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8. 20:49ㆍ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8장. 선택과 의지
-- 머리말 --
라메쉬: 아직 눈치 못 챘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웃긴 동물이예요. 다른 동물들도 다음 세가지 점만 눈치채면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나는,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모든 현자와 예언자들이 반복해서 인간의 행복은 오직 사랑과 보편적 인류애에 달려있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사람들은 모두 새롭고 다른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를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어할 뿐이고 그래서 아시람(*역자주, 수행하는 사원)에서 아시람으로, 구루에서 구루로 옮겨다니고 이 책 저 책을 읽고 찾아 다닙니다. 이런 수행을 해보고 저런 수행도 해보지만 수천년을 반복해서 들어온 그 기본 진리는 늘 무시하지요. 두 번째는, 인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지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달에 까지 보낼 수 있었지만 인간 자신의 사회 행동이나 품행은 통제하지를 못하죠. 인간은 확실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이루어낸 기술의 진보를 봐도 그렇고 자신의 사회, 정치적 삶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봐도 그렇지요. 마지막으로, 세계는 재난 직전에 와 있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지요. 하지만 확실히 지능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자유의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이용해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합니다. 누구도 자기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을 듣거나 자신이 인간의 지능과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질서라는 지능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할하지 않지요. 몹시 분해 하겠죠! 인간은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있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똑똑한 사람들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점성술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말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를 믿는다면, 왜 점성술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행동해 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놀랄만한 지능을 갖추었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통제권이 없지요.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 행동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이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별 유기체로써 단순히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유기체는 타고난 육체적, 지적, 기질적인 특징들에 따라서 반응할 뿐이지요.
-- 생각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
질문자: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제게 뭔가가 일어났어요. 우리가 아무리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정말로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라메쉬: 맞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선택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옷을 한 벌 사러 갑니다. 유행에 따라서 한 옷을 삽니다. 일년 전만 해도 그 옷을 안 샀겠죠. 그러니 유행과 잡지 그리고 미디어들이 어떤 종류의 옷을 사야 하는지 알려 주지만 옷을 사고 나서 자신이 선택했다고 말하죠.
질문자: 'ㄱ'의 길과 'ㄴ'의 길 중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여있어도 저는 여전히 같은 길로 가게 되는데, 그 까닭은 그 길이 제가 가기로 되어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라메쉬: 핵심은 'ㄱ'길인지 'ㄴ'길인지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ㄱ'이나 'ㄴ'길 중에서 선택할 때 정말로 일어나는 일이 뭘까요? "난 'ㄴ'길을 따라 갈 테다."라고 말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정말로 일어나는 일은 한 생각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이죠. 안 그렇습니까?
질문자: 저에게 들어온다고요?
라메쉬: 아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생각은 외부에서 당신의 두뇌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요점입니다. 전체 과정은 이렇습니다. 생각이 들어오고 말로 표현이 되고 나서 행동으로 실현됩니다. 그렇기에 모든 행동의 기초는 생각이 틀림없고, 생각은 이미 있는 조건들에 따라서 말로 표현되지요. 다른 때는 상황이 같더라도 다른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지요. 그 둘 다 당신이 한 선택이지만 어떤 때는 'ㄱ'길을 선택하고 어떤 때는 'ㄴ'길을 선택하는데, 그 까닭은 생각이 그때 그 선택을 하도록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어떤 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때문인가요?
라메쉬: 바로 그렇습니다. 생각, 말, 행동이 그 과정이죠. 생각은 의도할 수 없어요.
질문자: 선생님께서 전에 우리는 실수할 수가 없다고 하신 말씀이 이 뜻인가요?
라메쉬: 그럼요! 일어날 일은 모두 일어날 것입니다.
-- 노력 --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기위해서 자신이 노력할 수 있는 건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사실인가요?
라메쉬: 그야 물론이죠.
질문자: 그냥 진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립나까? 아니면 영적 수행에 참여합니까?
라메쉬: 바로 이 때문에 제가 "문제는 개인의 관점에서 일어납니다. 참전체성의 관점에서 보세요. 그럼 뭐가 일어납니까?"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당신이 참의식을 소유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참의식이다. 내가 의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능력은 나에게 있다." 실상은, 참의식이 당신을 소유하는 것이지요. 이 몸-마음 유기체와 수십억의 다른 몸-마음 유기체를 소유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각각의 몸-마음 유기체가 행동하게 하는 것은 바로 참의식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도록 각각의 몸-마음 구조체는 특정한 특징들을 가지고 잉태되었지요. 각자는 특정한 부모아래서 태어나는데 이것이 타고나는 것이고, 특정한 조건을 가진 특정한 환경에 영향을 받는데 이것이 배워가는 것이죠. 타고나는 것과 배워가는 것 둘 다 개인의 손에 달려있지 않고 "죽음"이라 불리는 사건도 개인의 손에 달려있지 않아요. 그럼에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이 "나"라는 환상은 뻔뻔하게도 "내 삶은 내가 통제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라고 말합니다.
-------결과에 대한 자부심 아니면 수취심 --
질문자: 선생님, 한번은 누가 쉬리 라마나께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을 쟁취한 것이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기양양해 할 만한 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라마나께서 답하시길, "이론적으로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여전히 개별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라고 하셨습니다.
라메쉬: 아 그럼요. 그러나 그분은 현상세계 속 개인의 수준에 맞춰서 말씀하신 겁니다. 제가 당신 말을 잘 이해했다면, 그분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깨달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개인이 자기가 성취한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질문자: 아니면 실패해서 기분 나빠하든지요.
라메쉬: 예, 바로 그렇죠. 아니면 실패해서 기분 나빠하죠. 그래서 현상의 수준에서는 평범한 일이죠.
-- 행동하든지 행동하지 않든지 --
질문자: 여기 미국 사람들을 보면 다들 심리적으로 자기를 개발하는 일에 빠져있는 것 같네요.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런 것은 그냥 에고를 지속시키는 것밖엔 않되죠.
라메쉬: 그렇죠. 에고를 지속시키지요.
질문자: 하지만 의도적으로 뭔가를 안하는 것도 뭔가를 하는 것과 다를게 없죠.
라메쉬: 맞아요. 여기서 요점은 긍정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은 의지에 따른 긍정적인 행동이죠. 말씀 하셨듯이 의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의지에 따른 것이죠. 이것은 의지의 부정적인 측면이죠. 의도적으로 무엇을 하고 의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것 둘 다 "내"가 관여하는 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그냥 "어떻게 되는지 두고보자."라고 하는 게 더 낫지요. 이러면 일어나는 모든 행동이 자연 발생적인 행동이 되지요.
질문자: 무위(無爲)를 말씀 하시는 겁니까?
라메쉬: 원한다면 무위라고 불러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자연 발생적인 행동이죠. 그런 행동이 일어날 때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지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 될 겁니다.
질문자: 모든 것이 신의 의지라면, 자기 개발을 위한 모임에 참여하거나 치료를 받는 것은 어떤 가요? 제 말은, 모든 것이 신의 의지라면 어떻게 어떤 일을 두고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라메쉬: 아주 옳은 말입니다.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질문자: 제 말은, 우리가 생각을 관찰하는 일도 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이 일도 일어나겠죠.
라메쉬: 맞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이렇게 들음으로써 어느 정도 이해가 일어날 수도 있고, 또 그 때문에 이런 목격에 이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때도 당신이 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 히틀러가 영국을 쳐들어가지 않기로 한 선택 --
질문자: 지난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가 영국과 대립하면서 내린 결정에 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라메쉬: 그러죠. 자신이 내렸다고 생각하는 모든 결정은 사실, 우리를 위해서 내려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정이란 생각의 최종 결과물인데 우리는 이 일어나는 생각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질문이 제 책 "영원한 것을 향한 탐험(*역자주: Explorations Into The Eternal, 라메쉬 발세카 저, 1987년 체타나 출판사에서 출판함.)"에서 든 예를 언급하는 것 같군요. 히틀러가 내려야 했던 결정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결정은 유럽대륙의 끝에 서서 영국 도버의 흰 절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내렸던 결정이라고 제가 말했죠. 히틀러의 모든 장군들이 "명령만 내리시면 일주일 안에 영국을 무릎 꿀리겠습니다."라고 말했음에도, 히틀러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지요. 히틀러는 자신의 군대를 동부 쪽으로 돌렸고, 그 결과는 나머지 세계의 입장에서는 좋았지만 히틀러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나빴죠. 히틀러는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렸겠지만 그 결정의 바탕이된 생각들은 히틀러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히틀러는 전쟁에서 져야만 했기 때문에, 히틀러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런 특정 생각이 그 순간 히틀러의 두뇌에 들어온 것입니다. 다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지요. 어떤 결정을 당신이 내려야 합니다. 당신이 대통령이고 6명의 부통령이 있지만 최종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6명의 부통령을 모아 놓고 상황을 설명한 뒤에 그들에게 "어떻게 할지 조언해보세요."라고 묻습니다. 세 명은 좋다고 하고 나머지 세 명은 안 된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이 큰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등을 돌리고 앉아서 동전을 던져보던지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궁극적으로 결정을 내릴 때를 보면 결정이란 대체 뭡니까? 생각이 들어와서 "하시오." 아니면 "하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 당신의 결정이란 외부에서 들어온 생각이 당신에게 무엇을 할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질문자: 자유롭고 죄 없는, 그런 결정. 이 말씀이신가요?
라메쉬: 그렇죠. 하지만 일어나는 일을 보면, 마음은 그것이 당신의 결정이었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그 결정이 좋게 판명나면 "나는 훌륭한 대통령이야. 역시 의장이 될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결정이 좋지 않게 판명나면, "쓸모 없는 부통령을 여섯 씩이나 데리고 일하고 있군."라고 말하겠죠. (웃음) (28cho)
- 리쿼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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