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9. 16:16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하루는 중년의 유럽인이 마하리지를 방문했다.
그는 늘씬했고 균형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 사람은 매우 흥분되어 있었으며 무언가 참지 못하는 듯 떨고 있었다.
그 불안함이 주위사람들이 눈길을 모았다.
마하리지가 그를 쳐다보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마하리지의 연민어린 시선이 얼마동안 보내지자, 그는 다소 안정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것과 같이 그도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방문객 :저는 20년 동안아나 베단타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진리탐구는 열매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20년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 간 후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노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의 <아이 엠 뎃(I am that)>을 읽게 되었고,
저는 비로소 일말의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인도로 떠나기로 결정하였고 여행 비용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봄베이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여기에 왔습니다. 저의 탐구는 이제 끝입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마하리지는 그의 말을 듣고 그로 하여금 마음이 가라앉도록 하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침묵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마하리지 : 선생은 자신이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방문객 : 제가 육체만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아이 엠 뎃>에서 말해진대로 육체 이외의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으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언어에서 진저리가 납니다.
저는 수백만 단어를 공부했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실체를 보여주십시오.
언어가 아닌 것 말입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는 선생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마하리지 : 물론입니다. 선생은 이미 그 실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나는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선생이 비롯되었던 원초적 존재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해 봅시다.
방문객이 말하기를, 그의 가슴으로는 마하리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들어가봐야 하겠다고 말했다.
마하리지 : 선생은 전반적 입장(상황)을 즉각적으로, 단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하며,
이것도 오로지 선생이 이 일의 뿌리에 이르러야만 가능합니다.
그 뿌리라는 것은 "나는 존재한다(I am)"라는 의식이 처음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 존재의 씨앗을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선생은 전 우주의 씨앗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도 알다싶이 선생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육체 속에는 프라나혹은 생명력
그리고 의식(내가 존재한다는 자각)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모든 인류의 이같은 현상이 다른 모든 생명체나 동물, 또는 땅 위의 풀 같은 것들과 다르까요?
선생의 뒤뜰에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고여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에서 뭔가 벌레 같은 것의 몸이 형성되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한쪽 구석에 쉰 빵을 며칠 동안 놓아두면 거기에서 벌레가 생겨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것 역시 그때에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게 됩니다.
또 조류나 닭이 어느 기간 알을 품고 있으면, 거기에서 갑자기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고,
그러면서 그것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성의 정자가 자궁에 수정되면 10개월 후 아기가 태어납니다.
정자는 점점 자라서 아기로 변합니다.
그리고 태어나서는 자다가 깨다가 하면서 육체적 기능을 수행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곤충이든 벌레든 병아리든 아기든,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진정으로 태어난 것을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수태로부터 출생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잠재되어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게" 될
"내가 존재하다(I am)"는 의식이 아니겠습니까?"
이 존재 또는 의식은 네 가지 경우에 있어 모두가 동일하며,
육체가 출생할 때 자신이 입고 나오는 몸의 형태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형태나 물리적 형상과는 상관이 없는 단순한 존재의식(내가 '이것'이라거나 나는 '저것'이라거나 하는 특정한 대상을 매개로 하는 존재의 개념이 아니라,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보편적 의식)이 자기 스스로를 어떤 특정한 형태의 물질 덩어리로 한정시키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출생>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며,
이로부터 그 의식은 항상 물질적인 육체가 겪어야만 할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개체성 있는 자기 정체성, 즉 에고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의 근원을 알았습니까?
그것이 개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몸에 의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몸이란 것도 수정된 정자가 스스로 자라난 것에 불과하지 않아요?
정자는 아버지가 섭취한 음식의 정수에 불과하구요.
그러면 그 음식이란 건 뭔가요?
그 음식이란 것은 네 가지 원소(空水火風)가 다섯째 원소의 지(地,흙)을 매개체로 형상된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의식의 씨앗을 단순히 음식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곧 몸이 의식의 "음식"인 것이니, 몸이 죽자 마자 의식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식은 이 전 우주의 "종자"인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꿀 때마다 어떤 하나의 세계가 의식 속에서 생겨나 펼쳐지는 것을 각자 경험을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완전히 깨어 있지 않은 채 단지 의식이 흔들리고 있으면 그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 속의 의식 한 점에서 전 우주가 창조됩니다.
꿈의 세계에도 바깥의 객관적 세계와 비슷합니다.
거기에도 태양이 있고 땅도 있고 언덕과 강, 건물도 있습니다.
꿈꾸는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도 있고, 소위 실제세계라고 하는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합니다.
꿈이 진행되는 동안 꿈 속의 세계는 아주 사실적이며, 거기서 경험하는 것은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실제 세계보다도 더 믿을 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꿈을 깨고나면 꿈 속의 세계는 그 세계를 창조했던 의식 속에서 산산히 부서져 버립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무지의 씨앗 때문에 세계가 출현합니다.
선생은 소위 "깨어 있는 상태"로 끌려 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깨어 있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너무도 깊은 꿈을 꾸기에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정말로, 선생이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선생은 이에 꿈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진실로 깨어 있음과 진실한 잠을 아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자, 마하리지는 방문객에게 여태까지 들은 것 중에서 그가 물을 질문이 있는지를 물었다.
방문객은 즉시 질문을 던졌다.
방문객 : "세계 창조의 배후에 있는 개념구조(메카니즘) 또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마하리지는 방문객이 "개념구조"라는 말을 제대로 사용한 데에 무척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마하리지는 항상 이 모든 세계가 순전히 개념적인 것이며,
말과 개념의 홍수 속에서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마하리지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마하리지 : 최초의 상태인 지극히 높은 파라브라만(Parabrahman)은 여여합니다.
표현될 수 없고, 형체도 없으며 주체의식조차도 없습니다.
그 상태는 충만 그 자체이기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어떤 특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그 상태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원래의 상태, 어떤 개념보다도 앞선 그 상태에서 의식-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움직여 존재가 됩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명백한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큰 바다에서 완만한 파도가 슬쩍 일어나듯이 그럴 뿐입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옴(AUM)' 소리의 씨앗입니다.
'옴'은 우주 창조의 시작에 있었던 나다(Nada,소리), 즉 태초의 소리입니다.
그것은 A, U, M,의 세 가지 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 음은 사트바(Sattva), 라자스(Rajas). 타마스(Tamas)의 세 가지 상태를 표상(表想)하는데,
이 세 가지 구나가 깨어있음, 꿈, 깊은 잠의 세 가지 의식상태를 만들어 냅니다.
(이 세 가지 구나는 의식 또는 조화, 활동성, 휴식의 세 가지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 의식 속에서 그 형태를 지어냅니다.
정말로 "내가 존재한다"는 그 첫번째 생각이 원래의 하나의 세계에 쌍대성의 세계를 지어냅니다.
부모(父母)원리의 쌍대성 - 남성과 여성, 푸루샤(Purusha)와 프라크리티(Prakriti) - 이 없이는 어떤 창조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의식 속에서 세상이 창조되어 나타나는 뒤에는 열 가지의 요소가 작용합니다.
부모(父母)의 쌍대성 원리, 오대 원소(地水火風空)를 구성하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화확적 성질, 사트바,라자스,타마스의 세 구나가 그 열 가지입니다.
어떤 개체가 자기 스스로가 행동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특정한 물질적 형상을 입고 세 구나를 그 개체에만 고유하게 조합되어 작용하는 것은
실제로는 오대 원소의 본질인 프라나(Prana,생명력)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의 창조를 바라보면,
실제로는 정신신체 의학적(psychosomatic) 기구에 불과한 각 개체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상이
그 질과 정도에 있어서 수백만의 다른 개체들과 다르게 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한쪽에는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사람이 있고,
또 한 쪽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있게 되는 가요
사람의 지문이 그 어느 사람의 지문과도 다르다든지,
똑같은 나무에서 나온 나뭇닢들이라도 그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씩 틀린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오대 원소와 세 가지 구나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면서 수억, 수조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경할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기 이전에,
진실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합시다.
그것은 단순히 개념적인 개체가 아니라,
이 꿈으로 지어진 세상에서 수백만의 역활을 동시에 하고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의식인 것입니다.
마야의 놀이(lila, 유희)의 다양함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 단계에서 절대와 상대 사이의 본질적 하나됨,
발현될 것과 잠재된 것의 하나됨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잠재된 것이 발현될 때에는 반드시 "내가 존재한다(I am)"는 기본적 개념이 있었야 합니다.
그 근본에 있는 것이 바로 실체, 전적인 잠재성인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을 현상적인 우주에 비춰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기 위해서 실체는 스스로 현상으로 객관화 시키게 되며,
이 객관화가 가능해지게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현상은 부피와 지속시간을 통해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현상은 실체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객관화된 실체인 것입니다.
그 본질적 일체성을 이해하고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나타나면,
그 근본적인 하나됨은 주체와 객체의 쌍대성으로 나뉘고 개념적으로 분리됩니다.
비 인격적 의식이 스스로를 발현하여 어떤 물리적 형태를 자신으로 알게 되면,
그 때 "나라는 생각"이 생겨나고, 이 "나라는 개념"은 자기가 어떤 독립적인 실체도 없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서
자신의 원래 주관성을 의도, 필요, 욕망 등을 지닌 객관체로서 바꾸어 버리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잘못 파악된 자기 정체성이야말로 해방되어야 할 "굴레"인 것입니다.
그러면 "해탈"이란 무엇인가?
해탈, 깨달음, 깨어남이라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근본적으로 직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째, 이 모든 현상의 씨앗은 비인격적인(보편적인) 의식이라는 것,
둘째, 우리가 구하고 있는 해탈이라는 것은 발현되지 않은 것의 잠재적 양태라는 것,
셋째, 찾는 자가 바로 찾고 있는 그 자체라는 것 !
여기까지의 대화를 요약하여 마하리지가 말했다.
1. 근본적 양태에서는 그저 "존재"만이 있으며,
여기에는 어떤 지식이나 조건, 속성, 형태, 자기 정체성 등이 없다.
2. 그러다가 (그런 것이 그것의 본성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명확한 이유가 없이
"내가 존재한다"는 개념(비개인적 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의식에 의해서 세계가 살아있는 꿈으로 펼쳐지게 된다.
3. 의식이 자신을 현상으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지닌 물리적 몸이 필요하며,
의식은 그 자신을 그 몸으로 동일시하고 그렇게 해서 "나"의 가상적인 객관화와 함께 "속박"의 개념이 생긴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개체는 순수한 주관성(무제한의 잠재성)을 객관적 대상(제한된 현상)으로 바꾸어 버린 "원죄"를 범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4. 어떤 객관적 대상도 자기 스스로의 독립된 존재는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그 대상은 이 삶의 꿈에서 스스로 깨어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착각 속의 개체는 "절대" 또는 "실재"라든가, 또는 어떤 또 다른 대상을 찾아 헤멘다.
5. 여기까지가 분명하다면, 이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의식이 생겨나기 전 원래의 모습은 무엇이었던가를
찾아내야 한다.
6. 이 단계에서 우리는 몸도 아니고, 의식도 아니며, 오로지 모든 의식이 있기 이전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온전한 잠재성의 상태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있게 된다. (의식 속에서는 그 상태가 무슨 이름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은 개념일 뿐이다.)
7. 그렇게 해서 이 고리는 완전하다.
찾는 자가 곧 찾아진 것이다.
마하리지는 결론으로서,
참된 "나"라는 것은 실재(實在)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라고 말했다.
현재의 현상체로서의 "나"는 일시적인 것이며,
마치 별이 있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일식이 생겼다 사리지는 것과 같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 살고 나면, 현상이라는 일식은 사라지고,
실체는 다시 자신의 깨어있음조차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수한 하나됨으로 돌아 온다.
이 모든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방문객은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마하리지의 설명이 끝나고, 그가 말을 해보려고 한두 번 시도해 보는 것 같았으나,
마하리지는 단호한 손짓으로 그의 말을 막았으며,
그는 다른 방문객들이 마하리지에게 그들의 경의를 표하고 하나 둘씩 떠나가는 동안
완전한 평화 속에 머물러 앉아 있었다.
-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담배가계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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