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44장, 만족함을 알고 그침을 알면 영원한 큰나가 될 수 있소.

2009. 9. 26. 20:54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

 

名與身 孰親   身與貨 孰多   得與亡 孰病

명여신  숙친      신여화 숙다   득여망 숙병

 

甚愛必大費   多藏必 厚亡

심애필 대비    다장필 후망

 

故知足 不辱   知止不殆

고지족 불욕     지지불태

 

可以長久

가이장구

 

[해석]

 

명예와 목숨 중에서

어느것이 (자기와) 가까운 것 같소?

 

목숨과 재화 중에서 

어느 것이 (자기와 함께) 오래 남아 있겠소?

   

(명예,재화를)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잘못된 병이겠소?

 

(무엇이든) 지나치게 아끼게 되면,

반드시 크게 써버리는 일이 있게 되고,

 

(재화를)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지금현재에서) 만족 할 줄 안다면,

곤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욕망이나 행위를) 그칠 줄 안다면

위태로운 불행에 빠지지 않을 것이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영원하고 크게 될수 있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44장은 그리 어려운 어휘나 문장이 없고, 모든 해석서들도 비슷합니다.

전체 내용은 명예나 재산을 지나치고 아끼고 집착하거나 쌓아두면, 자신을 잃어버리므로 오랫동안 편안하게 살려면, 너무 명예나 재산과 돈같은 외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한문 원문은 백서본,왕필본 곽점본이 거의 비슷합니다.  

 

名與身 孰親 ;명예와 목숨 중에서 어느것이 (자기와) 가까운가?

名; 이름,명예. 與; ~와,~더불어. 孰; 누구,어떤 것.親; 가깝다,친하다,익숙하다.

여기서 <身>은 단순히 "몸"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생명 또는 목숨"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명예와 자기 목숨 중에서 어떤 것이 자기에게 더 가까우냐고 묻는 것인데,

명예는 자기 생명이 있는 한에만 유효한 것이고, 목숨이 끊어진다면 명예가 있던 없던 자기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읍니다.

목숨이 끊어지면, 자기에게 딸린 자기 세상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죠.

그런데 세상사람들의 상식은 좀 다릅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기가 죽은 후에도 남아 있는 이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미련을 못버리고 죽거나, 일부러 자기 명예를 위해서 살고 죽는 사람도 있읍니다.

또 어떤 잘못된 시대나 사회에서는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을 최대의 덕목과 정의로 규정하고 그런 사람을 찬양하는 경우도 흔하게 있읍니다.

이렇게 살아서도 자기가 죽은 이후에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꾸는 일종의 꿈이고,쓸데없는 욕망이며,실제로는 자기가 죽고 나면 그 명예라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람이 죽고나서 그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여 남은 일부 사람들이 자기자신들의 집단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다가 결국은 나중에 용도폐기해 버리는 것이죠.

자기가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 생전에 관련되었던 남은 타인들이 아직 해소하지 못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기가 죽은 이후에도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일종의 생에 대한 집착이 죽은 후에도 남기고 싶은 자기 존재에 대한 집착이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나 민족지사 같은 사람들의 경우,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버린 것은 개인적인 명예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이라기 보다는, 국가나 민족을 자기와 동일시하여 자기 목숨을 민족을 위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을 한 것이며, 개인적인 명예나 후세에 자기이름을 남길 목적으로 자기 목숨을 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순수한 헌신적인 마음이나 개인적인 명예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경우는 각각 그 목적성이 어디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보편적 헌신이냐, 아니면 에고적이고 이기적인 희생이냐로 달라질 수도 있겠읍니다. 

 

身與貨 孰多;

목숨과 재화 중에서 어느 것이 (자기와 함께) 오래 남아 있겠는가?  

貨;재화,물건,돈,재산, 多; (여기서는) 오래남아 있다. 오래가다. 

자기 목숨보다 재물과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읍니다만,

실질적으로 자기가 쌓아놓은 재산에 집착심이 큰 사람들은 자기 목숨이 방금 숨이 끊어져 가는 순간에도 자기 재산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어 보면,

옛날 어떤 농촌 지역에서 재산이 많은 한 노인이 이제 임종이 가까이 다 되어 홀로 방안에 누워있었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그동안에 수많은 재산을 구두쇠 노릇을 하며,또는 약한 사람에게 탈취하다 싶히하며 많은 재산을 뫃아  놓았지만, 죽을 때가 되니 온갖 옛추억이 되살아나면서 모든 것이 다 꿈만 같구나,하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열어논 방문 밖을 홀로 누워서 내다 보고 있었읍니다.

방문 밖의 마당 저편에는 소외양간이 있었는데, 소가 무엇인가를 질근질근 열심히 씹고 있었읍니다.

자세히 보니 소가 멀쩡한 새 빗자루를 씹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노인은 순간 " 저런~ 저눔의 소가 엇 그제 새로 산 빗자루를 부셔 먹다니 ! 야~ 아까운 것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누운채로 소에다 대고 나오지도 않는 소리를 질러댔읍니다.

"저 새 빗자루~, 새빗자루가~" 중얼거리면서, "빗자루"라고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인은 그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구두쇠 영감은 일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하찮은 물건인 "빗자루~ 빗자루~"란 아쉬움으로 자기인생을 마감한 것이죠.

이 에피소드를 다시 한번 새겨보면, 사람의 일생 중에 평소 생각하고 있는 습관이 결국 죽는 순간의 끝매듭까지 이루게 되며,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다음 생으로 갈 유랑길 이정표 방향이 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의 마음의 상태는 그 사람의 평소 살았을 때의 평균적인 마음자세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평소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죽는 순간에도 그 습성이 동일하게 진행되고, 그 상태에서 만일 다시 어디선가 환생을 한다고 하더라도,결국은 항상 그 습관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서 거기로 항상 맴맴 도는 생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맴맴도는 원리를 자각하고 성찰하고 그것을 멀찍히 지켜보는 입장이 될 수만 있다면, 그 다람쥐 체바퀴 돌리는 듯한 파동성 윤회 수뢰비퀴의 생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 바로 고금동서의 여러 성인들이 일러주는 가르침입니다. 

 

得與亡 孰病 ;

(명예,재화를)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잘못된 병인가?

얻는다는 것은 명예나 재산을 얻는다는 것이고, 잃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잃는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명예와 재화를 자기 생명과 바꿀 수가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 명예와 재화는 자기 생명보다 가치가 없다"라는 의미를 의문강조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甚愛必大費 ; (무엇이든)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써버리게 된다.

 甚; 지나치다. 費;쓰다,소모하다.

자존감 또는 자기 명예를 너무 사랑하고 집착하게 되면, 약간의 상처나 불명예에 대해서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자기 목숨조차 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읍니다.

요근래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지도자로써 청렴결백하다고 스스로 자기자신을 믿고, 자기신념을 사회의 모범으로써 내보여주며 국가 경영의 책임자로써 임무를 무사히 마친 후인데, 재직시의 주변 가족들의 약간의 금전적 비리가 드러나므로써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신뢰감의 실추에 대하여 스스로 자괴심이 들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버린 사례를 볼 수 있었읍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애감과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여기는 독특한 자만감,그리고(양상이 좀 다르지만) 자기자신이 옳바른 사회정의감을 갖고 있으며, 청렴결백함이 자기의 중요한 포인트 이미지라는 공고한 자신감이 허물어지면서,자기 삶의 가치관을 잃어버렸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그것이 마음의 갈등을 만들고 고통으로 이어져서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입니다. 

 

多藏必 厚亡; (재산을)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어버리게 된다.

 藏;감추다,숨다,쌓아두다. 厚;두껍다,많다.

재산을 많이 쌓아두면, 잃을 때도 당연히 크게 잃게 되는 것이죠.

크게 성취하면 망할 때도 크게 망하는 것이죠.

항상 적당하게 일정선을 기준으로 약간의 프러스와 마이너스를 넘나드는 변화로 조화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정 자기 기준선에서 너무 높은 푸러스로 튀어 오른다면, 결국은 그 높은 만큼의 마이너스로 내려와야 조화가 이루어지므로 결국 불안한 상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상승하는 푸러스나 하강하는 마이너스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항상 기준선에서 정신 바짝 차려서 안정되려고 노력해야 겨우 푸러스와 마이너스의 폭차이를 줄일 수가 있을 겁니다.

항상 중도의 조화에 안주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故知足 不辱; 그러므로 만족 할 줄 알면, 곤욕을 당하지 않고

辱; 욕,치욕 

욕망이 생긴다는 것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여건에 관계없이 지금 현재에 만족을 하고 있다면

욕망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인가 해야되겠다는 행위도 나오지 않읍니다.

따라서 더 이상 불행한 일을 당하지도 않고, 남에게 모욕을 당할 일도 없으며,

이익을 바라지 않으므로 손해를 볼 일도 없는 것입니다.

 

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殆;위태하다 

무엇인가 얻을려고 행위를 하는 것을 그만두면,

더 이상 행위로 인한 위험이 야기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욕망이 행위를 만들고, 행위는 카르마(운명)을 만드는 것이죠.

우리들의 평소 하찮고 무의식적인 조그만 행위 하나가 앞으로의 자기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 작은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행위자체가 바로 운명의 수뢰바퀴 안에서 움직여서 또 다른 카르마 또는 윤회의 회전 운동을 야기합니다.

윤회의 회전 운동이 바로 평소의 의식의 파동운동이며, 행위자체가 다른 행위를 연이어지게 하여 수많은 카르마가 계속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윤회 또는 카르마 또는 파동의식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파동의 중심, 윤회의 수뢰바퀴의 중심부, 의식의 중심에 집중해서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의식의 중심부, 윤회의 수뢰바퀴 중심부는 회전운동이 없고, 움직임없는 절대 본바탕과 연결이 되어 無限한 空 그자체입니다.

그 무한한 空은 모양도 없고 어떤 속성도 없는 자각 그 자체이며,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주시자 자체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정신수행과 종교들은 침묵 속에서 의식의 중심(神)에 집중해서 안정되어 있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可以長久;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를)영원하고 크게 되도록 하는 것이외다.

可; 옳다,가능하다. 以; ~가 되다,~이렇게 함으로써 長久 ; 영원하고 큰(나)

욕망을 자제하여 항상 지금 여기서 만족 할 줄 알고,

행위를 그쳐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 줄을 안다면,

저절로 의식의 중심부인 神자체이며,

움직임없는 절대본바탕에서 안정되게  머무르게 되므로,

끊임없이 회전하며 움직이는 윤회의 이 현상세계 수뢰바퀴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중심 축 안의 절대 空인 본바탕에 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원하고 무한한 자신(참나)으로써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무한하고 영원한 참본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