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43장, 드러나지 않는 無爲가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오.

2009. 9. 22. 19:13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원문]- 백서본

 

天下之至柔 馳聘於天下之至堅

천하지지유   치빙어천하지지견

 

無有 入於無間

무유   입어무간

 

吾是以知 無爲之有益也

오시이지    무위지유익야

 

不言之敎 無爲之益

불언지교    무위지익

 

天下希能及之矣

천하희능급지의

 

 

[해석]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단단한 것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데,

 

형체가 없으므로 틈새 없는 곳도 스며들어 갈수가 있는 것이오.

 

이것으로써,

나는 무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소.

 

말 없는 가르침으로 ,

억지로 행하는 바 없이 무위로써 (이 세상에) 이로움을 준다는 것,

 

이것을 능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주 드문 것이오.

 

 

[해설]

이번 43장은 도인의 무위행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세상을 이롭게한다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한 내용입니다.

한문원본은 백서본을 선택했는데, 왕필본에서 글자 몇개가 생략되어서

뜻이 다르게 해석될 소지가 있어서, 백서본 원문으로 해석했읍니다.

그다지 어려운 문장도 없고, 의미적으로도 특이한 것이 없는 평범한 문장입니다.

 

天下之至柔 馳聘於天下之至堅

至;이르다,지극하다,가장, 柔; 부드럽더,연하다. 馳;달리다,쫏다,베풀다,전하다.

騁;달리다,펴다,신장하다. 於;어조사(~에), 堅; 굳다,단단하다.

天下之至柔:이 세상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

馳騁於天下之至堅: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 속으로 침투한다.

여기서 <天下>는 "나타난 물질적 현상세계"를 말합니다. 이 보이는 세상입니다.

<天下之至柔> 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란 바로  마음으로는 전혀 알수 없는 마음 넘어의 가장 미세한 의식, 즉 순수한 영혼을 말합니다.

<馳騁於天下之堅>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단단한 것 속으로 침투한다.>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단단한 것이란 감각기관과 마음으로 알수 있는 물질적인 이 현상세계를 말합니다.

<馳騁>은 <빠르게 침투해서 펼쳐진다>라는 뜻입니다.

<치빙>의 원래 뜻은 옛날에 전투 중에 적진 속에 기마병을 신속하게 침투시켜서 적진지역을 단시간에 제압한다는 의미이며,신속하게 퍼져서 상대방지역 전체를 장악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형체가 없는 氣(정신에너지)같은 부드러운 것이 일정한 고형의 단단한 물질적 형체속에 침투하여 전체적으로 스며든다는 말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 속으로 침투한다>

이것은 물질적으로도 여러가지 현상으로 설명될 수가 있읍니다.

물은 일정한 형체가 없이 부드럽지만, 모든 땅을 적시고 흘러 다닙니다.

공기는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유동에너지(바람)와 온도,습도 에너지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의 생존을 좌우합니다.

또한 열과 빛,초음파등은 단단한 금속을 녹이고, 가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인 현상보다도 더욱 미세한 정신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질과 생명력자체를 좌우합니다.

이 물질적이며 현상화된 우주삼라만상이 바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알수없는 미세한 의식의 파동성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모든 물질적인 현상은 보이지 않는 의식성으로 바꾸어져서 인식이 됩니다.

여기서는 가장 미세한 자각의 빛이 모든 만물에 스며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읍니다.

 

그 미세한 의식이 바로 만물의 생명력인 생기 그 자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은 바로 만물의 원질인 생기(生氣)이며,

生氣(生命氣運)란 파동성을 가진 의식의 변화 에너지, 즉 의식의 파동운동 에너지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모두가 생기 에너지의 움직임이며, 이 생기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이 바로 앎의 성질을 가진 의식자체입니다.

生氣는 의식의 움직임 측면이고,

동시에 그 움직임자체를 주시하는 것은 의식의 뿌리부분인 앎자체(주시자) 입니다.

의식의 움직임이 이 현상화 되어 나타난 세상이며,

그 현상화 된 것을  주시하는 것이 바로 의식의 뿌리인 존재의식의 중심점에 있는 앎이며, 그 존재의식은 바로 영원히 침묵하고 있는 절대바탕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의식의 움직임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無爲>라고 표현하고 있읍니다.

위 본문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영혼이 거친 감각적 현상세계를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왕필본에서는 <馳騁天下之至堅>으로 중간에 어조사<於>자가 빠져있읍니다.

그래서 대부분 왕필본 번역서들은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라고 번역들을 했는데, <馳騁>이라는 뜻은 <말이 쏜살같이 달리듯이 급하게 전달하거나 퍼지게 한다>는 뜻이므로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부린다>라고 번역을 하면 다음 문장인 <無有入於無間>과 조화가 맞지를 않읍니다.

 

無有 入於無間

無有入於無間 :  형체가 없는 것은 틈새가 없는 곳으로도 스며들어간다.

형체가 없이 미세한 것은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틈새가 없어도, 

그 미세한 에너지 작용에 의하여 다른 단단한 곳에도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형체가 없다는 것은 그 행동하는 진행상태도 나타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효과면에서는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형태가 없는 공중의 전파는 보이지 않고 알 수가 없지만, 전체 공간에 퍼져서 통신과 방송등을  전파해 주고 있읍니다.

그 작용은 어떤 틈새를 통해서 전송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기진동을 일으킨 전자파의 파동작용 자체가 전체 우주공간에 마치 연못의 물결이 퍼지 듯이, 그렇게 스스로 퍼지는 것이죠.

사람의 의식도 지극히 미세한 의식수준이 되면 마치 안테나에서 전파가 퍼져 나가듯이 순수한 의식파동이 주변전체에 퍼져 나갑니다.

순수의식의 빛 또는 순수생기 에너지는 어떤 형체나 조건에 관계없이 만물에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는 것이며, 삼라만상자체가 그 의식의 움직임이며, 안보이는 의식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현상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吾是以知 無爲之有益也 :

나는 이것으로써 무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안다

吾是以知: 나는 이것으로써 안다

無爲之有益也 : 무위가 다른 이들에게 이롭게 한다.

"無爲"란 "있는 그대로"자연스러움을 말하며,

"나"라는 에고성이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무위상태는 억지로 드러낼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也>는 어조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뜻하는 <他>자의 옛글자입니다.

 

도를 완전히 깨달아서 무위상태에 정착되어 궁극의 도를 완성한 도인은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이로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인은 평소의 언행과 외모도 너무나 평범하여 아무도 겉모습으로는 도인이라고 알아볼 수가 없고, 평균수준 범인이하의 초라한 행색으로 보일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가장 평범 속에 뭍혀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도인이 바로 가장 깊은 깨달음을 체득한 도인일 수가 있지만, 그는 남에게 자기가 도인이라고 말하지도 않읍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아주 고요하고 순수해서 그의 주변은 항상 신선하고 순수한 생기가 퍼져 있을 겁니다.

 

이 도인에게서 나오는 순수한 생기는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간에 전체에 펼쳐져 있어서, 여러가지 자연 현상에 조화적인 영향을 주지만,

사람들은 이를 전혀 알지못하고 그의 순수한 생기파동에 공진을 하지도 못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물질적인 파동의 낮고 거치른 진동수이기 때문에 도인의 미세하고 순수한 진동수의 의식에 공진되지를 못하는 것이죠.

마치 중파방송의 라디오 수신기를 가지고 미세한 극초단 전파로 발사하는 테레비죤 방송전파를 수신할 수없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궁극을 성취한 도인은 말이 없이 누구에게 말로 가르침을 펼치지 않아도,

그가 자연적으로 발산하는 순수한 생기의식으로 인해 전체 현상세계의 생물체와 무생물체들 모두에게 절대바탕에서 직접 나오는 순수한 생기를 비추어 말없이 자연적인 조화력으로써 정화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도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순수한 의식에 가까운 사람들, 또는 자유로운 수용력의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 것을 자각할수도 있겠지만, 그외에 내면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도인에게서 발산되는 순수한 정기를 알아채지 못합니다만,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無爲>가 안정되면 말로 표현할 수없는 미세한 지복감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이(傳移)되어 아무도 모르지만 균등하게 이로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수용능력과 순수성의 정도에 따라서 은혜를 입느냐, 아니면 마음이 오염되어 있어서 오히려 무관심하거나 반발력과 저항력을 가지고 비하하는 경우도 다수 있을 수가 있겠읍니다.

그러나 도인 본인은 그런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남이 수용을 하던 비하를 하던 , 관심을 두지 않으며,오직 전체 자연으로써 홀로 있으면서, 무심 속에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죠.

 

不言之敎 無爲之益:

말없는 가르침으로 억지로 하는 바없이 무위로써 이로움을 주는 것은

不言之敎 : 말없는 가르침으로~

無爲之益 : 하는 바 없이 이로움을 주는 것은 

말없는 가르침이라는 것은 억지로 이론적인 개념을 내세우며 말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삶 속에서 자연과 하나로 어울려서 말없는 실천으로 가르쳐 준다는 뜻입니다만, 

또 다른 뜻은,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않고, 인의적인 의도성이 없이 자연적으로 가르쳐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렇게 인의적인 것이 없이 무위적인 것은 전체 자연을 골고루 평등하게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의적인 유위행(有爲行)은 항상 반쪽짜리 불평등이며, 행위자쪽이 이득을 취하면,남아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손해를 끼칠 뿐더러, 한쪽이 잠깐 이익을 보는 것도 실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행위만 했을 뿐이며, 행위로 인한 상처만 남을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전체사회에는 무지의 행위로 인해서 잠시동안이지만 혼돈스러운 파도물결만 일으켰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파도물결 속에 있는 동안은 자기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개인이 일으킨 행위의 파도물결의 인과작용에 휩쓸려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無爲로써 전체 우주와 하나로 어울리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움은 모든 만물에게 가장 순수한 이로움을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天下希能及之矣: 세상에 이것을 능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무네.

希 : 드물다, 能;잘 할 수 있다.及; 미치다.더불어하다. 矣:어조사,말 그치다.

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흐름과 조화공진을 맞추어 자각하게 함으로써 무위적인 가르침을 펼칠수 있는 무위도인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인은 최종 절대바탕에 완전히 안정되어 정착한 도인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도인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저절로 전체와 조화가 이루어지며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나 지역에 이러한 완전히 깨달은 도인이 한명이라도 주재한다면,

그 주변 사람들은 알든 모르던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어떤 신성의 빛을 받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읍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숨은 도인들이 희귀하게 있읍니다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읍니다.

현대세상은 정신적, 도덕적으로 혼돈되고 물질적 쾌락에 타락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숨은 도인들의 보이지 않는 순수한 정신력의 안정된 장(場)에 싸여서 이 세상이 아무도 모르게 정화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그런대로 막장의 낭떠러지 위를 스쳐가면서도 아슬 아슬하게 비틀거리는 것 같지만, 종래는 추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읍니다.

예를 들어 요즘 지구의 자연생태환경오염에 대한 자각운동이 바로 이러한 자연적 조화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금동서의 여러 깨달은 성인들이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귀 담아 듣고 그것을 각 개인이 본받고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자칫 무지 속에 빠져 잊어버릴 수 있는 자기의 참본성을 되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나마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자기현존과 참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깨칠 수 있는 깨어남의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도 무지로부터 구제해 줄 수 있는 사랑의 씨앗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싹트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노자도덕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연스러운 <無爲眞人>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읍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