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9. 21:37ㆍ무한진인/나는 누구인가
주시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저절로 일상사에서 이루어 진다고 얘기한 바 있지만,
실제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이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수행으로서 적용하는 이들은 드문 것같다.
의식에 보여지고,느껴지고,알려진 것은 모두가 주시의 대상이며,
이런 주시의 대상들이란 것은 항상 변하는 것들이다
변화되는 것들은 따라서 항상 주시상태에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주시자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주시되는 것들이 완전히 끝날때
거기에 영원한 상태가 존재한다.
따라서 알려진 것은 무조건 진짜 나(주시자)가 아니며
알려진것의 이전에(뒤에) 있는 것, 모르는 것이 주시자인 나인데
그주시자의 뒤쪽(이전)으로 계속 탐구하면
그주시자의 주시자인 최종주시자는 자신을 전혀 모른다
최종적으로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무조건 당신 자신(주시자)이다.
대략 주시상태로만 단계별로 애기해 보자면,
첫째 개인의식에서는 주시대상은 자기마음과 생각,육체,세상과 자기존재느낌을 주시하고
이때 주시자(나)는 우주의식(자아의식)이 된다.
둘째 우주의식(자아의식)은 주시대상이 되고 절대 진아가 주시자가 된다.
셋째 절대 진아로 들어오면 주시자가 없으므로 자기자신의 존재조차 모른다.
생각이 흘러간다.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나는 목격한다.
생각은 마음이고,
나는 마음을 주시한다.
내가 마음을 주시하면
나(주시자)는 대상인 마음과 따로 떨어진다.
나는 마음 이전에 존재한다
내가 육체을 주시할때
나는 육체와 따로 져서, 육체 이전에 존재하는 주시자가 된다.
내가 의식의 입장에서
의식을 관찰 할때
생각,마음,육체를 관찰할때
그리고 생기와 육체의 활동을 관찰 할때
나는 의식과 그밖의 모든 것으로 부터
따로 떨어져서,
주시자로서 그이전에서 그것들을 주시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정신이 들고부터는 계속 주시가 펼쳐지는데, 사실 보통 일상생활에서 "의식이 있다"고 하는 말은 "주시되고 있다"는 말과 같으며, 또 다른 말로 바꿔 보자면"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로 되바꿔 말할수 있겠다.
따라서 다시 말을 좀 길게 바꿔 보자면 이렇다.
"나는 나의 존재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기본바탕으로 해서 이세상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
왜 말을 이렇게 불필요하게 엿가락처럼 늘려 놓느냐 하면 보통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지각하고,생각하고 ,행동하는 행위로 계속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이어지는데,이러한 일상사의 평범한 지각,생각,활동 자체를 억지로든,저절로든 항상 의식은 하고(알고 있는)있음으로 주시가 자동적 펼쳐진다고 말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일상 지각경험의 밑바닥은 "내가 있다"는 존재느낌이 항시 깔려 있어서 이 자기현존감이 개인의식에 있어서 모든 정신감각작용의 밑바탕이라 할수 있고,
이자기현존감이란 "내가 있다"는 것을 지금현재 아는 작용으로서,
이"내가 있다"앎의 특성은 마치 빛이 뒤에서 부터 비추는 서치라이트처럼,의식의 비춤특성이 있어서, 주시자,보는자,아는자,관조자등을 부르고,
이 앎의 의식빛이 뒤에서 부터 비추어 오므로 ,
앞에 보이는 대상(아는 대상)은 무시하고,
바로 보는자(아는자)를 볼려고(알려고)하면
지금 보는자는 대상으로 물러나고, 다시 아는자가 뒤로 물러나게 되니깐
점-점-점 뒤쪽으로 보는 자는 물러나고,
최종적으로 보는자(빛의광원,절대)와 합일한다는 원리다.
마치 영화관에서 처음에 스크린위에 영상(현실세계)은 무시하고,
그영상을 비추는 빛줄기를 따라서 영사기 광원(진아,절대)을 향해 뒷걸음질 치면서 찾아 가야되는되, 가는 중에 돌아가는 필림(육체의식,개인의식,시공과 함께 그림이 나타남)을 거쳐야 되고,
이육체의식을 지나가기 위해서 그렇게도 가시밭길 산을 넘-고, 가시밭길 산을 넘어 험한 강을 건너서 수행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탐구 "나는 누구인가?"라는 수행방법은 이러한 기본개념을 가지고 계속 뒤편에서 보고있는(알고 있는, 비추는) 나를 뒷걸음질로 탐구해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은 정확하게 다시말하면 "이존재느낌을 알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의 뜻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아무뜻도 없이 육체느낌을 보면서, 이육체인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으면 남의 다리 글거주는 것처럼 아무효과도 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탐구법보다는 "내가 있다"의 앎을 평소에 어떻게 갈고 닦느냐 하는 것을 얘기할려고 한다. 그것도 육체의 동일시를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계속 얘기해 왔지만 이"내가 있다"는 느낌이 모든 개인의 기본정신 바탕인데,
이것은 내가, 또는 네가,등 개인이 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우주의식의 느낌을 얘기하는 건데, 이를테면 나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느낌이다
만일 내가(개인)이 존재한다는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식이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개인)이 존재감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의식(우주의식)의 앎이다.
말하자면 위에서 얘기한 개인의식의 "주시자"가,즉 우주의식이 주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지금,현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존감"으로, 주시자로서,
개인의식의 배경으로 나타나는데,
더 쉽게 얘기하자면 "지금현재 내가 있다는 느낌"을 알고 있는 이"앎"의느낌만을 그대로 유지한채 그대로 현재순간의 존재느낌을 유지하고 있으면 소위 "내가 있다"앎의 밑바탕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다. 의식은 강물처럼 저절로 흐르므로,아무런 생각이 없이 마음이 고요해지면, 흐르는 의식의 강물에 저절로 두둥실 떠서 무한한 바다로 들어가게된다.
이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느낌은 특별한 명상장소도 필요없고, 결가부좌니,반가부좌니 하는 좌세도 필요없고, 어디서 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쉽게 될 수가 있지만서도,
처음에는 참선 비스름한 자세로,아니면 안락의자에서 본격적으로 숙달시킨 다음에 때와 장소가리지 않고 자동으로 되도록 습관화 할 필요는 있다.
다만 가능하면 허리만은 꼿꼿이 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명상이 어느정도 진전되면 몸속의 기가 움직이는데 기의 흐름을 원활이 하기 위해서다.
무슨 정신수련이든 특별한 시간에 집중적으로 수련하는 이유는 평소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습관화 될 수 있도록 단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의 마음 고요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명상의 진전 효과는 단 한가지만 이다. 중간에 별의 별 심상과 특이 현상(초능력 비스름한 것들)은 절대 무시해 버리고, 오직 한가지 "마음이 고요해지고,생각이 없다"는 것만이 진짜 효과다.
주시상태를 광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해 보자면 한사람이 거울로 자기 모습을 비쳐 볼때에
거울에 비친 반사광선만 보는 것이 아니고 , 반사광선과 반사되기 직전 광선하고의 비교에의하여 자기 모습을 볼수가 있다. 즉 어떤 물체를 본다든가,지각한다는 사실은 반사되기 직전 광선을 바탕으로, 또는 기준으로 그 반사된 변화량을 감지하여, 반사되기 직전의 원광선을 바탕으로 지각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세상은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은 진아에서 직접받는 우주의식을 바탕으로 한 반사되기 전의 기준의식과 육체오감에서 걸러진 반사의식의 상을 같이 수신하고 있지만 육체가 자기라는 잘못돤 동일시로 인해서, 개인은 육체오감의식에서 휠타되고,변조된 육체정신적 메카니즘에서 반사된 의식에 의해 현상화된 세계만을 실제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따라서 이우주,이세상,개인 이란 것들이 실은 반사의식인 허상, 환상같은 것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참을성 있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무한이 되시길, 영원이 되시길, 영광이 깃드시길 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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