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 22:42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브라흐만은 하늘처럼 비어 있고, 무한하고 광대하며, 속성이 없고, 순수하며,
영원히 공간처럼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파라마트만, 절대 진아라고 부릅니다.
그것에 붙여진 모든 이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서, 있는 그대로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것은 넓게 열린 공간처럼 모든 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겉모습이 없고 인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지하세계 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의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공간의 한계나 시대의 종말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움직임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증명이 됩니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아도 이름을 붙여줍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설명이 주어져야 하므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원초적 환상(Moolamaya), 창조계 근원(Moola Prakriti),
존재계 근원(Moola Purusha)이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또한 시바 샥티(Shiva-Shakti)와 기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우선적으로 먼저 그것이 인식되어야 합니다.
실제적인 체험없이 어떻게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형태, 본질, 상대적인 연관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 이름에 휩쓰려서는 안됩니다.
실제 경험이 없으면 그것에 대한 혼란과 상상된 알음알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하늘에는 그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는 불안정한 바람이 있지만,
하늘과 바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절대 실재(實在)는 고요하고,
그 속에 망상 그 자체인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환상(Maya)이 빙글빌글 돌며 (파동성으로) 나타납니다.
이제 이 소용돌이 치는 (파동성) 환상의 혼란과 미혹에 대하여 보여주겠습니다.
바람이 하늘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자극이 나타나는 것은 영감이나 미묘한 주장의 형태로 욕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은 그 자체가 지혜(앎) 또는 의식이며, 원초적 환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주의 대원인체라고도 불립니다.
이 '대 환상'(Mahamaya)은 창조계 근원(Moola Prakriti), 원초적 환상이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무지(無知)인 원인체, 보편적 지성인 미묘체,
혹은 우주의 물질적 현시된 거친 육체 등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경전에 따라 전체 5개 부분을 고전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神)을 감싸거나 덮어 쒸운 4 가지 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의식은 원초적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의 원리에 주어진 남성적인 이름은 절대진아(Paramatman), 절대 군주(Parameshwar),
모든 것 위에 있는 군주(Paresh), 고밀도 지혜(Jnanahana), 세계의 군주(Jagadisha),
그리고 세계의 진아(Jagadatma) 입니다.
그것은 힘의 형태(Sattarupa), 지식(앎)의 형태(Jnanarupa), 비춤의 형태(Prakasharupa), 빛의 형태(Jyotirupa),
원인의 형태(Karanarupa), 그리고 의식의 형태(Chidrupa) 이며, 순수하고 미묘하며,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아(Atma), 내면 진아(Antaratma), 우주적 진아(Vishvatma), 보는 자(Drashta), 주시자(Sakshi),
만물의 진아(Savatama), 현장의 아는 자(Kshetrajnana), 시바로서의 진아(Shivatma), 개인으로써의 진아(Jivatma),
육체 안에서의 하나(Dehi), 그리고 영원히 같은 자(Kutashta)라고 불립니다.
신(神) 중의 신(Indratma), 브라흐만으로서의 진아(Brahmatma), 시바와 비슈누인 진아(Hariharaatma),
죽음의 신인 진아(Yamatama), 종교인 진아(Dhamatma), 평화 속으로 물러나는 진아(Nairutvatma),
물,바람,풍요의 신인 진아(Varuna- Vaya - Kuberatma). 현인의 유지자인 진아,
신들과 고행자들(Rish- Deva-Muni-Dharta)이라고 불립니다.
천상의 가수,학자, 음악가의 다양한 집단 안에 있는 유일한 진아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마음인 진아입니다.
달,태양,별자리,다양한 대지,구름,21개의 하늘,
그리고 7개의 지옥을 지배하는 것은 내면의 진아입니다.
원초적 환상의 숨겨진 덩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의 남성적인 이름에 대한 많은 예들이 주어졌고,
이제 청자(聽者)들은 여성적인 이름들 중에서 일부를 듣게 되겠습니다.
원초적 환상(Moolmaya), 세계의 여신(agadishwari), 절대 지혜(Paramavidya), 절대 여신(Parameshwari),
세상 속에 편재한 여신(Vishvayanda), 우주의 여신(Vishveshvari),
삼세(三世)의 어머니(Trailokvajanani) 등이 그것입니다.
숨겨진 원인(Antarhetu), 숨겨진 측면(Antarkala), 침묵의 자궁(Maunvagarbha), 지성의 광택(anivakala),
가장 활동적인(Chapala), 우주의 빛(Jagajyoti), 생명의 꽃(Jivanakala), 가장 미묘한 내면의 소리(첫번째 말의 단계에서 가장 미묘한 소리 또는 Para Speech), 두 번째 단계의 심장에서 나오는 소리 (말의 두 번째 단계 또는 Pashvanti Speech), 인식 가능한 소리의 부드러운 속삭임(말의 세번째 단계, 또는 Madhyama Speech).
그것은 또한 독창성, 지성, 기억, 인식, 다양한 영감이라고 불리며,
지성에게 과거,현재,미래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깨어있고,꿈꾸고, 깊은 잠을 아는 자이며, 네 번째 상태(Turya)에 대해 끊임없이 아는 자입니다.
기쁨과 슬픔, 존경과 모욕을 아는 자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것은 매우 잔인하면서도 자비롭습니다.
극도로 부드럽고 애정이 넘치며 극도로 열정적이며,
한계를 뛰어 넘는 열정과 탐욕이 넘쳐 흐릅니다.
그것은 평화, 용서, 초탈,헌신,진아 지혜, 진아와의 완전한 결합의 마지막 해방, 탐구의 힘,
그리고 무위적인 '자연 상태'의 최고봉입니다.
이전에는 남성적인 이름이 주어졌고, 그 다음에는 여성적인 이름이 붙혀졌습니다.
이제 청자(聽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상의 중성(中性)적인 이름을 들어야 합니다.
아는 것, 내면의 마음, 듣는 것, 반성하는 것, 생명 에너지, 오고 가는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주의 깊고 침착하게 있으면서 이 내용을 보십시오.
그것은 '나'와 '너'의 두 가지 감각을 모두 아는 자입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지혜(Jnana)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상태, 시바의 상태, 신의 상태, 그리고 무욕의 상태를 아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이름이 있지만, 모두가 하나의 우주의 빛일 뿐입니다.
깊히 탐구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아는 자가 유일한 진아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진아, 우주의 빛, 또는 '모든 것을 아는 자'라고 불릴지라도,
이 세 가지 이름 모두 오직 하나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존재의 살아있는 증거인 내면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남성적, 여성적,중성적인 성별의 수많은 이름이 사용되고 있지만,
창조라는 광대무변한 구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내면의 진아는 하나이며,
개미에서 브라흐마와 다른 신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이제 내면의 진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많은 종류의 다양한 활동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대략적으로 이해하십시오.
그것은 이해 될 수는 있지만, 보여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체험이 오긴 하지만 모양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몸 안에 있지만 한 곳에만 상주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집중적으로 채웁니다.
호수를 보고 있으면 표면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것은 한 대상이 되긴 하지만, 모든 방향으로도 펼쳐져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 대상을 보고 있으면 그 대상처럼 되는데,
그것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변합니다.
그것은 많은 눈을 통해서 보고, 많은 혀를 통해서 맛을 보며,
마음을 가지고 많은 것을 식별합니다.
그것은 귀를 차지하여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더위와 추위의 감각과 피부의 다른 감각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것은 의식의 모든 활동의 내적인 작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물안에 주재하지만, 그것들과는 다르게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는 홀로 자신의 멋진 연극을 지켜보면서 알아차립니다.
그것은 남자나 여자도 아니고, 어린 소년도 아니고, 어린 소녀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별이 없고,몸을 붙잡고 있지만 무력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몸을 활동시키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행하지만, 비행위자입니다.
그것은 현장의 아는 자이고, 몸 안에서 상주하며,
모든 곳에 균일하게 스며드는 동시에 몸의 소유자입니다.
이 세상은 두 가지 유형의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괴될 수 있고, 하나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파괴될 수 있고,
모든 것에 스며드는 것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그 일차적 존재는 아주 다른데, 오대 원소의 움직임이 없으므로,
오염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절대 진아 파라마트만은 홀로이며, 어떤 변화도 없습니다.
해탈열망자가 4 가지 몸을 모두 벗어 버린다는 것은 어떤 몸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없는 헌신자가 진실한 헌신자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여기에서, 4가지 모든 몸이 포기되었을 때,
변화하는 형태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진아 안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을 때,
내면의 진아는 어디에 남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움직임 없는 절대 실재(實在)인 파라브라만은 하나입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움직임은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러한 실재 체험과 확신은 분별력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움직이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진인(Jnani)은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쉽게 인지합니다.
공허한 것은 버리고 참된 실체를 받아들이십시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아닌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진인(Jnani)은 항상 무엇이 일시적인 것인지,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를 봅니다.
진인의 지혜(Jnana)가 진아의 궁극적 지혜(Vijnana)가 되는 곳에서,
그리고 마음이 무심하게 되는 곳에서,
어떻게 진아에 어떤 불안정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간접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체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 체험을 얻지도 않고 무조건 노력만 많이 하는 것은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진실보다 더 큰 미덕은 없으며, 거짓보다 더 큰 실수는 없습니다.
실제 체험이 없으면 만족감도 없습니다.
진실은 자기의 참모습을 의미하고, 사실이 아닌 것은 환상이며, 이것은 증명된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종종 미덕과 죄악이라고 불리우는 덕성과 과실의 본질이 설명되었읍니다.
실수로 본 착각이 사라지면 절대 실재(실在)인 덕성(德性)이 남습니다.
그 사람이 진아로써 홀로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모든 이름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실재(實在)임을 입증합니다.
여기서 육체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산더미 같은 착각은 자동적으로 불타버립니다.
그렇지 못하고, 브라흐만에 대한 지혜가 없으면,
모든 영적 수행은 쓸모없고, 지루할 뿐이며,
산더미같은 착각의 오류는 씻겨내려가지 않습니다.
육체는 오류와 잘못된 개념으로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훨씬 더 많은 오류가 발생합니다.
질병이 마음 속에 있을 때 다양한 영적 수행과 같은 어떤 피상적인 치유로써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머리털을 모두 깍기도 하고, 많은 순례지에 방문할 수도 있고,
여러 종류의 엄격한 참회도 할 수 있으며,
많은 장소에서 엄한 규율로 자기 몸을 고문할 수도 있습니다.
몸에다 여러 가지 종류의 흙이나 기름을 바르거나, 혹은 뜨거운 동전으로 태우거나,
심지어 껍질을 벗길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정화되지는 않습니다.
소똥 케이크를 먹거나 소의 오줌을 항아리채 들이킬 수도 있고,
루드략샤 씨앗이나 나무 구슬로 만든 묵주를 몸에 걸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옷을 입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착각이 있습니다.
이 착각과 오류를 모두 태워버리려면 진아 지혜가 필요합니다.
진아 지혜의 위대함은 어떤 영적 서약, 자선,요가 수행, 순례지 방문보다
수백만 배나 더 중요합니다.
착각과 오류의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에
항상 진아지혜를 통해서 보는 사람에게는 덕행이 한계가 없습니다.
베다와 다른 경전들은 진리의 참된 본질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진인(Jnani)의 덕행은 헤아릴 수 없고,
진인의 선한 행위는 그 한계가 없다고 하는,
진인의 참모습을 묘사한 내용들 입니다.
이것은 실제 체험의 문제입니다.
체험은 진아적인 관점을 가지고 얻어야 합니다.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슬픔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오, 실제 체험을 원하는 여러분들,
실제 체험을 하지 못하면 삶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라마 경의 축복과 함께 체험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굳건하게 결심하십시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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