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8. 22:52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본문]
3제(諦)가 4지(智)에서 성소작지를 제외한 것은 성소작지가 속제(俗諦)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三諦四智除成所作智, 爲緣俗諦故
[해설]
3제(諦)는 공,가,중 3제이고, 4지(智)는 전식득지로써 얻어지는 네 가지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3제에 4지를 짝짓는데, 지혜 중에서 전5식이 바뀐 성소작지는 3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가,중 3제는 진제인데 반해, 성소작지는 속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행정은 4지 중 3지를 3제에 연관짓는 것 이외에 4지중 3지를 3신(身)과 연관짓는 유식설을 소개한다.
"성소작지는 주로 이타를 따라 갖가지로 변화하므로 이 때문에 제외한 것이라는 말이다.
만약 유식(唯識)에 따라서 말하면 많이 다르니, 대원경지는 법신이 되고, 평등성지는 보신이 되고, 성소작지는 화신이 되고, 묘관찰지는 3신에 두루한다. 이 두 가지 문장을 남기니 배우는 자가 상세히 살필 것이다.
행정이 언급하는 유식설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식설 : <3智>
평등성지(제7식) - - - 성소직지(전5식)
|______________|
대원경지(제8식)
+
묘관찰지(제6식)
<3身>
보신 ------화신
|__________|
법신
+
법신+ 보신 +화신
[본문]
그러나 법에는 얕음과 깊음이 없지만 법을 비춤에는 밝음과 어둠이 있고,
마음은 더럽거나 청정하지 않지만 마음을 이해함에는 미혹과 께침이 있다.
然法無淺深而照之有明昧, 心非垢淨而解之有迷悟
[해설]
법(法) <--> 법을 비춤(照)
천(淺) - 매(眛)
|
심(深) - 명(明)
심(心) <--> 심을 이해함(解)
구(垢) - 미(迷)
|
정(淨) - 오(悟)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 할 법 자체에는 깊고 얕음이 없지만,
그 법을 비춰 봄에는 궁극의 깊이까지 다 보느냐 아니면 표면만 얕게 보느냐의 차이가 있다.
법을 깊이까지 다 비춰보면 그 비춤이 밝을 것이지만,
단지 표면만 얕게 비춰보면 그 비춤이 어두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본래 불구부정하게 타고난 마음으로 서로 다를 바 없지만,
그 마음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는가에 있어서는 마음의 성품을 제대로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마음의 본래 성품을 아는 것은 깨우친 마음이지만,
그 본래 성품을 알지 못하는 마음은 미혹한 마음이다.
행정은 "성인의 단계로 함부로 넘어가서도 안되고, 또 범부나 하류 중생으로 비굴하게 물러나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치우침과 원만함을 구분하고, 또 치우침 안에서도 2승과 대승 권고를 구분하였듯이, 수행의 단계나 지위의 차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본문]
처음 초심에 들어가면 미혹에서 돌아섬이 어찌 얕지 않겠는가?
종국에 원만한 진리에 계합하면 시원한 통달함이 어찌 깊지 않겠는가?
[해설]
법신과 반야와 해탈을 증득하여 단덕과 지덕과 은덕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수행이 완성되어 진리와 계합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처음 마음의 영지를 자각하는 초심처에서부터 진리와 계합하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긴 수행과정이 필요하다. 초심자에서 망념을 떠나 무념의 영지를 자각함으로써 미혹에서 돌아섰다고 해도 아직 출발선 상에 있는 것이므로 수행이 얕다고 할 수 있고, 수행이 완성되어 진리와 하나되는 계합의 경지에 이르면 그때의 수행은 깊다고 할 수 있다.
행정은 처음의 얕음과 종국의 깊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미혹한 방향을 돌이켜서 본래의 실상을 보고 공력을 더해 정진하되 아직 성인의 무리애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은 얕은 것이다. 종국에 원만한 항상됨을 다하여 초심이 개발되고 3덕이 구경이 되면 공력과 수행이 잊혀지기 때문에 이것은 깊은 것이다." 초심처에 들어가기 시작 할 때의 마음은 아직 얕고, 수행을 통해 궁극으로 나아가면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본문]
미혹하면 진리를 잃어 스스로 차이를 만들고, 깨우치면 차이를 버리고 진리에 나아간다.
미혹과 깨우침이 그 이치가 같기에 "점진적 차례(漸次)라는 이름이 있다.
[해설]
수행의 과정을 점진적 단계로 보면 얕고 깊은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궁극으로 나아가는 과정상의 방편적 차이일 뿐이다. 궁극에 이르러서 보면 전체는 결국 하나의 진리의 드러남이고, 하나의 빛의 비춤이며, 하나의 생명의 발현일 뿐이다. 일체는 하나의 진리에 따라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미혹한 중생이 미혹으로 인해 그 실상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깨우쳐 진리와 계합하고 보면. 차이도 없고 미혹도 없고 일체가 참일 뿐이다.
다만 미혹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면 궁극이 저 멀리 있어 얕고 깊음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래서 미혹에서 깨우침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단계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행정은 미혹과 깨우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미혹하면 눈을 비벼서 차이를 보고, 깨우치면 본성이 전부 진실이다.
미혹과 깨우침에 저절로 차이가 있지만, 그 본체는 본래 둘이 없다."
미혹의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깨우침의 대상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르게 알아보는 것일 뿐이다.
결국 미혹이 감지하는 차이는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는 차이, 스스로 만들어 보는 차이인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하나의 진리일 뿐이고, 그 진리를 알면 깨우침이고 모르면 미혹이니, 미혹과 깨우침이 그렇게 멀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영지를 자각하는 초심처에서부터 심층마음의 진리와 완전히 하나 되는 계합이 일어나기까지의 점진적 단계를 밝힌 것이다. 초심에서부터 계합으로 나아가는 수행 과정에 단계와 순서가 있으므로 '점차(漸次)'라고 말하지만
그 전체는 결국 하나의 영지의 빛 아래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영지를 알아차리는 초심처에 이르는 것이 전체 수행의 관건이 된다. 그리고 그만큼 초심처는 설명하기 어렵고 얻기도 어려운 것이다.
초심처에 들어가자면 일상의 번다한 망념을 가라앉혀 무념이 되어야 한다.
무념이어야 망념 너머의 영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 한자경 지음 < 선종영가집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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