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이라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2013. 5. 20. 19:39무한진인/참나 찾아가는 길목

 

공(空)]이라는 단어는  대략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번째, 공(空)의 일반적인 의미는 "텅 빔"의 뜻,

즉 빈 공간의 무한한 허공같은 의미로도 쓰며,

의식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비존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때는 공간성과 시간성이 전혀 없는 상태도 공(空)이라고 표현한다. 

두 번째는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을 공(空)이라고 한다.

즉, 모든 만물은 서로 서로간의 인연작용에 의하여 생주이멸(生住離滅)하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로써, 다른 말로 중도(中道)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성학자인 켄 웰버는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아래와 같이 공의 두 가지 의미를 말하고 있다.

 

<질문 : 공(空)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웰버 : 네, 이는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보았듯이 그것은 인식의 자재적인, 동일시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즉 비현현의 몰입이나 지멸(止滅, 니르비칼파 사마디, 멸진정, 고전적 의미의 열반)입니다. 이것은 원인적 상태, 자재적 상태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공'(空)이란 단지 다른 상태들 가운데 어느 한 특정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상태들의 실재나 여여(如如)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상태와 동떨어진 어떤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높거나 낮거나, 신성하거나 신성모독이거나, 평범하거나 특별한 모든 상태들의 실재 혹은 조건입니다.

전에 우리는 '영'을 최고의 수준(원인적 수준)과 모든 수준의 상존하는 '근본바탕(비이원)이라고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탁니한 스님의 "중도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의 공(空), 즉 중도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해설하고 있다.

 

<보살의 본질은 '자유'이다. 그가 생명있는 세속의 삶을 살더라도, 그는 집착 혹은 구속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큰 염원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는 법계에 머물지만, 연민과 자비심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아 생과 사가 있는 이 세상에 나온다. 또한 그는 법계에서 자유롭게 머무는 동안에도 고통의 세계에서 윤회하는 중생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연기는 때때로 공(空, mahasunyata)이라고 한다.

'공(空)이라는 말은 모든 관념, 생각 그리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우리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현상은 존재한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태어난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죽는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현상은 같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현상은 다른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즉 모든 현상의 본성은 "공"이고, "공"이기 때문에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다음은 나가르주나가 공과 연기에 관해 읊은 시이다.

 

모든 현상은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난다.

나는 이것을 '空'이라고 말한다.

말로는 미치지 못해서

이것을 가명(假名)으로 '空"이라고 말한 것이고,

말로는 미치지 못해서,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십이연기를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 이것이 '공(空)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십이연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붓다를 볼 것이다. 그리고 붓다르 본 사람들은 누구든지 십이연기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