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와 일상생활(1)

2024. 12. 16. 22:24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우리 일상생활에서 해야 하는 마음공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를 꼭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우리 인생이 의심덩어리입니다. 아주 의심투성이 입니다.

모든 것이 의심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저 하늘은 무엇인지, 땅은 무엇인지, 바다는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요.

귀에 들리는 저 소리, 손에 만져지는 이 물건은 무엇인지, 깊이 들어가면 하나도 모릅니다.

아는 것은 이름과 여러가지 기억뿐입니다. 이름과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을 말하는데 행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하는지 들어보면 인연이 갖추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좋은 사람과 같이 있고, 뜻하는 대로 잘 풀리는 등을 행복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것은 마치 꿈과 같습니다.

그 꿈 속에서 아무리 기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잠을 깨면 꿈은 끝나버립니다.

잠을 깨는 동시에 꿈은 사라져 버립니다.

 

꿈은 어디에서 왔는가? 잠에서 왔어요.

더 구체적으로는 장식(藏識)에서 왔다고 합니다.

꿈꾸는 마음, 꿈 속에서의 활동은 제6식의 작용이니, 그것을 몽중의식(夢中意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의 저장소는 장식(藏識)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보고들은 경험을 저장하는 식(識)이 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것, 들었던 것, 행동했던 것이 다 저장되는 식이라고 해서 장식이라고 합니다.

그 장식은 눈이 감기고 몸이 노곤해서 잠을 잘 때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식에 쌓인 인연이 나타나는 것이 꿈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장식연(藏識緣)이라고 합니다.

장식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꿈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장식연은 일승불교(一乘佛敎)에서는 수면연(睡眠緣)이라고 합니다.

눈을 감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꿈을 꾸니 수면의 인연으로 꿈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장식으로 말하면 삼승이고 수면으로 말하면 일승에서 말하는 꿈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장식으로 보아도 과거에 경험했던 것, 과거에 생각했던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경험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 잠이 들지 않으면 꿈은 없습니다.

그래서 꿈에 나타난 것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잠에서 깨면 없어집니다.

또 우리 생활이 바뀌면 꿈도 바뀝니다. 그것이 장식이 바뀐다는 것이지요.

장식에 미국 것만 저장해 놓으면 꿈을 꾸어도 미국 밖에 꾸지 않습니다.

한국 것만 저장해 놓으면 꿈을 꾸어봐야 한국 것만 나옵니다.

이것이 꿈의 내용입니다.

 

이제 습마물(什麽物), 무슨 물건인가? 게송을 한 번 읽어보고 말씀을 계속 드리겠습니다.

 

몽교종종물(夢覺種種物)이

지시지각물(只是知覺物)이로. (나무아미타불!)

견문언사동(見聞言思動)이여

시개습마물(是箇什麽物)고. (나무아미타불!)

 

꿈을 꿀 때나 깨었을 때 가지가지 물건이

오직 알고 느끼는 것일 뿐이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여,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종범의 '습마물송'입니다.

꿈은 한자로 '꿈 몸(夢)'자를 쓰고 꿈을 깨는 것은 '꿈깰 교(覺)'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몽각'이라고 하지 않고 '몽교'라고 합니다.

글자로는 깨달을 각(覺)'를 쓰는데 꿈에서 깨는 것은 '교'라고 읽습니다.

꿈 속에서 만나는 것이 물건 뿐입니다.

물건을 안 만나는 꿈은 없습니다.

꿈을 깨면 별 수 있는가, 꿈을 깨어도 전부 물건 뿐입니다.

현실이 전부 물건이지요. 사람도 물건입니다.

그래서 '몽교종종물'이에요.

종종물을 떠나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지시지각물(只是知覺物)입니다.

'알 지(知)', '깨달을 각(覺)'자, 이럴 때는 감각이라는 각입니다.

'알고 느끼는 그것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알고 내가 느끼는 것뿐입니다.

저 하늘도 하늘이라고 내가 알고 느끼는 것뿐이고,

사람을 사람이라고 내가 알고 느끼는 것뿐이고,

이 몸 역시 몸이라고 내가 알고 느끼는 것뿐입니다.

죽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렇게 알고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입니다.

지각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시지각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컵 하나를 보십시오.

이것이 정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이것이 누구의 것인가? 무얼 하는 것인가?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변삼제(二邊三際)가 끊어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변'이란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라는 등이고,

'삼제'란 과거, 현재, 미래에 경계 제(際)를 붙인 과거제, 현재제,미래제입니다.

 

이변삼제가 다 끊어졌다면 없는 것인가?

이것이 있다가 금방 없어졌고 또 없어졌다가 있습니다.

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모릅니다. 그런데 오직 지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릇이다' '이것은 사기다.' '이것은 물을 담는 것이다.' '이것은 동그랗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 전부는 지각일 뿐입니다.

 

                                                          -종범스님 법문집 <한생각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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