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6. 21:43ㆍ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질문자 : 물어봐야 할 것 같은 질문들이 계속 마음에 떠오릅니다. 이 질문들은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마음의 근원은 텅빔인데도 말입니다.
슈리 푼자 : 그대는 마음의 근원을 텅빔이라고 했다. 이것을 경험해 보았는가? 그대는 마음의 근원을 피하려고 이질문, 저 질문으로 옮겨다니고 있다. 그대는 마음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가? 어떤 기차는 럭나우에서 델리로만 간다. 기차가 서는 종착역에 다다랐다면, 그대는 계속해서 기차 안에 머물러야겠는가? 기차 안에 계속 앉아 있다해도 기차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텅빔은 종착지이다. 거기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말해보라!
기차는 멈췄다. 그것은 생각이 멈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기차에 앉아 있는가 아니면 기차가 더 가도록 밀겠는가?
질문자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 - - - - - - -
슈리 푼자 : (화를 내며) 우선 이제부터 하라 !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 그대는 텅빔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찾고 있는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질문자 : 아무 것도 없습니다. 파파.
슈리 푼자 : 아무렇게나 질문하지 말라. 마음은 질문 속에 숨어 있다. 그대는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여기 저기서 질문을 끄집어 내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대가 탕빔에 도달할 때 그곳은 종착지이며, 이 텅 빔에는 사람을 포함한 어떤 것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거기에 있는가? 어떤 질문의 근원을 찾으면 그 질문은 숨이 막힐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나', ' - - -할 때', '- - - 한다면'과 같은 말을 사용하지 말라.
질문자 : 그런 질문들만이 그냥 계속 나옵니다.
슈리 푼자 : 텅 빔에서 나에게 질문하라 !
* * * *
질문자 : 파파지, 당신은 그냥 "고요하라.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보라. 그 생각이 가버린 후에는 다시 고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슈리 푼자 : 그렇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무슨 할말이 있는가?
질문자 : 당신의 말씀을 저는 이해합니다.
슈리 푼자 : 이해는 필요치 않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대가 뉴욕에 있는데 내가 지도를 한 장 주면서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델리에서 넉나우로 가는 또 다른 비행기를 타라고 한다면 그대는 무엇을 이해하겠는가? 이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행기에 올라 타야만 한다 ! 비행기가 그대를 태우고 날아야만 한다.
질문자 : 그렇게 해 욌습니다. 파파.
슈리 푼자 : 그대의 행위는 필요하지 않다. 비행기 안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 비행기를 밀겠는가? (웃음) 단지 고요하라. 비행기에서는 "착석하시고 안전벨트를 매십시오." 라고 그들은 말하기조차 한다. 그뿐이다! 그대가 비행기를 밀겠는가? 그저 조용히 있으면 그것은 저절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대에게 음식까지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이 그 의미이다.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 기장이 그대를 데리고 간다. 그대는 기장에게 충고할 수도 없고 조정실 안에 들어갈 수도 없다.
고요함은 생각들이 일어나는 곳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Who am I'이다.
마음 속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 보라. 이것 또한 관찰이다. '나'의 근원을 찾든,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든 거기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관찰하아. 깨어 있어라.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말라.
질문자 : 제가 고요히 있을 때조차 개별적인 '나'라는 감각이 여전히 있습니다.
슈리 푼자 : 조용히 있을 때 누군가가 조용히 있는 것을 그대는 안다. 이 '나'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지 관찰해야만 한다. 이 개인적이며 개별적인 '나'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그것을 보고 그대가 무엇을 보는지 내게 말하라. 이것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이해가 아닌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를 볼 때, 그것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찾아보고 난 뒤에 있는 것을 나에게 말하라. 그대는 관찰자나 관찰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나'의 개체성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집중하라. 무엇이 보이는가?
질문자 : 지금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슈리 푼자 : 무엇이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다시 관찰해야만 한다. 다시 '나'를 관찰하라. 그것을 다시 관찰하라. 어서 하라.
질문자 : 하지만 당신은 노력없이 관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관찰한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생각 속에서 다시 길을 잃고 맙니다.
슈리 푼자 : 자신의 코를 보는데 무슨 노력을 하는가? 그대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을 볼 때에는 그대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 멀리 있는 것을 볼 때, 그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문제는 그대가 그대 자신의 참나를, 그대 자신의 가슴을, 그대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망막을 찾는 것과 같다 ! 자신의 망막을 보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
질문자 : 불가능합니다.
슈리 푼자 : 불가능하다. 옳다. 옳다. 망막조차도 떨어져 있다. 그것은 망막 이전에 있다. 이것이 망막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요하라고 나는 말한다. 그것을 그대의 눈으로 찾으려고 하지 말라. 그대는 그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그대의 눈이 보며, 그것을 통해 그대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것을 통해 그대는 보고 그것을 통하여 그대는 생각하므로, 그것을 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단지 의식이 되어라.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 바다 속에서 그대는 파도가 되어야만 한다. 파도가 일어나도록 놔두어라. 파도 역시 바다의 한 부분이다! 파도가 일어날 때 파도들은 바다에서 얼마나 멀리 가겠는가? 파도는 여전히 바다의 한 부분이다. 바다가 있는 곳이 파도가 있다. 자, 다른 질문이 있는가? 물어 보기 전에는 말하지 않겠다 !
- 그대는 신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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