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6. 21:05ㆍ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한문원문]-백서본
聖人恒无心 以百姓之心爲心
성인항무심 이백성지심위심
善者善之 不善者亦善之 得善也
선자선지 불선자역선지 득선야
信者信之 不信者亦信之 得信也
신자신지 불신자역신지 득신야
聖人之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心
성인지재천하 흡흡언 위천하혼심
百姓皆屬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개속이목언 성인개해지
[한글 해석]
성인은 늘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 것이오.
(덕이 있는)
선한 사람에게는 선하게 (德으로)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역시 선하게 (德으로) 똑같이 대하므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이 선하게 (德人이) 되도록 하는 것이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대해주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역시 믿음으로 똑 같이 대해주니,
다른 모든 사람들이 (道人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오.
성인이 속세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일일이 마주치는 것마다 일체가 되어 세상과 함께 하나로 어울리니
백성들 모두가 성인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면서 따르게 되므로,
성인은 백성들을 모두 갖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베푸는 것이오.
[해 설]
이번 49장은 곽점본에는 없고, 백서본 이하시대부터 나타난 문장입니다.
아마도 황노학이 번성하던 시기인 백서본 형성기에 작성된 문장인 것 같으며,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나 지배자 집안의 귀족 자녀를 위한 교육용 교재로써 황노학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인 것 같읍니다.
백서본과 왕필본 기타 현행본과는 몇가지 글자가 다른 것이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읍니다.
제후로써의 성인이 백성과 혼연일체가 되어 무위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의 마음이 성인을 따라서 저절로 순수해진다는 충고입니다.
이 장은 특별하게 논란이 될만한 문장이나 문제 삼을 만한 내용이 없이 비교적 쉽고 평이한 내용입니다.
聖人恒无心 以百姓之心爲心
: 성인은 늘 무심하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恒無心; 늘 무심하다. 늘 무심하다는 것은 항상 도의 바탕에 머물러 있어서 사사로운 개인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심하다"는 말은 완전히 인식작용이 없이 캄캄한 바보같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 이기적인 "자아감"이 없다는 것이며, 전체와 일체가 된 보편적인 의식상태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사롭게 이기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보편성에 조화가 된무위행을 하게 됩니다.
무위적으로 된다는 것은 주위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조화로써 자연적인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즉 "나"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과 일체가 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따로 없기 때문에 백성들의 보편적인 마음과 자기마음이 하나로 동화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문장<聖人恒無心>은 백서본 문장이며, 왕필본이나 기타 현행본들은
<聖人無常心>으로 좀 다르게 바꾸어져 있읍니다.
<恒无心>은 <항상 무심상태>라는 뜻이지만, <無常心>은 <고정된 마음이 없다>는 말이며, 일정한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문장의 뜻이 아주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도덕경에서 <常>은 道의 절대바탕을 의미하는데, 그 절대상태의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가 있는 것이죠.
물론 왕필본의 <無常心>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정하게 고정된 마음이 없다>는 의미또는 <항상 머무름이 없는 자유자재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도덕경의 다른장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常>자의 절대바탕의 뜻과 어긋난 의미로 사용했으므로, 자칫 읽는 사람들이 <常>자의 뜻을 잘못 오해해서 헷갈릴수가 있으며, <常>자 때문에 잘못구성된 문장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백서본의 <무심해서 사사로운 마음이 없는 것>은 도인의 일원적인 최고의식상태의 입장을 직접 표현한 것이지만,
왕필본과 기타 현행본에서 <일정한 마음이 없다 또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라는 것은 보통인의 이원적인 마음상태의 관점에서 도인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문장이며, 자칫 잘못 이해 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읍니다.
善者善之 不善者亦善之 得善也
; 선한 사람에게는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역시 선하게 대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선을 얻도록 한다.
여기서 <善>이라는 글자 뜻은 惡에 반대되는 일반적으로 <착하다>라는 뜻의 善이 아닙니다.
도덕경에서 <善>이라는 글자 뜻은 도인의 일원적인 자연무위상태를 말합니다.
즉 德이 있는 도인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善은 도인의 일원적인 보편적 마음성품, 도량이 넓은 도인의 마음이며
德은 도인의 보편적 행위 성품, 즉 자비적인 행위를 뜻한다고 볼 수가 있읍니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德이 있는 사람에게는 덕으로 대하고, 德이 없는 범부에게도 또한 德으로 대해주어서, 다른 사람들이 德人이 되도록 한다>라는 말과 같읍니다.
여기서 <善하게 대한다>라는 말은 <일원적인 상태>즉 <일체>로써 보편적이 자세인 德으로 상대한다는 말이며, 일상적으로 말하는 <착하게>대해 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도인에게는 도인으로써 대해주고, 도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역시 도인처럼 평등하게 대해 주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도를 알게끔 대해 준다는 말입니다.
信者信之 不信者亦信之 得信也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하고,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믿음으로 대하니,
다른 사람들이 (도인을) 믿을 수 있도록 한다.
지도자인 도인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해주고,
또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공평하게 믿음으로 대해주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道를 믿는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대해주고,
또한 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똑 같이 믿음으로 대해주니
다른 사람들이 모두가 도인을 믿을 수 있도록 한다.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읍니다.
도인은 전체와 하나 상태에 있으므로 보편적인 의식으로 만물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聖人之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心
성인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일일이 마주치는 것마다 세상과 일체마음이 되니.
성인이 이 속세세상에서 보통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 갈때는,
성인이 일상사에서 마주치는 일마다 그것과 함께 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인은 자기가 처한 환경에 그때 그때 저절로 조화를 맞추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성인은 "나"라는 개체의식이 없이 전체와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한 대상이나 상태에 집착해 있지 않고,그때 그때 변화하는 상황에 마주치는대로 적응하여 적절하게 조화시켜서 일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백서을본에는 <합합언>으로 되어 있는데, 컴퓨터에는 희귀한 한문자라 타자가 되지 않읍니다.
왕필본에는 <歙歙>으로 되어 있읍니다.
백서본의<합>자의 글자 뜻은 <들이 마시다, 합하다, 한데 어울리다,받아들이다>라는 뜻이 있고, 왕필본의 <歙>도 <들이쉬다,거두다,줄어들다,맞다>등의 뜻이 있으므로,
이 문장에서 <歙歙焉>이란 <일일히 한데 어울리다> 또는 <마주치는 것마다 일체가 된다>라는 뜻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歙歙焉 爲天下渾心>이란 <일일히 마주치는 것마다 일체가 되어 속세세상과 함께 섞여 어울린다>라고 해석할 수가 있겠읍니다.
도인이라는 어떤 특출한 존재로써의 자만감을 가지고,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독야청청한 척하며 산속에서 꿈쩍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다른 여러사람 앞에서 자기만이 특별한 것을 깨쳐서 알고 있다는 태도로 도도하게 눈섭을 치켜 세우고, 턱을 앞으로 내밀고는 정신적 지도자인척 여러사람들을 뫃아놓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시끄러운 시장 바닥 같은데서 일반 보통시민과 똑 같은 모습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어울려 순박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百姓皆屬耳目焉 聖人皆孩之
; 백성 모두가 성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뒤 따라가니
성인은 백성들을 모두 갖난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만드네.
이렇게 자연스러운 무위행으로 일반 백성들과 똑같이 어울려 사는 순박한 성인에게 백성들이 모두가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성인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믿고 모두가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聖人皆孩之>는 <성인은 백성들을 모두 간난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만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문장에서 <皆>는 <다함께,모두,두루미치다>라는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여기서는 <두루 미치다, 두루 ~되도록 만든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또 <皆孩之>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백성들을 갖난아이로 되게한다"이지만,
갖난아이<孩>는 갖난아이가 지니고 있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의식상태를 말하며, 바로 도인의 마음의 자세,즉 善한 마음을 지니고 德이 있는 도인의 무위적인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인은 일원적인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과 자연스럽게 일체가 되므로 백성들이 모두 보고 듣는 것에서 성인의 말과 행동을 뒤따르게 되므로 저절로 백성들도 성인을 따라서 순수한 마음이 되어, 자연적으로 세상이 무위의 덕이 펼쳐진다는 말입니다.
성인의 자연스러운 무위행으로 인해서, 백성 모두와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울리므로써 전체가 저절로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세상을 다스린다라고 충고하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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