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1. 21:04ㆍ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참전체성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것 --
질문자: 제가 매일 직면하는 선택의 과정에서, 무엇이 신의 의지인지 어떻게 알죠?
라메쉬: 모르죠! 알 수도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힘을 내고 계속 남의 일에 참견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에 따라서 하던가 하지 않던가 하는 것뿐이죠. (웃음) 그리고 신이 모든 필요한 것을 하도록 믿으세요. 당신의 유기체는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창조되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라는 유기체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만 행동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프로그램 된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계속해서 일하고, 계속해서 행동하고...
질문자: 다른 말로 하면 선택은 내 본성에 따라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군요.
라메쉬: 그럼요! 그리고 아마 당신이 읽은 글 때문에나 들은 말 때문에 또는 외부에서 어떤 생각이 들어와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해도 괜찮아요! 일어나게 놔두세요.
질문자: 즐거워하는 성폭행범과 살인자들의 사진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것도 옳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라메쉬: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모든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질문자: 그럼 살인자가 즐거워하는 것도 옳겠군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라메쉬: 그럼 즐거워하는 살인자는 계속해서 즐겁게 사람들을 죽이지요. 이것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당신은 이 일과 전혀 상관없어요!
질문자: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까 두려웠습니다.
라메쉬: 하지만 당신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어요. 다만, 가능하면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세요.
-- 마치 선택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기 --
질문자: 쿤달리니가 깨어나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라메쉬: 아니요. 쿤달리니에 관해서 그 단어 말고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
질문자: 현상 세계가 환상이라는 견해가 완전히 함정같은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라메쉬: 그렇죠. 그래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자신이 행위자인 것처럼 행동해야만 하지요. 인간은 허구 위에서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태양이 뜨고 진다는 허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이 모두가 환상이고 자기에게 어떤 자유의지도 없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마치 자기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죠. 라마크리슈나가 "개인으로서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생활에서는 마치 자신이 행위자인 것처럼 기능해야만 한다."라고 한 말을 읽고서 놀랐습니다.
질문자: 왜 놀라셨는지 모르겠네요.
라메쉬: 제가 놀란 것은 라마크리슈나가 박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라마크리슈나는 영어를 쓰지 않았으니 누군가가 그 말을 "마치 그런 것처럼" 이라는 용어를 써서 번역했다는 점니다. 이것은 독일 철학가 파이잉거가 자신의 책 "마치 그런 것처럼"의 철학(주. 파이잉거, Philosophy of "As If" -'마치 그런 것처럼'의 철학, C.K. Ogden번역 (Telegraph Books, 1924 출판))에서 쓴 글과 같은 말입니다. "인간은 선택할 수 없지만 허구로 살아간다. 도덕적인 행동에는 상을 내리고 부정한 행동에는 벌을 내리는 신이 마치 있는 것처럼, 감각들이 주는 환상에 불과한 세계가 마치 현실인 것처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자유의지를 마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형 선고 아래에서는 마치 인간성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행동해야만 한다. 개인이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허구들의 효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마치 그런 것처럼'이라는 뜻은 아주 명확합니다. 몸-마음 유기체는 일어나는 일에 반응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결정해야만 하고 이것이 마치 자기 자신의 결정인 것처럼 결정해야만 하지요.
질문자: 이런 이야기를 나눌때 혼란스러운 것이, 이런 말씀들이 내가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사전에 알려주는 처방전처럼 들린다는 겁니다.
라메쉬: 처방전이 아니죠! 각성이 일어나면 어떤 지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질문자: 각성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제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관해서 수 많은 방법이 있고 수없이 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뭘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요?
라메쉬: 예, 보통 사람은 그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죠. "제가 행위자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겠는데, 제 일상의 삶은 어떻게 이끌어가야 합니까?"라고. 이런 질문에는 답을 해야죠. 답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지능이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놔두고 자신이 행위자인 것처럼 계속해서 기능하게 놔두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 이해가 깊어 질 것이고 일어나는 모든 행동을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으로 인식하게 될 겁니다.
질문자: 영적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습니다. 그 사람들이 돌파구를 찾으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특정한 순간을 말해줍니다. 그 순간이 있기 전에는 자기는 희생자고 자기를 희생자로 만든 비난 받을 누군가가 있다는 아주 미묘한 그런 감정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상처 받았고 그래서 그 부모도 어떻게든 잘못됐다고 하죠. 그러다가 변화가 일어나고 그 순간 이후부터는 받은 모든 상처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많은 사람이 마치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묘사합니다. 이것은 마치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나는 더는 비난하는 사람도 희생자도 되지 않을 거고, 나는 더는 남 탓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고, 나는 더는 분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 것이고, 마치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에게 책임이 있고 누구도 비난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살 것이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가 처리할 것이다."
라메쉬: 예. 보시면, 이 모두는 마음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일 뿐입니다. 자기 최면은 여전히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여전히 에고와 그 마음이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일이죠. 이 "나" 자체가 사라질 때, 이해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질 때, 그때는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내"가 더는 없을 겁니다.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나" 없이 저절로 일어나게 될 겁니다.
질문자: 여기 보면, 희생자와 책임을 지려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첫 번째 보다 두 번째의 경우가 좀 더 낫지 않나요?
라메쉬: 아닙니다. 애기를 하자면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더 안 좋은데, 그 까닭은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뭔가를 성취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깨닫지 못하고 아직 삶이 비개인적 작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사람들은 선택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어떤 지침이나 권해주실 것이 있습니까?
라메쉬: 큰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세요. "이제 나는 찾는 이고 책들도 읽었고 이 모두가 꿈인 것을 알며 나에게 의지력이 없다는 것도 아는데, 그럼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라고 묻지요. 중요한 점은 읽고 들었다는 것이고, 만일 그 들은 것과 이해한 것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필요에 따라서 그것이 저절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특히 당신이 끼어들려고 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답은 그저 평상시 하던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이 사는 삶의 방식을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자신이 사는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일부러 뭔가를 더하려고 하지 마세요. 일부러 뭔가를 빼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해오던 대로 계속 하세요.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어디있겠습니까?
질문자: 깨달음이 일어나면서 현시된 참의식이 잠든 참의식을 인식하면 그 사람이 경험하던 현상세계가 다르게 표현되지 않나요? 세상을 향상 시키려는, 그러니까 사랑이 더 많고 전쟁이 덜 일어나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이런 우리의 모든 노력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는데요. 만일 참의식에 의해서 표현되는 개별 존재들 모두가 그 반대편에 있는 참잠재성을 인식하게 되면, 그때는 이 모든 것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어떤 것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라메쉬: 만일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이 릴라는 끝날 겁니다. 쇼는 끝나고 커튼이 내려오겠죠. 아시겠습니까? 연극이 끝날 겁니다.
질문자: 하지만 우리가 평소처럼 주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눈들도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다 같이 함께 연극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완전한 다양성과 개별성을 나타낼 수 있을 거고, 이건 큰 기쁨일 거예요.
라메쉬: "우리"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까? 만일 "우리"가 할 수 있었다면 왜 아직 안 했을까요?
질문자: 인식의 부족이죠. 자기가 분리되어 있고 불완전하다고 믿기 때문이죠.
라메쉬: 이해의 부족이라... 예, 동의합니다. 자신에게 의지력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하지요. 그 말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세상이 다른 상태로 바뀔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지금 있는 이 상태로 있는 까닭은 이 상태가 정확히 세상이 있어야 할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관론자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꼭 알아주세요. 제가 하는 말은, 만일 세상이 스스로 파멸하지 않게 되어있다면 상황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게 하는 생각이 외부에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2명 또는 20명 또는 200명에게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무엇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겠습니까?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질문자: 그러면 지금의 세상을 거부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게 옳은가요?
라메쉬: 상상하는 것, 괜찮아요. 제 말은, 당신은 이상적인 것을 상상하고 완벽한 상태를 상상한다는 말입니다. 이상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상상하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세요. (29cho)
- 리쿼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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