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물에 대하여

2024. 1. 9. 21:45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창조물에 대한 담론

 

"천지창조가 있기 전에는 브라만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 현상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현상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까 아니면 거짓입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대한 현인입니다.

제 의심을 부디 해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렇게 설명을 듣고 있던 제자가 스승에게 간청했습니다.

 

모든 것을 잘 아는 자비로운 스승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이제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겠습니다,

내가 설명하는 내용을 정신 차려서 잘 들어 보시오"

 

바가바트 기타에서

"영원자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 내재해 있다." 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진술에 따른다면 천지창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 보여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된다."라는 설명에 따른다면,

창조된 이 현상계는 거짓입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거짓인지를 누가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그것이 진실하다고 말해도 그것은 파괴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여전히 보입니다.

자, 이제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해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무식한 사람도 있고, 박식한 사람도 있어서,

모두에게 골고루 만족한 답을 내놓기가 어렵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의 견해로 보자면,

이 창조된 세계는 영구적이며,

신,종교,순례, 종교서약은 모두 사실입니다.

 

깨달은 진인은, 우상숭배는 바보들을 위한 짓이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들의 우상이 실체라고 확신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러나 이 창조된 현상계가 모두 해체 된 후에는 그 우상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지한 사람이 "그러면 왜 종교의식을 행하고, 신을 부르며,

왜 사두구루에 대한 찬양노래를 부르며 순례지를 가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시바 신 자신이 사드구루를 숭배하라고 충고합니다.

사드구루 숭배에 대한 그의 설명은 구루기타에 나와 있습니다.

 

구루를 숭배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첫째는 그가 구루임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구루의 가르침에 의한 분별력을 활용해서

자신에 대한 만족을 스스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구루 기타에는 "사드구루의 지도하에 명상할 때,

어떻게 환상의 창조물들이 남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깨달은 진인(Jnani)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드구루의 말씀을 알아차리게 되면,

모든 창조된 현시물이 비실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대중 속에서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 크리슈나가 한 말씀이 어찌 무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바가바트 기타에서 한 말씀에서

"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 속에 있는 영원함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찌 이것이 무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청자(聽者)는 이렇게 의심을 표현하면서 마음 속으로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 질문에 답변을 주의깊게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크리슈나 경이 기타에서 말씀한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불필요하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슈나 경은 "나의 장엄함은 큰 무화과 나무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자르면 부러집니다.

 

나의 진실한 형상은 도구를 이용해서 부실수도 없고,

불에 태울 수도 없으며, 물에 녹일 수도 없습니다.

 

한편, 무화과 나무는 도구로 부러뜨릴 수도 있고,

불로 태워질 수도 있으며, 물에 녹여질 수도 있으므로,

파괴될 수가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부러지고, 타고, 녹을 수 있는데,

만일 신(神)이 이와 같다면, 어떻게 '유일한 신'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에 대한 의미는 사드구루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슈나 경은 "나는 감각기관 중에서 마음이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가 신(神)이 마음이라고 말한다면,

왜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한 마음의 물결을 다스려야 합니까?

 

크리슈나 경은 알파벳을 가르칠 때처럼,

영적인 수행의 길을 단계적으로 밟는 발자취를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돌을 하나씩 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譯註 : 일예를 들자면, 마조스님은 초보 제자들에게는 처음에는 '마음이 그대로가 부처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초보제자들에게 육체와의 동일시된 자아를 마음으로 동일시 하도록 유도하는 제 1차적인 명제(命題)로 임시 가르침(我空)을 펼칩니다. 그 다음에 몇년이 지나서는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마음이 부처'라고 말하니깐, 다시 마음에 집착해 있는 상태를 풀어주기 위해서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라는 제2차적인 명제(命題)로 일정수준 단계(法空)의 가르침을 펼칩니다. 그 다음에 얼마 지나서는 이 모든 개념을 다 풀어주기 위해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가르쳐서 제3차적 명제(命題)로 최종단계(皆空)의 가르침을 펼칩니다.]

 

그의 설명 속에 깃든 의미에서 보이는 모순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모든 것을 아는 분입니다.

육체 동일시를 바탕으로 말하는 모든 주장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베다, 우파니샤드 등 고대 경전에서는 많은 설명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드구루의 가르침이 있어야만 이러한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베다와 다른 경전의 차이점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깨달은 현인 외에는 아무도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제1차 명제나 주장, 그리고 마지막 교리는 고대 경전에서는 조언을 사용하여 표시됩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한 명확한 확신은 깨달은 현자들의 말을 통해서만 이애할 수 있습니다.

 

논쟁에 대한 해답으로 다양하고 반대되는 의견이 제시됩니다.

각자가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낫다고 주장합니다.

경전이나 베다의 다양한 주장은 워낙 많아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논쟁을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진아 체험으로서 '브라만의 지복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영적인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의 개념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조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러한 창조물에 대한 묘사가 어떻게 영원한 진실일 수 있겠습니까?

 

신은 상상력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으로부터 신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 발달됩니다.

만일 상상한 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신자는 슬픔으로 비참해집니다.

 

만약 신의 형상이 돌로 만들어져서 어느 날 깨진다면,

신자는 슬퍼하고, 감정이 고통으로 가득차서 울며 쓰러집니다.

 

신의 형상은 어떤 일이든 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집안 어딘가에서 잃어버린다거나, 도둑맞아서 빼앗기거나,

악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신의 형상이 변질되거나, 물속에 던져져 버리거나,

남에게 빼앗겨서 누군가의 발밑에서 으스러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예를 들면, 장난꾼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순례 성지의 위대함을 어떻게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한때 그곳에 있었던 위대한 순수성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신의 형상은 금세공기술자에 의해 금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주형틀을 사용해서 금속으로 찍어낼 수도 있고, 돌이나 나무로 조각하기도 합니다.

 

나르마다 강과 간다키 강 유역에는 신의 형상으로 간주되는 수백만개의 돌들이 있습니다.

차크라티르티와 같은 성지(聖地)에는 신의 형상으로 간주되는 자연적인 원형 주름이 새겨진 수많은 돌들이 있습니다. 신의 모습이 그렇게 많으면 마음은 '신은 오로지 하나 뿐'이라는 명확한 확신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화살,쌀알,구리동전,부싯돌 등 다양한 물건들을 숭배하는 신전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이 신들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비단실로 만든 신을 숭배하다가 부서지면,

그 다음 날부터 진흙으로 만든 신을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우리 신이 진실한 신이며,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지체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항상 우리의 갈망과 소원을 해결해 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신의 형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은 "이제 신의 순결함은 사라졌다. 무슨일이 일어나든간에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이제 우리의 신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라고 말합니다.

 

바보같은 짓들입니다 !

이것들은 단지 금속, 돌, 진흙, 나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신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이러한 유형의 사고방식은 모두 쓸데없는 망상일 뿐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이 상상하는데 따라서 결실을 얻게 됩니다.

유일하고 진실한 신의 징표는 이러한 것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환상입니다.

창조물들은 가짜들입니다.

베다와 고대 경전은 이것을 수십만 번 선언합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체험을 한 현인과 성인들도,

그들의 체험 역시 경전들의 선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은 오원소를 초월해 있고, 창조물들은 모두가 거짓입니다.

 

창조물이 나타나기 전, 그 존속하는 동안, 그리고 파괴된 이후에,

오직 하나의 영원한 신만이 시작과 끝에서 존재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결정적인 결론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과법칙, 무효화를 통한 부정은 모두 상상 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상상으로부터 나온 8가지 유형의 창조물, 또는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여덟가지 형태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잘 들어 보십시오.

 

첫번째는 상상의 세계이고, 두번째는 말의 세계이며, 세 번째는 모두에게 알려진 보이는 세계입니다.

네 번째는 그려진 그림 세계, 다섯 번째는 꿈의 세계, 여섯 번째는 천상의 세계,

일곱 번째는 고열로 인한 환각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덟 번째는 최면으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이것들이 여덟 개 유형의 세계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들 중에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어느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전체 창조물들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속성을 지닌 신"에 대한 숭배는,

반드시 확고한 결의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현인들과 성인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수행자는 오직 속성을 가진 신의 도움으로만 속성없는 니루구나의 확실성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성인과의 친견을 통해서 익힌,

핵심과 비핵심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분별력에 의해 발생합니다.

 

이제, 이것으로 지금까지의 설명이 충분히 된 것 같습니다.

성인과의 친견에서 얻어 들은 말씀들을 통해서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은 불안정하게 헤메고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때, 제자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창조물이 거짓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여전히 보이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눈으로 선명하게 보이므로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오, 스승님, 말씀해 주세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절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해 주겠습니다.

독자들은 다음에 나올 설명 내용들을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창조물 전체가 비실재적인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속성이 있는 창조물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단맛을 체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