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47장,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天道를 알수 있소.

2009. 11. 20. 18:18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한문원문]

 

不出於戶 以知天下

불출어호 이지천하

 

不闚於牖 以知天道

불규어유 이지천도

 

其出也彌遠 其知彌少

기출야미원 기지미소

 

是以聖人 弗行而知

시이성인 불행이지

 

不見而名 弗爲而成

불견이명 불위이성

 

 

[한글 해석]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수가 있고,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운행을 알수가 있소.

 

(마음이 밖으로) 멀리 나아가면 나아 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더 적어지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성인은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되며,

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식을 듣게 되고, 

이루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는 것이외다. 

 

 

[ 해 설 ]

이번 47장은 곽점본에는 없는 내용이며, 백서본과 왕필본에만 있읍니다.

대부분의 판본들이 원문내용에 큰 차이점이 없읍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내용은,  밖의 세상에 관심을 안두더라도, 모든 세상이치를 훤하게 알수 있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내면으로 말하고 있는 의미는, 의식의 관심을 밖의 대상에 주지 말고, 내면으로 향해서 주의를 돌리라는 충고입니다.

그렇게 내면으로 의식을 되돌려서 자각을 성취한 깨달은 도인은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찾을 려고 하지 않고, 이룰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고, 저절로 소식을 보게 되며, 저절로 성취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不出於戶 以知天下;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수 있소.

於; ~으로,에서.戶; 집,구멍.  

不出於戶;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以知天下; 세상을 알수 있다.

이 두문장을 한문장으로 붙여서 해석하면,

<천하를 알기 위하여,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해석되지만,

두 문장을 따로 따로 해석을 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읍니다.

대부분의 해석서들은 후자의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라고 해석으로 했읍니다만, 둘 다 의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읍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수 있다.>라는 말에서,

-천하를 안다-라는 말은 <도를 안다>라는 말입니다.

즉 이 세상의 어떤 일시적 사건이나 개별적 사물, 운행상태같은 일개의 대상적인 사건이나 사물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전체세상이 일어나는 근본 원리를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전체 현상세계의 원리를 깨친다는 것은 바로 이 현상세계가 어디로부터 무엇에 의하여 나타난 것인가 그 원리를 아는 것인데,

그 원리라는 것이 바로 의식의 생성과정을 아는 것이며,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의식의 뿌리로 들어가 안정되는 것을 말하며, 

의식을 넘어서 의식이 나온 절대바탕인 내면 속에 안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의식의 주의가 현상화된 외면세상의 대상들에게 향하지 않고, 의식이 내면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즉 의식의 주의가 마음넘어 내면 속에 있으면, 전체 세상의 원리를 깨칠 수 있다는 말과 같읍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에 대하여, 도인이 천리안같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밖의 속세 세상 돌아가는 내용을 훤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잘못 오해 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그런 도인의 초능력이나 다른 의식의 초상현상등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不闚於牖 以知天道;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운행을 알수 있다.

闚;엿보다,훔쳐보다. 牖;들창,창문.

不闚於牖; 창밖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以知天道; 하늘의 도리를 알수 있다.

天道라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고 풀수 있지만,

여기서는 창문으로 내다본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표면적으로는 하늘의 천체 운행, 즉 별들이 운행되는 천문을 말하는 것 같읍니다.

따라서"하늘에 있는 별들의 운행상황을 알기 위하여 굳이 일부로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내다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운행을 아는 것>은 <전체 현상세계의 운행원리를 아는 것>으로써 이 역시 내면 속으로 들어가 <우주 본질에 대한 전체적 깨달음>을 말합니다.

즉 <도를 깨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문으로 내다보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의식의 관심이 외부의 어떤 대상(하늘이나 천체)을 향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굳이 이 나타난 외부 현상세계의 하늘을 관찰하지 않고, 의식의 내면에 안주해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현상계의 운행원리를 안다는 것은 그 절대본체의 근원을 깨친다는 것이며,

이 원리를 깨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나타난 객관적인 현상세계에 관심을 주지 않고, 오직 내면의 근원 바탕에 머물러 있는다,라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읍니다. 

 

이 구절도 어떤 사람은 道人이 방안에 가만히 들어 앉아 있었도, 물리적인 우주 천기를 알수있는 초능력과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생각하면 전혀 잘못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의미하는 것은 그런 도인의 현상화된 초능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오직 마음의 주의가 의식넘어 깊은 내면에 안정되어 있는다,는 내용입니다.

 

其出也彌遠 其知彌少;

(마음이) 다른 곳(밖으로)으로 더 멀리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더 적어지네.

彌;두루,널리,멀리, 遠;멀다,깊다,也; 他(다른 것)의 옛글자, 다른 곳으로, 밖으로.

其出也彌遠; (마음이) 다른 곳(밖으로)으로 더욱 멀리 나갈수록

其知彌小; (전체를)아는 것은 더욱 더 적어지네.

의식의 주의가 외부의 현상세계의 대상들에게 관심을 주면 줄 수록

전체 우주를 깨치는 앎(지혜)이 점점 더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체 물리 정신적 현상세계는 의식으로 부터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므로,

天下와 天道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의식의 뿌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며,  

의식이 나온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전체의식의 넘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내면 바탕에서 안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현상계 밖으로 대상을 아무리 쫏아다녀 보아야 자기 본성의 자각만 잃어버리기 때문에, 전체를 아는 깨달음과는 더욱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나타난 현상이나 대상물들에 관심을 주지 말고, 의식 내면으로 주의촛점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참나는 내면에 있는데, 의식의 변형의 결과물로써 일시적으로 나타난 외부의 대상(육체,마음,세상)들에 모든 관심을 주어 버리면, 자신의 참나인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기의 참본성, 참나를 되찾을려면 자기 마음과 관심을 내면으로 되돌려서, 스스로 비춰보아 자신의 참본성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외부 감각대상세계로 향하면 향할 수록, 자기의 참본성에 대한 내면의 자각(앎)은 점점 더 적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是以聖人 弗行而知;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행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되고,

弗;아니다.말다.

是以聖人; 그러므로 성인은

弗行而知; 행하지 않아도 알며,

완전히 깨달은 도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저절로 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에고가 사라져서,

이 세상 나타난 모든 것이 나오는 근본 바탕에 성인은 안주해 있으므로,

그것으로부터 변형되어 나와서 움직이는 그림자인 이 우주삼라만상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弗行而知> 은 <억지로 알려고 行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진다>

다른 말로는 <자연적인 앎> 또는 <자연적인 주시>, <있는 그대로의 지혜 빛>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읍니다.

이것을 어떤 곳에서는 진지(眞知) 또는 불교에서는 반야(般若)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보통사람들의 지성적 작용인 상대적인 앎과 구별해서 깨달은 사람들이 얻은 순수한 앎 또는 순수지혜라고 말하며, 깨달음 그자체의 일원적인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도인만 이러한 眞知 또는 자연적인 앎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無知라는 컴컴한 장막에 가려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아예  관심들 조차 없읍니다. 

 

不見而名 弗爲而成; (억지로)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소식을 들으며,

억지로 이루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이루어지네.

不見而名; (억지로)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식을 들으며

弗爲而成;  억지로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깨달은 도인은 무엇인가 대상을 찾아다니지 않드라도,

절대본체의 직관적인 능력으로 알아야 될 것은 저절로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은 도인의 전체적이며 직관적인 능력은 저절로 갖추어 지는 것이며,

어떤 의도적인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직관적인 능력은 아주 자연스럽고 아무 행위도 없이  저절로 나타나는 도인의 기본적인 능력입니다.

도인은 자기의 깨달음의 증거를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시에 그 소식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不見而名>에서 <名>은 "이름"이라는 뜻이 아니고, "소식을 안다"라는 뜻이며,

자기의 깨달은 증거를 보려거나 확인하지 않아도 깨달은 소식이 저절로 밝혀지게 된다, 는 것입니다.

또한 도인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의도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도인은 "나"라는 에고가 없으므로,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도 없는 것이죠.

또한 무엇인가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하드라도 자기가 직접 행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읍니다.

"나"라는 에고의식이 없기 때문에, 어떤 행위나 결과에 대한 주체적인 행위자라고 주장하는 주체의식도 없읍니다. 나가 없는 <無我>의 상태입니다.

<하는 바 없이 이룬다>는 것은 무위의 공덕, 무위자연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어떤 의도적인 행위도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老子의 <無爲自然의 道>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