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 깨달음의 징표에 대하여

2024. 2. 29. 21:48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진아에 대한 깨달음

 

앞서 설명한 내용인, 여러분 자신이 절대진아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제 파라마트만의 징표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탄생도 없고,죽음도 없고, 오지도 가지도 않으며,

속박도 없고 해방도 없습니다.

 

진아는 속성도 없고,형상도 없으며,무한하고,끝이 없습니다.

이것은 영원하고 지속적이며. 있는 그대로 입니다.

 

파라마트만은 모든 것 속에 골고루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만물 안에 있는 단일성입니다.

진아에 대한 인지(認知)는 논리 조차도 넘어서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베다 경전과 우파니샤드에서 언급된 진아의 징표입니다.

진아는 오직 헌신(전념)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헌신의 징표는 9 가지 형태의 헌신입니다.

9 가지 형태의 헌신으로 많은 헌신자들이 순수해졌습니다.

 

9 가지 형태의 헌신 안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자기 포기 또는 진아와의 동일화 입니다.

진아를 참구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진아와의 동일화는 스스로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헌신은 이렇게 탁월합니다.

 

결국은 가장 큰 예배는 신(神)에게 자기 머리를 완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신과의 그러한 친밀함이 자기 포기의 헌신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헌신자는 아주 희귀합니다..

그들에게 진아는 즉시 해방을 줍니다.

 

강의를 듣는 사람이 묻습니다.

"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해야 합니까? 절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신의 형상 앞에서 자기 머리를 베어야 합니까?"

 

그런 말을 듣고, 지식이 풍부한 그 연사(演士)는

"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여 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포기의 징표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속성없는 진아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신이 누구이며, 헌신자는 누구인가를 탐구함으로써, 저절로 자기 포기가 일어나는데,

헌신자는 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에 대한 알아차림 속에서 신과 일체가 됩니다.

신과 헌신자 사이에는 어떤 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과 헌신자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이 헌신자이며,

속박이 없으므로,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신과 헌신자의 뿌리(근원)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분리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눈에 보이는 형상들과는 전혀 다른, 진아, 즉 파라마트만 만이 남게 됩니다.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두 번째로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신과 헌신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완전히 해소됩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마음은 어떤 분리감도 없는 헌신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완전하게 해방임을 이해하십시오,

 

깨달은 성인에게 순복하여 비이원성에 대한 설법을 들은 사람은

자기가 따로 떨어진 개인이 되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도저히 분리된 개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면 어떻게 분리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만일 철(鐵)이 금(金)으로 변한다면 다시는 철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한 사람이 신과 합일되면

그가 다시 분리될 수 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헌신자가 신(神)이 되면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신과 헌신자가 하나라는 것을 분별력으로 이해한 사람은

해방의 약속을 제공하는 현자들 중의 한 사람만큼이나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이 정도로 설명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헌신자의 눈을 통해서 신을 보면,

즉시 신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몸으로만 산다면 인간 육체의 슬픔을 경험할 수 밖에 없고,

몸 너머로 산다면 절대 실재(絶大實在)인 파라브라흐만을 깨닫게 됩니다.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육체 동일시를 넘어 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파라브라만을 깨달으며,

신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이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이 던진 질문들입니다.

제기된 의문들에 대한 설명을 주의 깊게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실재(實在)는 육체를 초월해 있으며, 절대 실재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대가 육체와의 동일시를 넘어서면, 육체에 대한 어떤 애착도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다경전도 이와 같은 지성을 가진 사람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 지혜는 많은 경전을 살펴본 후에도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신의 영광은 육체의식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락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자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지 마십시요.

현자들이 말하는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누구를 탓해야 되겠습니까?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 현자의 말씀이 무엇이며, 왜 그들을 믿어야 합니까? 이 점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자의 말씀이란,

"나는 지복으로 충만하고, 태어나지 않은 진아다.

여러분 자신도 태어나지 않았고, 지복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을 이해하라."

이 말씀을 단단히 붙잡고 있으십시오.

 

이 위대한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이 항상 브라흐만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길, "육체가 종말이 올 때에, 나는 무한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말이 진실하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바보들은 말합니다.

"마지막 우주 멸망시에 환상이 파괴될 때만이 브라흐만에 도달할 것이다.

환상은 최후의 멸망 때나 육체가 멸할 때에 끝나야 한다. 그러면 나는 파라브라흐만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사람이 만족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만족감은 이런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군대가 모두 죽은 후에 왕국을 통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한 왕국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군대가 아직 존재하는 동안 왕으로써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환상은 비록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실재가 아님을 이해하십시오.

마찬가지로 몸이 있어도 이미 몸을 초월해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하고 이러한 이해와 함께 오는 만족감을 아십시오.

 

왕국이 갑자기 그대의 손안에 들어 왔을 때,

왕국의 행정업무가 전반적으로 잘 운행되고 있는 것을 그대가 보는 것처럼,

계속해서 저절로 아주 잘 작동이 됩니다.

행정업무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왕국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진아 깨달음을 얻어도, 몸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체가 작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 진아 만족감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닙니다.

 

긴 나무 뿌리를 뱀으로 착각하면 몹시 겁을 먹지만,

그 본질적인 진리에 대하여 어떤 확신이 주어 졌을 때에, 그 뿌리를 없앨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환상은 무섭긴 하지만,

그 본질을 조사해 보면, 그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붙잡고 있었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기루를 보면 홍수가 난 것처럼 보여서, 어떻게 물을 건너가야 할지 묻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알려지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끔찍한 꿈을 볼 때는, 사람들은 그 꿈 속에서 매우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이 꿈 속의 사건이 현실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환상은 개념에서 발생하지만, 진아는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습니다.

개념이 없는데 어떻게 절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육체가 끝날 때의 정신상태가 무엇이든 그것에 따라서 죽음 후애 오는 것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모든 경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여러분은 자신의 정신상태에 따라 죽음 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지와 환상 속에 있는 네 가지 몸과

그것들의 출생지와는 전혀 다른,

진아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이와 같다면,

지식이 풍부하고 진아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마음에 상승이나 타락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베다의 지혜조차도 진아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된 곳에서,

어떻게 고양(高揚)이나 몰락에 대한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됨의 검증은 자기 자신, 경전, 그리고 사드구루의 가르침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이라는 망상이 버려질 때에 실재(實在)는 진아 체험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해방의 가장 좋은 길에 착륙하는 것은 사드구루의 가르침에 의해서 입니다.

 

사드구루로부터 지혜를 받으면,

그는 네 가지 몸의 끝에 이르게 되어

자기의 진실한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명상하게 됩니다.

 

그 끊임없는 명상과 함께 살아있는 존재는

실재(實在)와 동일시되는 해방 속에서 풍요로워집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들이 사라질 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진아일 뿐입니다.

세밀하게 탐구해 보면,눈에 보이는 외양(外樣)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은 거짓으로 보여지고, 비실재로써 체험됩니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해방이라고 불리는 이 원리를 주의깊게 들어 두어야 합니다.

 

사드 구루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해방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 존경심을 가지고 사드구루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들은 것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스스로 반조해 보아야 합니다.

 

베다의 주요 전제(前提)와 최종 말씀이 모두 사라지고,

추구하는 자나 목표도 둘 다 없어진 곳에서,

이것이 해방된 진아인 상태임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명상과 집중이 끝나고 어떤 개념도 없는 그것 속에서는 모든 개념들이 사라지고,

그곳에는 브라흐만의 가장 미묘한 형태인 지혜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세속적인 삶의 신기루(환상)가 마르면, 거짓 속박에서 벗어나고,

태어나지 않은 그것(육체)은 출생의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선천적으로 초연한 사람을 괴롭힌 애착의 병과 몸을 벗어난 사람에게 영향을 준 육체의식,

그리고 세상 안에서 제한된 존재라는 육체동일시 개념, 등은 모두 분별력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비이원성 속에서 이원적인 느낌은 깨지고, 고독은 홀로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무한한 사람이 당연히 무한함을 깨닫습니다.

 

생시상태 그 자체가 자각되고, 자각이 초롱초롱해지며.

총명한 그것에 진아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불멸의 감로는 불멸로 만들어지고, 해방은 해방의 집으로 주어지며,

개인자아와 절대 진아는 영원히 합일됩니다.

 

속성없는 자는 무속성이 되었고, 중요한 사람은 중요성이 되었고,

그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원성의 칸막이 커튼이 끊어져서, 구분이 없는 것은 구분(의 환상이)이 깨져버렸으며,

오대 원소의 고통은 제거되었습니다.

 

영적 수행은 그 결실을 맺어서, 움직임없는 것은 고정되게 남아 있고,

분별력에 의해서, 어떤 모양에 의해서도 얼룩이 없거나 오염되지 않은 것이 순수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있던 것을 놓쳐 버린 다음, 그것이 속한 사람에게 인수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보자마자 출생의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브라민 사제는 꿈에서 자신이 하층계급에 태어난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깨닫는 순간에 자기의 진실한 정체성을 알아차렸습니다.

 

진아 깨달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와같이 성취한 사람의 징표는 다음 절(節)에서 설명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