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 결론에 대하여

2023. 1. 5. 21:19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최종 결론에 대한 설명

 

바람(風)이 공간(空)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바람(風)으로부터 불(火)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주의 깊게 들어 보십시오.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風)의 마찰은 경도(硬度,단단함)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찰로 인해서 불(火,빛)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바람(火)의 '부드러움'으로 인해서 시원한 물(水)이 만들어 집니다.

 

땅(地)은 물(水)에서 형성됩니다.

땅(地)은 많은 씨앗의 형태이며,

만물이 씨앗에서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아십시오.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는 상상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됩니다.

이 상상은 삼신(三神)의 몸으로 형성된 원초적 환상입니다.

 

단순한 상상의 움직임(파동성)이 움직임이 없는 것(不動) 안에서 나타납니다.

8겹 뿌라끄리띠 (顯現, Prakriti)의 뿌리는 한 생각인 상상의 형태 속에 있습니다.

 

8겹 현현(顯現:나타남,뿌라끄리띠)은 개념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상상(想像)의 형태입니다.

여덟 겹의 현현(顯現)인 프라크리티의 기원은 처음부터 이와 같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오대 원소와 세 가지 속성(gunas)이 함께 8겹(倍)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따라서 이것을 8겹(倍) 현현(顯現,나타남,Prakriti)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그것은 상상력(생각)의 형태로만 존재했고,

나중에는 우주의 형태 속에서 거친 물질적 현상계의 창조물들로 확산되었습니다.

 

원래 원초적 환상이 먼저 나타났고,

그 다음에 3개의 구나(guna)의 형태가 속성을 가진 환상으로서 나타났으며,

무지(無知)로 인해서 거친 물질적 비활성 상태로 형성될 때,

그것이 가시적(可視的)인 우주의 형태로 현시되어 보여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네 가지 유형의 말(言說)이 확산되면서

네 가지 유형의 창조물들이 존재 속으로 들어 왔습니다.

많은 종류의 종(種)들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는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제, 앞장에서 자세히 설명한 파괴에 대해 들어 보십시오.

 

하지만 이제 나는 파괴를 간추린 형태로서 설명하겠습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집중해서 듣기 바랍니다.

 

백년 동안의 가뭄 후에, 모든 생명체가 있는 이 세계는 바싹 말라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경전에 나오는 마지막 멸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양열이 열 두배 더 뜨거워지고, 땅이 재(灰)로 변하게 됩니다.

그 후에 재(灰)는 물에 융해 될 것입니다.

 

불이 모든 물을 말리고, 바람에 의해 불이 꺼질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은 있는 그대로의 형태 없는 상태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보이는 현상세계의 멸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환상이 사라지면서 실재(實在)의 참된 형태만이 남게 됩니다.

 

거기에서는, 개인(jiva)과 신(Shiva)의 허구성과 물질적 몸과 우주적 몸이 완전히 말라 버리고,

환상이라는 무지(無知)의 소동(騷動)이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말한 분별을 통한 우주의 파괴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분별에 의한 해체라고 불립니다.

분별력을 사용하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창조물 전체를 살펴보면, 두 가지가 발견됩니다.

하나는 움직이고 있고, 하나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행위자 또는 움직임의 원인은 움직임의 상태 속에 있는 움직임 그 자체입니다.

 

모든 몸 속에 존재하는 자, 그리고 모든 행위를 일으키게 하는 자는 모든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비행위자(非行爲者)라고 불립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브라흐마 신이든 다른 신들 중의 하나가 되든,

행위 기관을 통해서 모든 육체와 기능을 움직이는 자는 오직 진아 일 뿐입니다.

 

그것은 절대 진아, 파라마트만이라고 불립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행위자이지만 그것 또한 소멸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별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실제 체험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개 속에서 짖는 자, 돼지 속에서 꿀꿀거리는 자,

당나귀 몸 안에서 막무가내로 울부짖는 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육체가 사람들에게 보여지지만, 분별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육체들의 종말을 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평등성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동일하게 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육체를 볼 때, 그들의 외모는 각기 다르지만, 내면적인 동일성은 같으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 존재들은 하나의 내면 마음을 가지고 봅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창조되었지만, 모든 것 속에 있는 생명은 하나의 빛입니다.

그것이 지혜의 빛입니다. '우주적인 빛'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의식의 빛입니다.

 

귀로는 많은 말을 알고, 피부로는 차갑고 더운 것을 알고,

눈으로는 많은 물건을 보며 알고 있습니다.

 

혀를 통해서 맛을 알고, 코를 통해서 다양한 냄새를 알고,

행위기관을 통해서 많은 행동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의 상태는 미묘하고, 물질적 육체를 보호합니다.

그것은 많은 기쁨과 슬픔을 인식하는 자이기 때문에,

'내면의 주시자' 또는 "내면의 진아'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진아, 내적 진아, 우주적 자아, 생명 에너지, 모든 것 속에 있는 진아, 미묘한 진아,

개별 자아, 신으로써의 자아, 보는 자, 주시자, 그리고 완전한 힘의 형태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열등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변화하기 쉽고,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수많은 변화의 원인이 되는 그것이 실재(實在)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이 비슷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의 범주 내에 넣습니다.

이것은 변화하는 움직임의 환상적인 성질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영은 환상적이고 불안정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절대 실재인 파라부라만은 이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며 유일하게 참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영원한 것과 덧없는 것의 차이를 알기 위해 분별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육체를 떠나는 생명의 특질은 생명 에너지(프라나)입니다.

알지 못하는 삶의 특질은 무지(無知)입니다.

태어나는 생명의 특질은 욕망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 안에 현존하는 브라흐만의 일부분인 생명의 속성과 브라흐만의 전체성이 합일되는 곳이,

별도로 떨어진 육체라는 개념과 우주가 하나로 융합되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의 네 가지 특질의 속성이 설명되었습니다.

 

이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 두십시오.

움직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실재(實在)는 처음, 중간, 그리고 끝에서 항상 동일합니다.

그것은 변형도 없고, 속성도 없으며, 어떤 것에 의해서 더럽혀지지도 않으며,

어떤 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덮개가 벗겨짐으로써 개인 자아(jiva)와 신(Shiva)이 하나가 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덮개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려진 것이 무엇이든 지혜(Jnana)이지만,

그 지혜는 체험을 통해 절대 지혜(Vijnana)로 변환됩니다.

'무심(無心)'인 그것을 어떻게 유심(有心)인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태도나 상태(有心)는 마음의 상태가 아닌 것(無心)을 이해할 수 없고,

속성을 가진 것은 속성이 없는 것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은 성인들은 구도자들에게 분별력을 가지고 속성을 넘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먼저 설명(shravana)을 들은 다음,

핵심적인 본질(manana)을 반조(返照)해 보아야 합니다.

성찰(省察)을 통해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며, 무엇이 비본질인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체험(nididhvasana)으로 검증해 보면,

유일한 실재(實在)로서 어떤 것과도 연관이 없는 '하나됨'의 진아 깨달음이 오게 됩니다.

 

속성없는 단일성은 그 자체가 완전히 합일된 최종 해방입니다.

이제, 말을 사용해서 이해해야 할 것은 이정도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최종 결론과 함께, 베다에 명시된 주요 전제를 위한 장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감각을 초월해 있는 것이 어떻게 명백하게 보여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존재하지만, 보여지지 않습니다.

 

마야의 덮개가 있을지라도,

수행자는 사하자 사마디(本然三昧)의 자연스러운 초월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수가 있습니다.

설명을 들으므로써 지성(知性)이 의심을 전혀 하지 않도록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