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모자라는 듯한 삶에 행복이 숨어 있다

2020. 12. 8. 10:12성인들 가르침/일반좋은글

 

 

두살 터울 딸들이 자랄 때 이야기다. 

길에서 초등학교에 갔다 오는 큰딸을 만났는데 주머니에서 용돈을 꺼내 손에 쥐여주었다. 

딸은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길에서 작은딸을 만났다. 

작은딸에게도 용돈을 손에 쥐여주었다. 

작은딸도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니 큰딸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빠가 자기는 500원을 줬는데 동생은 1000원을 줬다는 것이다. 

작은딸을 만날 때는 마침 동전이 없어 1000원을 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큰딸은 자신에게만 500원을 줬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도 고마웠는데, 작은딸이 1000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났다는 것이다. 

이 일은 큰딸에게 500원을 더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기쁨이란 비교하는 순간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 

그것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해서 너와 나의 차이를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가지를 들었다. 

첫째,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했을 때 청중의 절반 정도는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이 제시한 다섯가지 조건은 전부 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는 상태다. 

플라톤은 ‘모자람의 행복’을 제시한 것이다. 약간 모자라는 듯한 삶,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

 

사람들은 도에 넘치는 부와 소유욕, 분수에 넘치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졌음에도 감사를 모른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비교해 얻은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비교해서 얻은 행복은 생명이 짧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할지 모르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금세 불행으로 바뀌고 만다.

 

행복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오는 절대 행복에 있다. 

이 절대 행복은 삶의 참된 가치를 찾았을 때 오는 것이다. 

참된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삶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비교’에서 비롯하는 ‘주관적 해석’일 따름이다. 

삶의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며, 먼 곳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 

행복은 비교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를 통한 행복 찾기가 습관이 된 우리에게 그것이 쉽겠는가?

조선시대 청백리였던 오리 이원익은 ‘지행상방(志行上方), 분복하비(分福下比)’라고 했다.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견주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한다”는 뜻이다. 

꼭 비교해야 한다면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다. 

절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방향만 바꿔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암울한 시대에도 행복의 기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교회)-

출처 :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