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행장(行壯)- 가신 이의 모습(8)

2025. 2. 24. 22:19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그 해 구월, 임금님은 다시 이사위를 스님께 보내 회암사에서 여는 '나라의 재앙을 없애는 법회"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갑인년 봄에는 가까운 신하 윤동명을 보내 스님께서 회암사에 계셔 달라고 하셨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 이 절은 내가 처음 불법을 깨친 곳입니다. 또 나의 스승이신 지공스님의 사리를 모신 절입니다.

더구나 지공스님이 일찍이 내게 말씀하신 땅이니, 어찌 가벼이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리고는 대중을 시켜 법당과 집을 다시 세우게 하셨다.

 

구월 스므 사흗날 임금님께서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임금님의 빈소로 가서 임금님의 영혼을 불러 설법하고 서식을 갖춰 왕사의 도장을 조정에 돌려 주셨다.

새로 자리에 오르신 임금께서는 신하 주언방을 보내 공양을 올리시고 아울러 왕사의 도장을 돌려드리고 다시 왕사로 삼으셨다.

 

병진년 봄, 절을 고쳐 짓는 일이 다 끝나자 사월 보름날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임금님께서는 구관 유지란을 행향사로 보내셨으며, 서울, 지방 할 것없이 사부대중이 구름 일듯 모이고 바퀴살처럼 많이 찾아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때 대평이 임금께 아뢰었다.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워서 사부대중이 오감이 밤낮으로 끊이질 않으니, 어쩌면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조차 거들떠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

 

그리하여 임금께서는 스님을 영원사로 옮기시게 하라고 관리들에게 시키셨고, 시킴을 받은 관리들은 스님께 영원사로 서둘러 떠나십사고 보챘다.

스님은 마침 몸이 아파 가마를 타고 절의 삼문 밖에 있는 남쪽 못가에 나오셨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돌아 나오셨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대중들은 모두 의심적게 여기다가 목을 놓아 울었다.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며 말씀 하셨다.

" 부디 힘쓰고 또 힘쓰십시오. 나 때문에 하던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됩니다. 내 걸음은 여흥 땅에서 그칠 것입니다."

 

오월 초이튿날, 스님은 한강에 이르러 스님을 모시고 가는 관리인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몹시 아프니 배를 타고 가세나."

그리하여 스님은 제자 열 명 남짓과 함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시게 되었는데, 이레 만에야 여흥에 이르렀다. 스님은 다시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내 몸이 더욱 아파서 이대로 지나갈 수 없게네. 이 까닭을 나라에 알리게나."

 

탁청이 달려가 이 일을 조정에 알리어 스님은 신륵사에 머무시게 되었다.

스님은 신륵사에서 며칠을 머무셨는데, 여홍수, 황희직과 도안감무 윤인수가 탁첨이 시키는대로 빨리 가시자고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스님께 알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렵지 않겠구나. 나는 이제 아주 따날 것이야."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 바로 지금 이때가 어떻습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스님의 몸과 마음이 다 흩어져버리면 어디로 가시렵니까? "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말씀하셨다.

"오직 이 속에 있지."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다지 뛰어 날 것이 없네."

"어떤 것이 뛰어날 것이 없는 진리입니까? "

스님이 눈을 똑바로 뜨고 보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자네를 볼 때 무슨 뛰어난 일이 있는가?"

또 한 스님이 언뜻 아프지 않은 이의 화두를 들추어 말하자 스님은 그 스님을 달래듯이,

"보게나, 그런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하시고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모두 잘 지켜보시게. 이 늙은이가 이제 여러분을 위해 열반불사를 지어 다 마치겠으니." 전시(오전 7시부터 9시 사이) 가 되자 스님은 열반에 드셨다.

아주 고요히, 오월 보름날이었다.

 

                                                                                       -무비 스님 역주 <나옹선사 어록>-

 

                                                                                          - 여주 신륵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