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8. 21:52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신은 시간 내에서의 한 체험이지만, 그 체험자는 무시간적입니다.
마하리지 : 그 체험자 조차 2차적입니다. 1차적인 것은 의식의 무한한 무변제(無邊際),
영원한 가능성, 곧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의 가늠할 수 없는 잠재력입니다. 그대가 무엇을 바라볼 때 그대가 보는 것은 궁극자이지만, 그대는 자신이 구름이나 나무를 본다고 상상합니다. 상상 없이 보고, 왜곡없이 듣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본질적으로 이름이 없고 형상이 없는 것에다 이름과 형상을 부여하기를 그만두고, 지각의 모든 양상은 주관적이라는 것, 보이거나 들리는 것, 만져지거나 냄새맡아지는 것, 느껴지거나 생각되는 것, 기대되거나 상상되는 것은 마음 안에 있지 실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평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조차도 순수한 빛과 '존재의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있다' 없이도 '나'는 있습니다. 따라서 그대가 '나'를 말하든 않든 간에 그 순수한 빛이 있습니다.
그 순수한 빛을 자각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그것을 놓치지 읺게 될 것입니다.
존재 안의 존재성, 의식 안의 자각, 모든 경험 안의 관심 -- 그것은 묘사가 불가능하지만,
완벽하게 접근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달리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 실재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일체에 편재하고, 항사 존재하고, 영원하고, 일체를 알고, 일체에 힘을 불어넣는 제1원인으로 말입니다. 실재를 전혀 논하지 않는 스승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실재는 마음을 넘어서 있지만 모든 논의는 비실재의 터전인 마음의 영역 내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접근법은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비실재를 지적하며, 그렇게 해서 그것을 넘어 실재로 들어갑니다.
마하리지 : 차이는 말에 있을 뿐입니다. 어째든 저는 실재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비실재적이지 않고, 무공간이고, 무시간이고, 무원인이고, 시작이 없고, 끝이 없다고 묘사합니다. 결국 같은 것이지요.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한,언어 표현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수레를 앞에서 끌던 뒤에서 밀든, 수레가 계속 굴러가는 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떤 때는 실재에 끌리는 느낌이 들수도 있고 어떤 때는 거짓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기분 상태가 번갈아 드는 것일 뿐입니다.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합니다. 그대는 이 길로 갈 수도 있고 저 길로 갈 수도 있지만, 매번 그 순간에는 그것이 올바른 길이겠지요. 부디 오롯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의심하거나 주저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는 다양한 음식이 필요하지만, 먹는 행위는 동일합니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접근법이 다 좋습니다. 실제상으로, 그리고 주어진 한 순간에는 그대가 한 길로만 갑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실재를 발견하고 싶다면, 한 곳에서만 -- 내면에서만 -- 파야한다는 것을 조만간 발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대의 몸도 마음도, 그대가 추구하는 것 -- 그대의 진아가 되고 진아를 아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오는 큰 평안 -- 을 그대에게 줄 수 없습니다.
질문자 : 분명히 모든 접근법에는 타당하고 가치있는 뭔가가 있습니다.
마하리지 : 각 경우에 그 가치는, 그대가 내면을 추구할 필요를 느끼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다양한 접근법을 가지고 노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데 대한 저항, 곧 자신이 어떤 특정한 무엇이거나 누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을 찾으려고 온 땅 위에 조금씩 구멍을 파지 않고, 한 곳에만 깊은 구멍을 뚫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대의 진아를 발견하려면 그대 자신을 탐사해야 합니다. 그대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또한 그대가 곧 세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 아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곧 아는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모든 여정 중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제일 먼저 옵니다. 세계에 대한 사랑은 그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반사된 것입니다. 그대의 세계는 그대 자신의 창조물이니까요. 빛과 사랑은 비인격적이지만, 그대의 마음 안에서 그것은 그대 자신을 알고 그대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서 반사됩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늘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요기란, 선의가 지혜와 손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 아이 엠 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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