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6. 00:03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龍門佛眼禪師 坐禪偈
[본문]
心光虛映(심광허영), 體絶偏圓(체절편원)
金波周周(금파주주), 動寂常禪(동적상선)
마음의 빛이 텅 비어 비추니
그 체(體)에 치우침(偏)과 원만함(圓)이 끊어졌고,
금빛파도가 돌고 도니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대로 선(禪)이라네.
[해설]
금빛 파도는 곧 여래장이 생사윤회함을 비유한 것이다.
모든 파도가 바닷물이듯이 세간의 모든 일들이 다 여래장일 뿐이다.
이 뜻을 알면 어느 번뇌의 자리이든, 교요한 자리이든 항상 그대로 선(禪)이게 된다.
단지 이 뜻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본문]
念起念滅(념기념멸) 不用止絶(불용지절)
任運滔滔(임운도도) 何曾起滅(하증기멸)
생각이 일어나고 멸하더라도
이를 멈추게 하거나 끊으려 하지 아니하고,
도도히 임운(그대로 수순함)하니
어찌 일어나고 멸함이 있었겠는가 !
[본문]
起滅寂滅(기멸적멸) 現大伽葉(현대가엽)
坐臥經行(좌와경행) 未曾間歇(미증간헐)
일어남이 멸하고 고요함도 멸함에
대가섭(禪의 조사, 本地) 나타남이
행주좌와에
일찍이 쉰 때가 없었다네.
[본문]
禪何不坐(선하부좌) 坐何不禪(좌하부선)
了得如是(요득여시) 始號坐禪(시호좌선)
선(禪)을 하는데 어찌 앉음이 없고
앉아 있는데 어찌 선(禪)함이 없는가
이러함을 깨달아 안다면
비로소 좌선함이라 할 수 있다네.
[해설]
행주좌와에 무슨 행을 한다고 함이 없어야 한다.
본래 당념 당처에 갖추어진 항상한 심성(心性)의 뜻을 안다면 무슨 특별한 행을 하려고 함에서
떠나게 되니 비로 이러해야 진정한 선이다.
특별히 앉아서 선을 한다고 해야 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얻거나 찾으려고 선을 한다면 그것은 선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념당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리에 본래 갖추어졌는데 무엇을 구하고자 하면 이미 그 자리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구절도 같은 뜻이다.
[본문]
坐者何人(좌자하인) 禪是何物(선시하물)
而欲坐之(이욕좌지) 用佛覓佛(용불멱불)
앉는 자가 누구이고
선이란 어떤 물건인가.
앉아서 선을 하고자 한다면
이는 불(佛)로 불(佛)을 찾으려 함이네.
[본문]
佛不用覓(불부용멱) 覓之轉실(멱지전실)
坐不我觀(좌불아관) 禪非外術(선비외술)
불(佛)은 구하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나니
구하려 하면 도리어 놓치고 만다네.
앉아서 무아(無我)임을 관찰함이니
선(禪)은 외도의 술법이 아니라네.
[해설]
당념당처 밖에 어떠한 것도 없다. 단지 당념당처가 어떻다고 관찰해서 심성을 아는 행이 있을 뿐이다.
먼저 이 관찰행을 통해 그 무아(無我)의 뜻이 통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아인 것이 곧 진아(眞我)임을 깨닫게 된다.
무심(無心)인 것이 진심(眞心)이다.
[본문]
初心鬧亂(초심료난) 未免回換(미면회환)
所以多方(소이다방) 敎渠靜觀(교거정관)
초심이 어지러우면
오락가락함을 면치 못하나니
까닭에 여러 면에서
교리를 익혀 고요히 관찰함이 하리
[본문]
端坐收神(단좌수신) 初則紛紜(초칙분운)
久久括淡(구구괄담) 虛閑六門(허한육문)
단정히 앉아 마음을 거두어 들이는데
처음에는 산란하나
오랫동안 익히게 되면 맑아지고
여섯감각기관이 텅 비어 한가롭게 되네.
[본문]
六門初歇(육문초헐) 干中分別(간중분별)
分別才生(분별재생) 似成起滅(사성기멸)
여섯 감각기관이 본래 쉬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분별하나니
분별이 바로 생기면
일어나고 멸함이 이루어진 듯하다네.
[본문]
起滅轉變(기멸전변) 從自心觀(종자심관)
還用自心(환용자심) 返觀一遍(반관일편)
일어나고 소멸함이 전변하는 자리에서
자심(自心)을 관찰하나니
다시 자심으로
(자심을) 한 번 돌이켜 관찰해보라 !
[본문]
一返不再(일반부재) 圓光項載(원광항재)
雲焰騰輝(운염등휘) 心心無碍(심심무애)
한 번 반조함에 다시 일어나고 멸함없어
둥구런 빛이 정수리에서 발하고
화광이 높이 치솟아 빛나며
마음마다 걸림이 없다네.
[본문]
橫該竪入(횡해수입) 生死永息(생사영식)
一粒還丹(일입환단) 点金成汁(점금성즙)
좌우상하로 어디에나 들어가(자유자재하며)
생사가 영원히 그치나니
한 알의 금이 단약(丹藥)이 되고
한 점의 금이 즙(汁)을 이루듯 하네.
[본문]
身心客塵(신심객진) 透漏無門(투루무문)
迷悟且說(미오차설) 逆順休論(역순휴론)
몸과 마음의 객진(客塵) 번뇌를
투과함에는 문이 없나니
미(迷)와 오(悟)를 설하거나,
역(逆:경계에 거부함)과 순(順:경계에 수순함)을 의론함도 놓아버려라!
[본문]
細思昔日(세사석일) 今坐尋覓(금좌심멱)
雖然不別(수연불별) 也大狼藉(야대랑자)
예전에는 세밀히 사유하다가
지금은 앉아서 구하여 찾음이
다르지 않으며
또한 모두 크게 낭패하게 하는 것이네.
[해설]
두 가지 행 모두 작의(作意)함이 있고, 구함이 있으며,
마음 일으킴이 있어 심성(心性)의 뜻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본문]
刹那凡聖(찰나범성) 無人能信(무인능신)
周地忙忙(주지망망) 大須謹愼(대수근신)
찰나에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것임을
능히 믿는 자 없어
이리저리 황망히 돌아다니나니
모름지기 크게 조심하고 신중하라!
[본문]
如其不지(여기부지) 端坐思惟(단자사유)
一日築著(일일축저) 伏惟伏維(복유복유)
그 뜻을 모르겠거든
단정히 앉아 사유해보라 !
하루 만에 올바로 알게 될 것이니
신중히 생각하고 생각해보라 !
[해설]
축착(築著)은 축착합착(築著嗑著)의 줄임말로 절굿공이의 입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선문(禪門)에서 옳게 깨달아 합치되는 것을 비유하여 자주 쓰인다.
-박건주 역주,담림 편집 <보리달마론, 부록> 운주사-
* 보리 달마의 수숭한 고대 법문집을 공부할 수 있게 인연을 닿게 해주신,
역자 박건주 박사님과 운주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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