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2. 23:15ㆍ성인들 가르침/금강경
淨心行善分(정심행선분) 第二十三(제이십삼)
[본문]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야 是法(시법)이 平等(평등)하여 無有高下(무유고하)일세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로
修一切善法(수일체선법)하면 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須菩提(수보리)야 所言善法者(소언선법자)를 如來說即非善法(여래설즉비선법)일세 是名善法(시명선법)이니라.
다시 또 수보리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을새,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한 것이니,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으므로써, 일체 착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라.수보리야 말한바 착한 법이란 것은, 여래의 말로는, 곧 착한 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착한 법이니라.
[해설]
위에서 여러번 말한 바와 같이 불법은 마음법이다.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마음법이니, 이 법은 성현이나, 범부나, 더하고, 덜함이 없고, 깨친이나 깨치지 못한 이와, 있고 없음이 없고 사람이나 곤충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본래 평등한 것이요, 본래 구족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와 중생이 다른 것은, 부처는 깨끗한 본 마음 그대로 일체, 거슬리는 경계나, 순한 경계에도 물들어 더럽히지 않고, 중생은 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일체 역순(逆順) 경계에 부딪치는 때마다, 부딪치는 곳마다, 변하고 변하여, 더러워지므로, 자기 자성이 부처인줄을 알면서도, 앎과 행이 일치하지 못하나니, 이것이 걱정인 것이다.
예를 들면,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확실히 깨달아, 자기 자성이 부처님을 본 사람에게 향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머리를 좀 빌려 달라고 청하는 이가 있다 하면, 주저하지 않고 얼른 허락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이것이 곧 깨침과 행이 일치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아뇩보리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부처를 이루지 못한, 부처인 중생이다. 이것이 곧 이치로는 사상(四相)이 공한 것을 알고, 입으로나 붓으로는 얼마든지 공한 것을 말하고, 기록하지마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딴판이란 말이다.
이러므로 약간의 공리(空理)를 알았다고 (내노라) 하지말고, <선지식이다>자처를 하지 말고, 육도만행의 갖은 선법을 닦아, 역순 경계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물들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때를 따라, 처소를 따라,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 자유자재하여사, 이것을 가히 수행한 사람이라고 이름할 것이요, 야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 선한 법을 닦아도 선한 법에 무심하므로 선법이 아닌 것이다.
-해안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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