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2. 22:18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진흙소의 울음소리-
대저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첫째는 무상(無常)함이 신속해서
생사(生死)의 일이 매우 큰 것을 두려워해야 함이로다.
그러므로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오늘은 비록 이 몸을 보존한다고 하나 내일은 또한 보존하기 어렵다"
라고 하였으니, 굳은 생각을 가져서 조금도 방일하거나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온갖 세상일에 조금도 간섭하는 뜻이 없이 털어 버려서
오직 고요하고 함(爲)이 없이 지내야 이에 옳다고 할 뿐이로다.
만약 이 마음과 경계(境界)가 서로 흔들려서 마치 마른 나무에 서로 불 붙는 것과 같이
번잡스럽게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 버린다면
이것은 특히 화두(話頭)를 드는 분상(分上)에서는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지옥의 업장(業障)만 점점 더 할 뿐이로다.
가장 요긴한 것은 모든 세상 일에 무심하고 마음에 일이 없으면
곧 마음의 지혜가 자연히 깨끗하고 맑음이로다.
모든 일이 다 마음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선(善)한 일을 지으면 천상(天上)에 태어날 것이요,
악(惡)한 일을 지으면 지옥에 빠져 나타날 것이며,
이리와 같이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 될 것이며,
경망(輕忙)스럽게 행하면 나비로 태어 날 것이니,
그러므로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다만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만 가지 형상(形相)이 나타난다"
라고 함이로다.
대저 그 마음을 비워서 깨어있음(惺惺)을 순일(順一)하게 하여
흔들리지도 않고 혼미(昏眉)하지도 않게 하여 허공과 같이 텅 비었다면
다시 어느 곳을 향하여 생사(生死)를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보리(菩提)를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선악(善惡)을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수지(受持)하고 범(犯)함을 찾겠는가.
다만 이것은 활발하고 역력(歷歷)히 밝아서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꿰뚫었다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따르지 않고
멸(滅)해도 멸함을 따르지 않으며
부처(佛)이라는 이름도 짓지 않고
조사(祖師)라는 이름도 짓지 않으며
크게는 삼천대천세계를 감싸고
작게는 조그마한 티끌에도 들어가며
또한 능히 부처님이 되며
능히 중생도 됨이로다.
또한 크고 작은 것도 아니며
모나고 둥근 것도 아니며
밝고 어두움도 아니어서
자유로이 융통(融通)해서
이와같이 철저하니
다시 조금이라도 억지로 만들어내는 도리(道理)가 아님이로다.
대저 이 불교(玄門)를 참구(參究)하는 사람은
항상 회광반조(廻光反照)하기를 힘쓰고
그것을 참구하는 마음을 쓰는데
깨어있음이 세밀하여 끊어지는 사이가 없으며
그것을 참구하는 것이 지극히 간절하여
가히 참구한다는 마음조차 없는 경지에 이르면
홀연히 마음의 길이 문득 끊어져
마음의 근본자리(本命元辰)를 밟으면
저 본지풍광(本地風光, 本來面目)이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원만한 경지(境地)에는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음이로다.
이와 같은 때에 이르면
귀(耳)로 사물의 소리를 들을 때에 이르러서
백천(百千)개의 해(日)와 달(月)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과 같으며,
눈(眼)으로 사물을 볼 때에
바다의 풍랑소리가 수미산(須彌山)을 뒤흔드는 것과 같음이니
이것은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님이로다.
이 한낱 도리(道理)는 단지 너무 가까이 있는 까닭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체득하여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로다.
무릇 현묘(玄妙)한 진리(眞理)를 참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회광반조(廻光反照)하는 법식(法式)을 착실히 알아
마음자리의 형용(形容)을 분명하고 자세히 살펴서 소홀함이 없어야 하며
거친 마음의 뜻을 씀이나 그 행동이나 그것을 행동하는 공력(功力)에 익숙해지면
실상(實相)의 진리(眞理)가 스스로 나타날 것이로다.
태고보우 스님께서 이르기를
"겨우 활을 들어 쏘자 화살이 돌에 박혔다"라고 하였고,
청허휴정 선사께서 이르기를
"모기가 철소(鐵牛) 등에 올라 철소(鐵牛)의 등을 뚫는 것과 같아서
침을 꽂을 데가 없는 곳에 온몸이 뚫고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화두(話頭)를 들고 참구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 말로써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만약 일상생활의 만행을 논할 것 같으면
가슴 속이 텅 비고 밝아서 사물이 없으며
육근(六根)이 텅 비어서
다만 저 너그럽고 넓은 그 자리가 바로 이것이 보시(布施)이며,
다만 저 맑고 깨끗한 것이 곧 지계(持戒)이며,
다만 저 비고 부드러운 것이 곧 인욕(忍辱)이로다.
다만 저 본래 밝은 것이 항상 나타나서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정진(精進)이며,
다만 저 밝고 고요해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선정(禪定)이니,
다만 이것은 밝고 고요하여 분명하게 법(法)을 간택(簡擇)하여 공(空)을 관(觀)하되
본래 스스로 어리석음이 없으며
모든 법상(法相)을 분별하되 움직이지 않으며
내지 세상 인연(因緣)을 따르되 장애가 없고 걸림이 없는 것이 곧 지혜이로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께서 이르기를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은 모든 행위를 총섭(總攝)한다"라고 하였으니
다만 근본 뿌리를 잘 배양하는데 쓸지언정
그 가지(一派)가 무성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다고 할지언정
부처가 신통삼매(神通三昧)가 없음은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로다.
요즘 사람들은 다분히 참학(參學)하는 이가
진정한 도인을 얻지 못하고
본래(本色) 납자들이 저 불법 가운데 법(法)의 진리(眞理)도 밝지 못하고
도(道)의 안목도 실답지 못하니
이것은 모두 갈림길에서 양(羊)을 잃은 것과 같고
마치 취한 것과 같고 꿈꾸는 것과 같이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아 ! 슬프고 슬픔인저 !
동산(洞山) 양개(良价)화상께서 말씀하신 바
"가사(袈裟) 아래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고통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로다.
대저 도의 길을 행하는 사람은 첫걸음에 바른 길을 얻지 못하면
천리(千里)의 먼 길을 가도 한갓 공력(功力)을 허비할 뿐이니
마치 길을 떠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함이로다.
그러므로 규봉(圭峰)선사가 이르기를,
"결택(訣擇)을 분명히 하여 깨닫는 진리(眞理)를 닦아 나간다"라고 함이로다.
대저 삼간(三幹)의 초옥(草屋)을 지으려 하더라도
만약 먹줄을 튕기고 자귀로 나무를 깎아 내고 자로 측량하는 공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성취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원각대가람(圓覺大伽藍)을 조성하는 사람은 그것을 조성하는 이치대로 말미암지 않고,
그리고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작은 일을 하고자 하는데도 잘못하여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그 진리를 생각해 얻으려면 누구에게 물어 볼 것인가.
그 사람도 분명하지 못하면
다시 지혜로운 사람에게 물어서 차질없이 성공하는 것이 조예(造詣)가 아니겠는가.
현묘(玄妙)한 도(道)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개가 함부로 경솔하거나 소홀히 하기를 자세히 결택하여 공부에 힘쓰는 사람을 보지 못함이로다.
오호라 ! 슬프고 슬픔이로다.
어찌 이것을 가히 경계하지 않겠는가.
대저 무살함을 경계해서 일대사(一大事)를 깨달아 밣히고자 하는 사람은
급히 스승을 찾지 않으면 장차 어찌 그 바른 길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함이로다.
一塵話(일진화)-
만약 이 물건을 이것이라고 말한다면
머리 위에 머리를 더 얹어 놓음이요,
만약 이 물건을 이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머리를 자르고 살기를 찾는 것과 같으니
이 속에 이르면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하겠는가.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밟아 타파하였을 때
만리에 구름이 없고 항상 드러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질없는 잔소리이로다.
또한 이르기를
"비록 천길이나 높은 한송(寒松)의 나무가 있으나
또한 석순((石筍)과 같은 가지도 없으니
석순(石筍)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이르기를
"공겁(空劫) 이전의 병 속의 청품명월(淸風明月)이요,
위음왕불(威音王佛,태초)이전의 눈에 어린 광명(光明)이로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이것도 군살의 사마귀요, 육손가락과 같은 군소리일 뿐이로다.
앙산(仰山)화상께서 이르기를,
"깨달음이 곧 없는 것은 아님이나 벌써 거리가 먼 제이(第二,두번째)의 머리에 떨어졌으니
어찌하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반밖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 말이로다.
수산주(修山主)가 이르기를
"알아 얻으면 매우 기특한 일이나 알지 못했다면 또한 서로 긍정하리라"라고 하였고,
대혜(大慧)선사께서 이르기를
"사오백(四五百) 가지에 버들꽃 피는 거리(巷)이요,
이삼천(二三千)군데에서 피리 불고 거문고 뜯는 누각이로다"라고 하였으니,
누가 능히 그 입을 대하겠는가.
입을 대하겠다고 하거든 도리어 나에게 그 경지를 물어 볼 것이로다.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이르기를
"이것은 귀를 막고 요령을 흔드는 것이요,
몸을 감추었으나 오히려 그림자가 나타나는 꼴이 아닌가?"라고 한다면,
또 이르기를 "네가 어디에서 이런 소식을 얻어 왔는고"할 것이로다.
또한 일러 보아라.
이와 같은 말을 하더라도 도리어
진리(眞理)에 체달함이 옳은가
또한 옳지 않은가.
또한 지금 푸른 절벽이 깎아 지른 듯 높고
소나무 전나무가 빽빽히 울창하며
계곡물이 힘차게 흘러가고
노을과 구름이 피어 오르며
온갖 새들이 화창하게 노래로 지저귀며
넓은 들판이 아득히 펼쳐져 있으며
대해(大海)에는 파도가 솟구치는 풍경이 펼쳐지며
사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이로다.
이 가운데 또한 불법(佛法)이 있겠는가,
또한 없겠는가.
경전에 이르기를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달 밝은 강 언덕에 진심(眞心)이 드러나며
누른 꽃과 푸른 대나무가 묘법(妙法)을 밝게 나타낸다"라고 하였고,
또한 이르기를
"밝고 밝은 온갖 풀잎이여 ! 밝고 밝은 조사(祖師)의 뜻이로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일러 보아라 !
어떤 것이 이 진심(眞心)과 묘법(妙法)이 밝게 나타난 것이며,
어떤 것이 조사(祖師)의 뜻이요 불법(佛法)인가.
만일 없다고 했다면 또한 불조(佛祖)가 어찌 망령되게 사람을 속일 것인가.
이미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면 또한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인가.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첫째 어떤 일을 만들지 말고, 둘째 쉬지도 말라.
한주먹으로 황학루(黃鶴樓)를 쳐부수고 한 발길로 앵무주(鸚鵡洲)를 밟아 뒤집어 놓을 것이로다.
의기(意氣)가 있을 때 의기를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도 또한 풍류(風流)이로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호떡을 가지고 쏟아진 국물을 닦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크게 수고만 하였지 공덕이 없음이로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 어떤 것이 변천하지 않는 뜻인가"하니,
고덕(古德)께서 답하여 이르기를
"해가 동쪽에서 떠 올라서 또한 서쪽으로 지느니라"라고 하였으니,
또 한 스님이 앞의 일을 물으니
고덕(古德)께서 손짓으로써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하였다.
두 스님이 모두 깨달았으니 또한 일러 보아라.
한낱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것은 마치 단 복숭아와 감을 먹지 않고
산에 올라가 쓴 배를 따 먹는 꼴이니
허물이 적지 않고 혼란도 적지 않음이로다.
그러한즉 필경에 어떻게 깨달아야 할 것인가.
또한 아래 주석(註釋)한 글을 들어 볼 것이로다.
한번 휴 ! 하고 이르기를
조사(祖師)의 명칭을 다하지 못하여 재앙(災殃: 佛祖慧明의 秘密句를 말함)이 자손(子孫)에게 미쳤음이로다,
삼십년(三十年) 뒤에 잘못 말했다고 말하지 말것이로다, 咄 "
-참선곡-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소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히 이르기를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할줄로 팔만장경 유전(遺傳)하니,
사람되어 못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 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 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 입고, 밥 먹으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서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번 깜짝할 새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神通妙用)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 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이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생각 간절하듯,
생각생각 잊지말고 깊이 궁구하여 가되,
일념만년(一念萬年)되게 하여
폐침망찬(廢寢忘饌)할 지경에 이르면 대오(大悟)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天眞面目)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석가여래 이 아닌가.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본래 생긴 자기 영광(靈光) 개천개지(盖天盖地) 이러하고
열반진락(涅槃眞樂) 가이 없다.
지옥 천당 본공(本空)하고 생사윤회 본래 없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점검을 받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수연방광(隧緣放曠) 지나가되 빈 배같이 떠놀면서
유연중생(有緣衆生) 제도하면 보불(報佛)은덕 이 아닌가?
일체계행(一切戒行) 지켜가면 천상인간 수복(壽福)하고,
대원력을 발하여서 항수불학(恒隧佛學) 생각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세말고,
오온색신(五蘊 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觀)을 하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몽중(夢中)으로 생각하여
희로심(喜怒心)을 내지 말고 허영(虛靈)한 나의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오욕(八風五欲) 일체경계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 나가세.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날 헛 보내고,
늙을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하여 볼까.
죽을 때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리골을 쪼개는 듯
오장육부 찢는 중에 앞길이 깜깜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뉘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畜生)에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 미끄러지고 넘어지니 다시 인신(人身) 망연하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앓도 않고 선탈(蟬脫)하며,
오래 살고 곧 죽기를 제맘대로 자재하며
항하사수(恒河沙數) 신통묘용 임의쾌락(任意快樂) 자재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과 코를 쥐어 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줏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이전 사람 참선할 때 마디 그늘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放逸)하며
이전 사람 참선할때 잠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이전 사람 참선할때 하루 해가 가게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무명업식 독한 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내가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않고
심상(尋常) 히 지나가니 희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여 인도할꼬.
쓸데없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 분별 날마다 분요(紛擾)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꼬.
지각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저 죽을 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못 닦으면 여간계행(如間戒行)
소분복덕(少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 보아
하루도 열두시며 밤으로도 조금 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위에 펴놓고 시시때때 경책하소.
할 말을 다하려면 바다같은 먹물로도 다 쓰지 못함이라.
이만 적고 그치오니 부디 부디 깊이 아소.
다시 할 말 있사오나 돌장승이 아이낳으면 그 때에 말하리라.
-경허선사-

'성인들 가르침 > 과거선사들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옹선사] 섣달 그믐날 밤에 하신 법문 외 1 (0) | 2024.02.09 |
---|---|
[용성선사] 마음 닦는 길(발췌) (0) | 2023.07.02 |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대해탈의 경계 (0) | 2022.09.13 |
알음알이가 일어나는 바로 그곳이 생사를 벗어나는 곳입니다. (0) | 2022.09.01 |
왜 무명번뇌(無明煩惱) 자체가 그대로 청정한 마음인가 ? (0) | 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