 

아래 사진은 우리의 내면 의식의 구조를 상징하는 우주만다라 그림입니다.

이것은 이 우주 전체와 우리들의 내면 의식을 시간과 공간요소를 모두 함축해서 한 평면 그림 안에 단순화시켜 그려논 그림입니다.

이것은 마치 단일 레이져 광선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램 파형과 비슷하게 동심원을 기본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그림입니다.

가운데 사각형 안은 수천만의 부처와 보살,아라한들이 선근을 심어논 자리입니다. 그 사각형 안을 불국토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심부 절대바탕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가 있죠.

밖으로 나갈 수록 동심원이 넓어지므로 의식파동이 거칠어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각형 밖은 인간, 귀신,악귀,아수라, 동물,식물의 세계입니다.  

이 만다라가 바로 항상 <지금 여기>의 불국토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 내면의식의 구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간에 종속된 인과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체가 인(因)과 연(緣)으로 엮어진 하나의 둥그런 우주 그물입니다.

그 속에 우주현상세계와 내면세계 전체가 축약되어 있읍니다. 

이것을 삼사라의 윤회 수레바퀴로도 상징할 수가 있읍니다.   

"지금 여기"라고 하는 데가 만다라 그림에서 가장 중심점 부처자리를 말합니다. 

티벳트나 인도에서는 이런 만다라 그림을 보면서 명상 속에 들어 가기도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위의 금강경 원문은 구라마집본이며, 다른 본은 이와는 좀 번역내용이 다릅니다.

또한 구라마집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是人 不於一佛 二佛 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

이 사람은 한 부처,두 부처,세 부처,네 부처, 다섯 부처에서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 부분으로 <불어(不於)>를 다르게 번역한 데가 많읍니다.

즉 <이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 세 부처, 네 부처, 다섯부처에서 선근을 심었을 뿐 만 아니라~>라고 해서 <不於>를 <~심었을 뿐만 아니라>라고, 즉  <심었다>고 번역한 책이 많읍니다.

그런데 저는 <심은 것이 아니다>라고 단정적인 부정으로 번역한 것을 선택했읍니다. 왜 다른 번역서와 다르게 번역을 했느냐 하면, 부처님은 현상적인 인과관계로 선근이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천만 부처에 의해서 선근이 심어져 있으므로  현상세계에서 개인 대 개인의 인과 관계로 선근이 심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셨죠.

 

수보리가 불법이 쇠퇴하는 후오백세에도 이 법문을 보고는 믿음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부처님이 (그런 말하지 말라)라고 꾸짖은 것이 바로, 불법은 시간이 지난다고 쇠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왜 불법이 쇠퇴하지 않느냐 하면 바로 모든 중생의 아뢰아식 내면에 이미 수천만 부처들이 선근을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법의 심지는 드러난 현상세계에서 사람과 사람 간에 가르쳐 주고 가르침 받는 그런 유형(有形)의 현상적인 작용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고 알수도 없는 비이원적인 무형(無形)의 것이므로 외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억천만년을 내려오는 동안 수천만부처의 선근이 저장된 내면의식의 뿌리인 아뢰아식과 여래식에서 이미선근이 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대에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도 불법의 선근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근을 저절로 드러나게 분별마음의 구름을 걷어내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스승의 역활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말하자면 선근(善根)은 모든 중생들이 마음 내면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것이지, 외부 스승이나 경전같은 데서 배워서 선근이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현세의 스승한테 배우지 않아도 경전의 사구게같은 명언을 듣기만 해도 즉시 청정한 믿음을 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산스크리트 원본의 번역문을 보면,

<참으로 다시 수보리여, 미래세의 보살 마하살들은 한 부처님만을 섬기고 한 부처님 밑에서만 선근을 심은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참으로 다시 수보리여, 그들은 몇십만의 부처님을 섬기고 몇십만의 부처님 밑에서 선근을 심은 그런 보살 마하실이 되리니, 이런 형태의 경전형태의 말씀들이 설해진 때에는 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역시 얻게 될 것이다.> 

위의 산스크리트 번역문을 보면 한 부처님만 모신다고 나와있지, 둘,셋,넷, 다섯,이라고 나열시키진 않았읍니다.

구라마즙이 왜 이렇게 일렬종대로 하나,둘,셋,넷,다섯 부처를 나열시켰는가 좀 생각해보니, 바로 개인 대 개인의 인과 관계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슷자를 나열시킨 것 같읍니다.

이 금강경은 구라마즙의 기가 막힌 시적인 아름다운 언어로 한역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경전이 된 것 같읍니다.

2장,3장에서 <이와같이(如是)>와 그외 여러군데서 참으로 신비하고 미묘한 언어로 한역을 기막히게 해 놓은 것 같읍니다.

 

다시 티벳트 서장본의 번역본을 보겠읍니다.

<그리고 쑤부티여, 이들 깨달음을 향한 위대한 님들은 결코 단 한분의 깨달은 님께만 예배드리거나 단 한 분의 깨달은 님 아래서 착하고 건전한 것의 뿌리를 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쑤부티여, 깨달음을 향한 위대한 님들은 수십만 깨달은 님께 예배드리고, 수십만 깨달은 님 아래서 착하고 건전한 것의 뿌리를 심을 것입니다. 이러한 법문의 구절이 설해 질 때에 그들은 청정한 마음까지도 성취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한사람에게 선근을 심는 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