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 22:25ㆍ무한진인/無爲閑人 心身不二
우리말 천부경
하~, 나,둘,셋, 넷,다섯,여섯, 일곱,여덟,아홉, 열~ .
열~, 아홉,여덟,일곱, 여섯,다섯,넷, 셋,둘,나, 하~
천부경의 가르침으로 명상을 하려는 분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읍니다.
굳이 세상에 명상법이 많은데, 생소하게 천부경 명상법을 또 만들어 순진한 구도자들을 또 미혹하느냐? 라고 꾸짓을 수도 있겠읍니다만,
어차피 천부경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천부경을 이용한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의견을 간단하게 제시해 보는 차원에서 이글을 씁니다.
기존에 자기가 하고 있는 명상법을 집어치우고 이 천부경 명상법을 따라할 필요는 없겠읍니다.
다만 참고적으로 천부경으로 명상하려면, 어떤 수순을 밟아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되는 가를 간단하게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천부경 가르침을 가지고 명상을 하려면, 천부경에 대한 완전한 知的인 이해가 뒤받침이 되어야 겠지요.
만일 천부경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그 앎조차 넘어가 버린다면 그 구도자는 성공한 것입니다.
앞서 발표된 최치원 한문 천부경, 신지녹도문 천부경, 가림토 천부경의 해설한 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여, -하나, 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라는 셈세기 우리말의 의미를 단순히 물건개수를 세거나 순차적으로 숫자가 많아지는 수세기라는 일상적인 말뜻을 전부 잊어 버리고,
오로지 천부경에서 일러주는 진리를 설명하는 의미로만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즉 기존의 셈세기 의미의 말뜻을 천부경의 진리 의미로 완전히 전환시켜 바꿔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둘,셋---열,을 숫자가 아닌 천부경의 뜻으로 그의미를 전환해야 하는데, 한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의미는 단번에 머리 속에 들어오기가 어렵기 때문에,하나,둘--열,이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헤아리며,그 복합적인 의미를 회상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고 오히려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사색 또는 망상의 흐름이 되겠죠.
그래서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을 각각 해당하는 신지문자의 형태를 기억하면서, 그신지문자의미를 머리 속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 "는 숫자의 맨첫번째 "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지문자 "하 "와 나"로 읽는 것입니다.
"둘" 역시, 숫자나 물건의 "二"가 아니라, 신지문자 "둘"로 연상해서 읽읍니다.
이것을 완전히 숙지시켜서, "셋"하면 신지문자의 "꺽어진 나무가지"가 바로 연상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둘,셋,--열,의 신지문자의미가 숙지된 다음에 천부경 "하나,둘,셋,--열"의 염송명상에 들어 갑니다.
왜 신지문자를 연상하고 다른 천부경의 문자는 제외했느냐 하면,
천부경에서 신지문자가 가장 원초적인 뜻그림 글자인데, 단 한글자의 형상에 모든 뜻이 담겨 있읍니다.
그래서 신지문자는 16자 밖에는 안되죠.
우리말 "한,둘,셋--열"도 16자음으로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한문천부경은 이 신지문자 16자가 81자로 엄청 길게 문자가 늘어났읍니다.
그리고 하나,둘,셋,--열,을 설명한 가림토 천부경 역시 38자로 비교적 많은 문자로 구성되어 있읍니다.
또한 하나,둘,셋,--열의 각숫자 의미를 우리말로 해설해 논 문장을 그대로 기억하고 사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므로, 즉각적으로 한글자로 많은 뜻을 표현한 신지전자가 천부경 명상도구로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신지전자 형상으로 "하나,둘,셋,--열"의 뜻을 이해하는 방법을 숙달시킨 다음에,
보통 명상자세로 앉아서 눈을 반개하고는 마음 속으로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열덟,아홉,열,"이라는 말을 신지전자 글자 모양을 연상하며 속으로 욉니다.
보통 불교의 염불이나 만트라를 외듯이 마음 속으로 신지전자의 모양을 연상하며 외면 됩니다.
다만 하나둘셋, 넷다섯여섯, 일곱여덟아홉,열 이렇게 세개씩 끊어서 외우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둘셋-은 절대참나 상태, 넷다섯여섯-은 의식의 발생유지, 일곱,여덟,아홉,-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현상세계이므로, 이것을 구분하면서 조용히 외면, 마치 불교의 염불이나 만트라를 외는 명상이나 비슷합니다.
다만 각말마다 신지전자를 연상하며, 그 기본 뜻을 되새겨야 겠읍니다.
처음 할 때는 좀 복잡하고 머리로 신지문자 연상과 외는 행위를 하게 병행해야 되므로 잘 진행이 안되지만,
일단 하나,둘,셋-- 열의 각말이 의미하는 것에 완전히 숙달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없이 하나,둘,셋--열,만 마음 속으로 조용히 외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하나,둘,셋--열,의 셈세기 순서대로 암송했지만,
이 셈세기 말이 천부경으로 완전히 머리 속에 새겨지면,
이제부터는 천부경 명상법의 또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 봅니다.
앞에서 말한 하나,둘,셋--열,의 암송은 절대바탕인 내면에서 현상세계 밖으로 나오는 순서이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현상세계 밖에서 의식을 거쳐서 절대바탕인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암송입니다.
한,둘,셋--열의 순서대로 해 보았으면, 이제부터는 아홉,여덟,일곱--이렇게 거꾸로 암송합니다.
열(無), 아홉,여덟,일곱(사람,시간,공간,현상계), 여섯,다섯,넷(존재의식,의식시간,의식공간), 셋,둘,나하(생명기운,지복(시간),바탕, 그너머),이렇게 끝에서부터 반대로 암송을 합니다.
열, 아홉,여덟,일곱, 여섯,다섯,넷, 셋,둘,나, 하~
처음에는 암송하기 좀 거북하지만, 이 방식의 암송은 마음을 금방 고요하게 만듭니다.
열(無),부터 시작해서, 나타난 현상계로부터(9,8,7), 의식으로 들어가서(6,5,4), 의식이 나온 근원인 절대바탕(3,2,1,0)로 들어가므로, 보통 구도자가 최종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과정의 길을 그대로 정상적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나하"는 "나는 하(그넘어)이다"라는 의미로써 생각하면 됩니다.
<나하>는 <10> 이므로 말없는 주시자인 <열(10)>과 같은 것이 됩니다.
<하> 넘어는 무엇인지 전혀 알수가 없죠?(나何?)
하 긑에서 약간 의심을 붙히면 내면 속으로 점점 더 깊히 들어 갈수도 있읍니다.
이렇게 원래 순서를 반대로 해서 암송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의식이 나오기 이전, 말이 나오기 이전, 태어나기 이전으로 기어들어가 보는 겁니다.
이 명상을 계속하면 얼마 안있어서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지며,망상이나 고민이 일어나지 않읍니다.
마치 나이먹은 노인이 자기의 장년시대, 청년시대, 소년시대, 갖난시대, 태어나는 순간, 그다음 자궁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 순서와 같이, 9,8,7의 이세상 전체를 6,5,4의 의식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의식이 되고, 의식이 3,2,1의 근원으로 들어가 마지막에 "나하"로서 본바탕의 넘어(0)로 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데려다 줍니다.
너무 긴장해서 힘주지 말고, 평안하게 마음 속으로 조용히 염송합니다.
한바퀴 돌고 나면 이어서 다시 반복하지말고, 그대로 가만히 한참 쉽니다.
쉴때는 깨어서 고요하게 빈마음을 그대로 지켜봅니다.
아주 단순하고 쉽지만, 예상외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명상법이며,
우리민족 역사이래 5000년 이상 아무도 모르게 저절로 지금까지 전수되어온 비의적인 신의 가르침을 그대로 활용한 새로운 명상법입니다.
이것을 별칭으로 <나하 명상법>이라고 이름붙혔읍니다.
<나하>는 <내가 그넘어이다> 또는 <내가 하늘이다>라는 뜻을 단축한 말이며,
<내가 그것(절대바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를 거꾸로 읽은 것이죠.ㅎㅎ
염송을 하는 행위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 목적은 고요하게 마음을 안정시켜서 마음 넘어로 넘어가는 것이죠.
따라서 그 열, 아홉,여덟,일곱---나,하,를 외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지켜보는 주시자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열,아홉,여덟,일곱--의 염송을 하는 자는 마음에 나타난 에고이지만, 그 염송하는 자를 아는 그 배면의 주시자는 알려지지 않읍니다.
그래서 항상 염송을 하면서도 배면의 그 지켜보는 앎에 주의를 주어야 합니다.
그 주시자 자체는 나타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것이 지켜보는 것은 모든 알려진 것입니다.
이렇게 염송하면서 지켜보는 작용이 점점 더 깊어지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게 되고,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수록 의식이 점점 확장되며,
의식이 점점 넓어지다가 어떤 순간에 갑자기 의식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옵니다.
마음을 넘어가면 자기가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명상의 끝에서는 마음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고요해지는 것이 기본관건입니다.
계속 끊이지 않고 오랫동안 고요함을 유지하게 되면,
드디어 아홉--나하,라는 염송을 잊어 버리고,
의식넘어로 잠깐잠깐 넘어갈 때가 오면서,
마치 잠깐잠깐 조는 듯한 의식의 끊어짐이 나타납니다.
그럴때가 오면 아홉----나하라는 염송도 버리고,
그냥 가만히 편안하게 고요한 상태로 깨어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는 상태가 오며, "내가 있다는 "의식의 뿌리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 의식의 뿌리상태에 안정되게 접어들면 그다음부터는 저절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의식의 뿌리상태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의식의 뿌리가 스스로 내면에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게 되어 있읍니다.
그것을 아는 원리는, 뭔가 보이고,알려진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보이지 않고 알수없는 어떤 무엇(아는 자)인 앎이 있다는 기본원리를 명확하게 확신하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마음이나 의식상에 나타난 것은 모두가 허상이며,
항상 배면의 지켜보는 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체험이나 의식상의 어떤 체험,이미지,느낌에는 주의를 주지 말고, 항상 오로지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는 배면의 주시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을 얼마동안 하면 몸 안에서 생기의 정화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생기작용에 영향받지 말고, 항상 배면의 주시자로써 말없이 지켜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부경 우리말, 하나,둘,셋---열,의 만트라 염송명상입니다.
처음에는 그 각말의 천부경 의미를 완전히 되새기고 숙지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심오한 의미들이 마음의 내면으로 심어져 씨앗이 되고,
끊이지 않는 열망의 거름과 헌신의 물을 주어서, 심어진 씨앗이 저절로 싹이 터서 줄기가 자라나고, 잎이나고 꽃을 피우게 되며, 마지막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상은 천부경에 대한 완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 합니다.
이 한,둘,셋,--열 천부경 염송명상은 行住座臥,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행할 수가 있읍니다.
특히 산책하는 도중에 마음 속으로 하나,둘,셋,--열을 외면서 발걸음마다 세면서 산책하면 심심치 않고, 쓸데없는 망상과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됩니다.
위에 언급한 명상방편들은, 이런 방법으로도 명상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는 실예를 한번 들어 본 것일 뿐입니다. 이런 예를 든 방편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홀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위에서 말한 천부경 하나,둘,셋,--열,또는 이와 반대로 염송하는 명상과는 좀 다른 방법이지만, 천부경 내용 안에 있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명상수련법입니다.
이것은 천부경의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의 말 중에서
현상세계의 공간,시간,사람의식을 가리키는 "일곱,여덟,아홉"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수행법입니다.
일곱의 의미는 " 절대참나인 無에서 나온 이 전체 우주삼라만상이 담긴 공간을 지켜보라"는 뜻이며,
이것은 현상세계 우주공간의 주시자가 되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내가 있다"는 앎을 주시하라는 말과 같읍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깨어남과 동시에 세상이 자기존재 위에서 펼쳐지죠.
그 후에는 이 깨어있음의 의식공간 안에서 모든 세상일이 진행됩니다.
따라서 이세상만물과 자기 육체의 움직임,마음의 여러가지 감정과 지각 등은 이 기본적인 깨어있음을 아는 앎의 스크린 공간 위에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위의 일곱은 바로 이 깨어있음을 아는 앎자체를 지켜보라는 말씀입니다. 그깨어있는 앎의 스크린이 바로 현상세계의 우주공간, 전체세상을 말합니다.
여덞의 의미는 " 절대바탕인 無로부터 온갖 만물이 오고가면서 시간이 흘러가지만, 절대바탕은 지금현재에서 지켜본다"는 뜻이며, 이는 "지금 현재를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항상 지금현재에 존재하는 명상법인데, 지금현재라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의 마음 속에서는 붙잡지 못하죠.
그래서 마음 넘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지금현재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과 의식은 시간으로 구성된 시간의 움직임 그자체이지만, 마음 넘어는 시간이 없읍니다.
다른 말로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 또는 "나라는 느낌"이 사라진 상태를
<지금현재>라고 합니다.
단순히 마음이나 생각으로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는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은 여덟의 의미도 일곱과 동일한 뜻인데,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일곱으로 말한 것이고,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여덟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홉의 의미는 "사람 마음의 내면이 절대본바탕으로써 공간(天),시간(地),의식(人)이 다들어 있어서, 전체 우주삼라만상의 움직임 자체가 바로 나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라" 이런 뜻입니다.
전체 우주가 바로 절대바탕인 나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무슨 의도적인 수행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는 그대로" 자연 주시상태를 저저로 자각하라는 말입니다.
위의 일곱,열덟,아홉에서 말하는 의미는 한마디로 "주시자"가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보통 다른 주시명상수행과 다름이 없지만,
단순히 사람의 육체 움직임이나 호흡,마음의 움직임,외부사물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단계 높은 현상세계를 보는 자를 내면에서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현상세계가 나타나는 의식(앎)을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을 지켜보는 주시자가 바로 절대바탕인 無인데,
천부경 내용 속에서는 이것을 드러내서 표현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나 "열"에서 모든 것은 전체가 아무것도 없는 無이며, 어떤 개체도 없다, 고하는 구절로 부터 간접적으로 , 일곱,여덟,아홉에서 말하는 것은 절대바탕입장에서 주시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읍니다.
일곱,여덟,아홉,에서 맨 밑바침의 <ㅂ>받침이 바로 "보인다" 라고 하는 첫자음을
붙힌 것입니다.
이 명상들의 최종목표는 모든 것이 나온 절대바탕이 바로 나자신이며,
내가 최종 주시자라는 것을 확신하고,
나인 그 절대바탕 <하>는 이미 원래부터 거기 그렇게 그대로 있었 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주시자는 모양도 없고,속성도 없으며,크기도 없읍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전혀 알수없지만, 그것이 바로 절대바탕이 참나입니다.
위의 천부경 명상법은 이글을 쓰는이가 특별히 창안해 낸 명상법이 아닙니다.
원래 천부경은 단군조선이전에 알수도 없는 그 태곳시절의 어떤 선지자이신 神人 또는 道人의 가르침이며, 그 내용이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문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단군조선 이전에 신지전자라는 문자를 만들어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라는 소리로 가르쳐서 일반인들에게 보급시켰지만, 세월이 오래 경과함에 따라서, 신지문자의 원래의미를 잊어버리고, 하나,둘,셋,--열이라는 실생활의 셈세기 소리로만 남아서, 물건을 세고, 수량을 헤아리는 일상 언어로만 사용하게 되므로써, 단군3대왕때에 을보륵이라는 신하를 시켜서 가림토문자를 만들어서 다시 천부경 내용을 복원하여, 백성들에게 보급하고 교육을 시키게 된 것이라고 환단고기라는 역사책과 소도경존본훈이라는 옛서적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따라서 세월을 알수 없는 수천년전부터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이라는 천부경 소리는 원래 있었던 것이고, 그옛날 단군조선시대에는 많은 백성과 관리, 왕들이 이것을 외었다고 볼 수 있읍니다.
따라서 이 우리말 천부경의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에 대한 염송명상은 옛 단군시대 명상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 볼 수있읍니다.
반면에 아홉,여덟,일곱--나하, 에 대한 염송은 좀 더 과학적으로 응용한 개선된 명상법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이 천부경 명상법을 소개하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측면으로 천부경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몇편의 글로 발표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어떤 끝맺음의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아서,
만일 천부경의 명상을 실행하게 된다면 이러이러한 형식으로 명상을 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새로운 명상법을 무작정 함부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기수행방편으로 삼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다만 참고적으로 그런 유형의 명상법도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자칫 자기가 원래 수행하던 명상방편을 갑자기 바꾸게 되면, 그전에 닦아 놓았던 익숙한 길마저 잃어버리고,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하나,둘,셋--열, 천부경 명상법>으로 굳이 명상을 시작해 보고 싶은 구도자가 있다면, 일단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이글쓴이가 이전에 작성한 최치원 한문천부경 해설, 신지녹도문 천부경 해설,가림토문자 천부경 해설, 우리말 셈세기 천부경 해설에 대한 글들을 수십번 숙독하고, 특히 신지녹도문 천부경 해설문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 신지전자의 그림글자의 상징적인 의미를 머리속에 새겨 놓고나서, 하나,둘,셋---열,이라는 셈세기 염송과 함께 신지녹도문 글자 이미지에 대한 명상을 병행해야 될겁니다.
이것은 불교의 염불수행이나 힌두교의 만트라 명상과 비슷한 방편이라고 여기면 되겠읍니다.
이 명상법을 익혀두었다가, 일상생활에서 거리를 걸을 때에, 산책등을 할때나,기타 전철이나 출퇴근시간에 차안에서, 또는 혼자 앉아 있을 때에 마음 속으로 가볍게 염송을 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을겁니다.
마지막으로 천부경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읍니다.
[하나,둘,셋 : 알수도 없는 저~절대근원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본바탕 그대로인 無이고,세가지 요소로 뭉쳐진 생명기운이지만,전혀 움직임이 없느니라.
넷,다섯,여섯 : 본바탕의 한점에서 생명기운씨앗이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전체에 펼쳐지는데, 움직임때문에 본바탕과 따로 떨어지면서 스스로 진동을 일으켜서 의식이 생기고, 이 의식을 통해서 우주현상세계가 나타나느니라.
일곱,여덟,아홉 : 아무것도 없는 無의 바탕에서 의식을 통해서 우주공간이 나타남을 지켜보라,
의식의 움직임인 시간이 계속 흐르지만,변함없는 지금현재를 지켜보라.
그대의 내면마음이 공간,시간,생명기운으로 된 절대바탕 그자체이니,
그대 마음이 전체우주를 비추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라.
열 :그러면 전체가 하나이며, 별도로 떨어진 개체란 아무것도 없으므로,
일체가 절대바탕인 無로 열려 있느니라.]
여기서 더 간단하게 말하면,
[절대 본바탕인 無에서 의식의 움직임이 생겨나오고,
의식의 움직임때문에 온갖 우주삼라만상과 사람이 보여진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모든 것이 일체,아무것도 아닌 無라는 것을 깨닫게 되느니라]
천부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저절로 아는 자연주시상태가
되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자연주시상태로 있으면 저절로 의식의 근원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부경 내용을 지성적으로 완전히 이해했다면
그 다음 순서는 그 이해하는 앎조차 전부 버려야만 합니다.
즉 이해하는 것은 의식인데, 그 의식이 내면의 그 자체 뿌리로 들어가 안정되어야지 절대바탕에 접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래 모든 명상에서 의식의 뿌리로 들어가 안정되는 것이 옳바른 명상과정입니다.
의식의 뿌리로 들어가려면, 모든 이해했던 개념적인 앎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모름 넘어에서 고요하게 깨어있어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전체 망각상태가 유지되어야
의식의 뿌리에서 안정되게 머무는 것입니다.
의식이 그자체 속으로 합일되어 사라지는 것이죠.
그 상태에 도달하면 그후는 저절로 그 배후의 절대바탕이 인도하겠죠.
이것이 천부경 명상법의 최종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소위 천부경명상법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마음의 수준에서 나온 말장난일 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개인은 없고, 모든 것이 일체로써 아무것도 없는 절대바탕,그자체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위에서 말한 명상행위 같은 것은 구태여 할 필요가 없읍니다.
무엇인가 명상한다는 행위자체가 개인에고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
자기가 무엇인가를 행위한다는 행위자 에고의식만 더욱 가중시켜 줄뿐입니다.
천부경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다면,그것으로 그만 됬읍니다.
원래 명상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없이 가만히 깨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편입니다.
그럼 결국은 뭡니까?
천부경 속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단순히 생각과 개념들이며, 말일 뿐이고,실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가르쳐 주는 진리의 말씀들도 단순히 생각과 개념으로 된 말일 뿐이고, 진리자체가 아닙니다.
이런 말과 개념들은 마치 의식이라는 넓은 연못에 비치는 달그림자와 같은 허상입니다.
이것은 의식의 물결이 잠깐만 흔들려 버려도 그 달그림자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흩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흔들리고 변하는 의식의 개념들은 실재가 아닙니다.
실재인 진리는 바로 자기자신의 의식넘어 내면에 있읍니다.
그것은 나타나지도 않고 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바로 진리를 찾는자 자신이 실재이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고 알수 없는 것입니다.
탄생과 죽음에 관계없이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바로 내가 그것이며, 당신이 그것입니다. 그것을 참나라고 합니다.
현상세계의 <무한한 공간>이 순수의식상태에서는 <무한한 존재>에 대응되며,
현상세계의 <시간의 흐름>은 순수의식상태에서 흐르지 않는 시간인 <至福(아난다)>자체가 되고,
현상세계의 <파편화된 앎인 의식(知性)>은 순수의식상태에서 <전체적인 앎인 진지(眞知)>가 됩니다.
이것은 단 한마디로 말한다면 전체가 아무것도 없는 일체無 또는 일체空상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절대본체상태에서는 이 無 또는 空상태마저 초월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말로 이해시킬수 있는 최종한계는 이 존재,의식,지복의 순수의식상태입니다.
절대본체는 존재,의식,지복(sat chit ananda)의 존재상태를 초월한 곳이며,
말과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표현이 불가능한 일원적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보통 깨달음 수행법의 설명에서는 존재,의식,지복,의 순수의식상태를 목표로 수행하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그넘어 절대본체가 저절로 끌어 올려 준다는 것입니다.
이글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고대 성인의 가르침인 천부경 연구를 이만 끝마칠가 합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좀 더 학문적이고 깊은 연구를 해서 천부경의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어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밝은 빛으로 널리 펼쳐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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