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수행(4)

2024. 10. 23. 22:32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ㅇ. 지(知)와 무지

 

[본문]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여 갈수록 더 많이 이것저것 면밀히 살피면서 하나하나 쫓아가는 세상 사람들이여! 하나인 어떤 물건(진아)을 탐구하면 다른 어떤 것도 남지 않을 그 물건을 탐구하는 자만이 (참된) 지(知)라네!

[사두 옴 해설]

여기서 사용된 타말어 단어 '나둠(nadum)'은 '면밀히 살핀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욕망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면밀히 살핀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본 연의 후반부에서 '탐구한다'는 의미만 가진 타밀어 단어 '아이(ay)'가 두 번 사용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본 연은 "지와 무지"의 장에 들어 있다.

 

[본문]

미세한 물건(진아)을 세밀히 살펴서 (탐구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유능한 이들에게, 거친 사물들에 대한 이해(지식)가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눈 등의 감각기관을 통한 탐구로 아는 것보다, 소멸될 수 없는 내면의 감각(자각)을 통한 탐구(자기탐구, 곧 자기 주시)로 아는 것이야말로 으뜸이라네.

[사두 옴 해설]

이 연의 취지는 진아를 아는 수단인 자기탐구가 과학적 연구보다 훨씬 수승하다는 것이다.

 

[본문1]

진아의 참된 성품을 분명하게 알고 다른 대상들을 무(無,空,sunya)로 배척하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지고한 지(知)이니, 그것 외에는 가치있는 (혹은, 수승한) 어떤 지(知)도 없다네.

[본문2]

진아의 참된 성품을 분명하게 알고 다른 대상들을 무(無,空)로 배척하는 것이 지고의 지(知)이며, 모든 시간과 공간을 알거나 남들의 마음을 아는 것은 가치 있는 지(知)가 아니라네.

 

[본문]

샥띠(Sakti)의 어떤 유희도 (우주 안의 어떤 것도) 삭따(삭띠의 소유자)인 진아의 참된 성품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 참된 본질(진리)이라네. 의식(Chit)인 세계가 그것과(진아의 참된 성품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호불호에 의해) 미혹되는 마음의 본질은 편박됨(모든 장애와 불행의 원인)인 거짓 마야라네.

 

[본문]

"이 몸이 나다" 라는 인식이야말로 강력한 미혹의 무지라네. 결코 버릴 수 없는 진아의 참된 성품을 떠나서는 그것(거짓된 무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가 진아와 결합되어 있는 지(知)의 능력이라네.

[사두 옴 해설]

밧줄에 나타나 보이는 뱀이 거짓이기는 하나, 만약 밧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뱀이 존재하는 듯한 겉모습이 나타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몸이다"라는 무지가 거짓된 지(知)이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실재하는 진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다. 이 연에서 베푸는 가르침은 <실재사십송>제 13연에서 베푸는 가르침과 동일하다.

 

[본문]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단 하나의 공간을 공허한 상상력으로 (항아리 공간, 일체에 편재하는 허공 등) 여러 가지로 구분해서 보듯이, 단절없는 단 하나의 진아를 단어들로 분류하여 다수로 (다양한 영혼과 대상들로) 보는 것은 경이로운 유희인 마야의 결과라네.

 

[본문]

거짓이 없는 진아의 참된 성품인 (단 하나의) 실재를 다양한 차별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무지라네. 따라서 어떤 사물이 어떤 성품의 것이든, 그 사물을 참된 사물로 보는 것이 지(知)라네.

 

[본문]

갖가지로(다양한 이름과 형상을 가지고) 나타나서 전개되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 내적 본질인 실재는 단 하나임을 알라. 빙빙 돌아가는 착유기의 큰 막자에 부어 넣는 참깨들은 무수해도 그것들 안의 본질은 (똑같은 하나의) 참기름이듯.

 

[본문]

둘이 없는 진아의 진리와 합일된 수승한 평안에 안주한 순수한 실재의 명료함을 통해서, 실재 안에는 이원성을 이루는 앎과 모름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실재하는 지(知)라네.

 

[본문]

생각인 앎과 모름이라고 하는 두 가지는 낯선 감각대상들이 대상일 때만 있다네.

자신의 성품으로 존재하며 빛나는 실재 안에서는 (그것들이) 없으므로, 저 두 가지 (앎과 모름)가 없는 것이야말로 실재하는 지(知)라네.

 

[본문]

"자기 자신을 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 만큼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앎(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지한 것이 아닌지, 말해 보라.

[사두 옴 해설]

진아지를 얻은 진인들은 결코 "나는 진아를 깨달았다"거나 "나는 진아를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루나찰라 8연시> 제 2연의 제 2행에서 스리 바가반이 " '나'가 일어나서 '내가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가 '나는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말씀을 참조하라.

에고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는 앎과 모름을 넘어선 상태이다.

 

[본문]

(우리가) 지(知)로서만 남아 있으면 (진아에 안주해 있으면) 무지가 없으니, 무지는 거짓이고 지(知)만이 실재한다네. 제대로 알고 보면 무지를 말하는 것도 무지라네. 순수한 지(知)만이 (우리의) 참된 성품이라는 것을 알라.

 

                                  - 무루가나르 지음, 스리 사두 옴,마이클 제임스 영역 주석, 대성 옮김, <진어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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