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4. 20:30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에 대하여
강연을 듣고 있던 제자가 연사에게 묻습니다.
"성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해방을 이룰 수 있으며, 해방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날이 걸립니까?
깨달은 현자들과 친교(親交)하게 되면 해방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이해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연사가 말합니다.
" 진리에 대한 설명을 완전히 믿는 순간에 해방됩니다.
만일 마음이 불안정해서 믿지 못한다면, 그는 계속 헤멜 수 밖에 없습니다."
강연을 듣고 있던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정신을 차렸는데도, 갑자기 마음이 안절부절 못할 때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조용해지겠습니까?"
연사가 대답합니다.
" 마음은 많은 망상(妄想)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까지의 시간을 가치있게 만드는 관심과 경각심을 가지고 설명을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이 책의 다양한 내용 중에서 중요한 문장의 의미를 찾아내서, 이해하고,스스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혼돈 상태가 오면 이 책의 설명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어 보십시오.
이 책의 내용을 듣고는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제로는 듣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사람의 형상을 한 하나의 돌덩어리 일 뿐 입니다."
여기서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돌'이라고 말하니깐. 기분이 언짢아지고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사는 "주의를 기울여 돌의 속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돌을 깨부신 다음에, 적당한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 끌로 다듬으면,
그 후부터는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돌 한 조각을 끌로 잘라낸 후에는 다시 붙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잘못된 앎을 제거하더라도, 그런 사고방식은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인성이나 자질을 지적받게 되면 설명을 듣고 즉시 버릴 수는 있지만,
나중에 다시 돌아 옵니다. 이런 이유로 돌은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부정적인 인성이나 자질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돌멩이보다도 열등합니다.
돌이 그런 사람보다 수천배나 더 우수하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어떻게 돌멩이가 사람보다 수천배나 더 우월할 수 있습니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돌의 자질에 대해 귀를 기울여서 듣기 바랍니다.
루비,진주,산호,에머랄드,사파이어, 터키석,토파즈와 같은 모든 보석과,
소원을 이루는 돌 같은 그런 보석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돌멩이일 뿐입니다.
이외에도 태양에 영향을 받는 돌, 달의 영향을 받는 돌,
그리고 약재로 알려진 많은 돌들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종류의 돌들이 있습니다.
많은 순례지에서 발견되는 돌, 우물과 연못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돌,
비슈누와 시바의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돌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돌 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돌에 비하면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혼란스럽고 비헌신적인 사람의 몸은 더럽고 쓸모없는 돌과 견줄만 하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자, 이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그만 하겠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만 하는 마음은 상실감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불안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세속적 삶도 영적인 삶도 둘 다 적응해서 즐기질 못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는 일이 잘 안 풀립니다.
안절부절 못하면서 의심만 하면 마음 속에 근심 걱정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 중요한 것을 다 잊어 버립니다.
안절부절 못하면서 의심이 많으면 삶이 장애물과 같으며, 생사윤회의 얽매임에 묶입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 자세는 스스로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는 정신수행도 없고, 헌신도 일어나지 않으며,
해탈 열망자라도 진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는 확고한 결의가 없어서 성공도 불가능하고,
자신의 복지적인 삶의 질도 악화됩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는 법문을 듣거나 탐구할 수 없고,
설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곳에만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안절부절 못하는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삶은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귀신에 홀린 사람 같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깨어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듣고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는 지식이 있지만, 영원함과 덧없는 것에 대한 분별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게으른 사람이, 밤낯으로 게으른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불안감이 사라질지라도, 여전히 약간의 나태함은 남아 있습니다.
게으름으로 인해서 나태한 사람은 시간이 없는 것 처럼 여겨집니다.
게으름은 탐구력을 방해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적절한 행동이 뭍히게 되고,
게으름을 가지고 있으면 들은 내용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게으름 때문에 청문(聽問)의 배움이 불가능하고, 법문에 대한 설명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영적인 삶의 징표를 인식하는 능력도 흐미해집니다.
나태함으로 인해 매일 매일의 수행이 지켜지지 않아서,
그 사람의 공부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며.
게으름 그 자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져 갑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정신 집중력과 인내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정신적 자세가 흐트러지고 분별력이 둔화 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잠이 많아지고, 세속적 욕구가 증가됩니다.
게으름과 함께 도덕적 지성은 텅 비게 되고, 영적인 신념이 결여됩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은 게으름과 과도한 수면을 즐기는 행위와 관련이 많습니다.
과도하게 수면을 즐기는 것은 자신의 삶을 망치게 합니다.
수면, 나태함,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은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 어리석은 마음의 특징이 있는 곳에 어떻게 분별력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무지한 사람은 어떤 다른 행복도 찾을 능력이 없습니다.
배가 곺은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고 나니 게을러집니다.
게으른 기분에 그냥 아주 편안하게 잠에 빠집니다.
잠에서 깨어 나면 마음은 다시 불안정해져서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고서 진리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면
거기서 어떻게 어떤 자기의 이익이 될만한 것을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원숭이에게 보석을 주거나 귀신의 손에 보물을 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정도에서, 불안정한 마음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원래 처음 질문은 "성인과 함께 있으면 몇칠 만에 해방 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다음에 제시될 답변을 잘 들어 보십시오.
설명을 듣고 나면 의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깨달은 성인과 함께 지내는 효과는 이렇습니다.
철학자의 돌에 닿은 쇠(鐵)는 금(金)이 됩니다.
물방울 하나가 바다에 합쳐 집니다.
갠지스강을 만난 작은 개울물은 갠지스 강 자체가 됩니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주의 깊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해방이 즉각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은 보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해방이라는 말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제자의 총명함만이 중요합니다.
총명한 사람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아와 하나가 됨으로써 해방은 즉각적입니다.
일심동체를 이해한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에게 헌신적인 예배도 하지 않으면서
지성을 통해서 진아와 하나가 된다는 생각만을 갖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지성(知性)이 없이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고,
헌신적 믿음이 없으면 실재(實在)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믿음과 지성이 함께 있으면 육체와의 잘못된 동일시를 버릴 수가 있습니다.
육체와의 잘못된 동일시가 끝나면, 실재(實在)는 힘들이지 않고 깨닫게 됩니다.
깨달은 성인과 함께 있으면 깨달음이 지체되지 않고 즉각 실현됩니다.
특히 깨어있고, 관찰력이 있고, 지성적이며, 믿음이 돈독한 사람에게는
영적인 수행실천의 거창한 노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다른 헌신자들은 정신 수행의 실천을 통해서도 해방될 수 있으며,
깨달은 현자들의 수행단체에 가입해서 함께 지내면, 분별력으로 분명하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수행 실천과 영적인 담론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담론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유익합니다.
이제 해탈의 본질, 자기의 진아 성품,그리고 깨달은 성인과 친교를 유지함으로써
어떻게 확신을 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 내용에 대한 설명은 다음 절(節)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차분하고 주의 깊은 마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자질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거칠지만 올바른 말만 사용하겠습니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분들은 그러한 설명 내용에 관련해서
어떤 노여움에도 붙잡혀 있지 말 것을 부탁드립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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