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탐구 실제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73)

2022. 10. 31. 22:16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집착매듭은 기본적인 것이므로, 진아를 앎으로서 집착의 소멸을 이루기 전까지는 잠, 기절, 죽음 혹은 마취제를 사용했을 때와 같이 신경속박매듭이 일시적으로 끊어질 때도 집착매듭은 영향을 받지 않고 (원인신을 이루는) 원습형태로 머무르며, 따라서 환생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스리 바가반은 라자요가를 통해 목석무상삼매에 도달하는 사람은 거기서 멈추면 안되고(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일시적으로 흡수된 마노-라야일 뿐이므로), 그렇게 흡수된 마음을 심장으로 이끌어 마음 소멸, 곧 몸에 대한 집착의 소멸인 본연무상삼매를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진아를 깨달은 자(본연적 진인)의 안에서는 집착매듭의 소멸 후에도 '나'-의식의 흐름이 신경을 따라 이동하지만, 그것은 연잎 위의 물방울이나 불타 버린 노끈과 같고, 따라서 그것은 속박을 야기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본연삼매, 곧 원습의 소멸 상태를 성취하려면 집착매듭의 소멸이 필수 불가결하다. 신경들은 거칠지만 그 속에 흐르는 의식의 힘은 미세하다.

'나'-의식과 신경들의 연관은 전기력과 전선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그것은 워낙 불안정하여 일순간에 단절될 수도 있고 연결될 수도 있다.

이 연관이 잠 속에서는 매일 끊어지고 생시상태에서는 작동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 아닌가?

이 연관이 작동되면 육체의식이 일어나고, 그것이 끊어지면 육체의식이 상실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말했듯이 육체의식과 세계의식은 똑같은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입고 벗는 옷이나 장신구와 같이 이 매듭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고, 우리에게 느슨하게 매달려 있는 하나의 찰나적인 거짓 물건이다!

 

스리 바가반이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에서 우리 자신을 분리할 수 잇다." 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 매듭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즉, 그것(에고)이 정말 생겨난 적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그것이 참으로 현재 존재하는가?'라는 탐구를 통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지(知, jnana)의 여명, 곧 진정한 깨어남이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그런 어떤 매듭도 생겨난 적이 없고, 그런 어떤 에고도 일어난 적이 없으며,

'존재하는 것'만이 늘 존재하고,

'내가 있다'로서 존재하던 것이 늘 '내가 있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알게 된다! 이 지(知,진아지), 곧 매듭이나 속박은 그 어느 때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결코 일어난 적이 없다는 앎의 성취가 그 매듭의 영원한 단절이다.

 

작은 이야기 하나로 이것을 설명해 보자.

" 아아, 감옥에 갖혔다! 나는 이 삼각형 방 안에 붙잡혀 있다. 어떻게 벗어나지?"

하면서 어떤사내가 두 벽이 만나는 구석에 서서 불평하며 울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앞의 두 벽을 두 손으로 더듬으면서 한탄했다.

"출입문도 없고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없다! 어떻게 빠져 나가지?"

 

조금 떨어진 열린 곳에 서 있던 한 친구가 그 한탄을 듣고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친구의 상태를 보았다.

그 열린 공간에는 벽이 두 개 밖에 없었다.

그 벽들은 두 방향만 막은 채 각기 한 쪽이 각기 만나고 있었다.(Λ)

열린 곳에 있던 친구는, 자기 앞의 두 벽만 마주하고 서 있는 그 친구가 세 번째 벽이 뒤에 있다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자신이 벽이 세 개인 방 안에 갇혔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가 물었다. "왜 벽을 더듬으면서 한탄하고 있나?"

"이 삼각형 방의 감옥에서 빠져 나갈 길을 찾는데, 길이 안 보여!" 사내가 대답했다.

 

친구 : 그러면 자네 뒤의 세 번째 벽을 찾아보지 그래?"

사내 : (뒤를 돌아 보며) 아, 여기는 아무 장애가 없군! 이 길로 달아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친구 : 아니, 왜 달아나나? 그럴 필요가 있나? 달아나지 않으면 감옥에 갇혀 있게 되나?

사내 : 아하! 그래, 그래! 나는 전혀 갇혀 있지 않았군! 뒤에 벽이 아예 없는데 어떻게 내가 갖힐 수 있었지? 내가 갖힌 것은 나 자신의 망상에 불과 했어. 나는 결코 갖이지 않았고, 지금도 풀려난 게 아니야 !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이 벽 근처에서 달아날 필요도 없어. 뒤를 돌아 보지 않은 것이 나의 이른바 속박의 이유였군. 그리고 내가 주의를 뒤로 돌린 것이 실제로 나의 이른바 해탈을 위한 수행이었어!

실은 나는 어떤 투옥이나 석방도 없이, 내가 있는 그대로 늘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진실을 알게 되자 그는 침묵을 지켰다.

이 이야기에서 두 벽은 2인칭과 3인칭들을 의미한다.

1인칭은 사내의 뒤에 있다고 하는 세 번째 벽이다.

2인칭과 3인칭에 대한 주의에 의해서는 전혀 해탈의 길이 없다.

1인칭에 주의를 기울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에고인 1인칭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올바른 앎을 얻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이 1인칭이 절멸될 때에만 속박과 해탈이 거짓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나는 속박된 자다'라고 생각하는 한 속박과 해탈의 생각이 지속되겠지만,

'이 속박된 자는 누구인가?'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면,

영원히 자유롭고 늘 빛나는 진아만이 존재할 것이네.

이처럼 속박에 대한 생각이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데, 해탈에 대한 생각이 지속될 수 있겠는가 !

-실재사십송 39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