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8. 21:04ㆍ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484. 발다라경(跋陀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발다라(跋陀羅) 비구와 존자 아난도 함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섰다. 이 때 아난이 발다라 비구에게 물었다.
무엇을 봄[見]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까? 무엇이 들음[聞]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즐거움[樂] 중에 제일이며, 무엇이 생각[想]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존재[有] 중에 제일입니까?
존자 발다라가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자유자재로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변화하는 세간의 아버지인 범천(梵天)이 있습니다. 만일 그 범천을 본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곳곳마다 윤택하고 곳곳마다 기쁨에 넘치며 온 몸에 가득 차지 않는 곳이 없나니, 이른바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냅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쳐 온 대중들에게 '지극한 고요함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고, 지극한 즐거움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이 몸에서 기쁨을 여읜 즐거움이 윤택하여 곳곳마다 윤택하고, 기쁨이 넘치고 충만하여 온 몸에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른바 기쁨을 여읜 즐거움입니다.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생각 중에 제일인가?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일체의 식입처(識入處)를 벗어나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존재 중에 제일인가?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무소유입처를 벗어나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존재를 일으킨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 비구에게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또한 그들과 같으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제가 방편을 써서 당신에게 묻겠으니 당신은 자세히 들으십시오. 당신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그 관찰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들은15)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생겨난 즐거움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생각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이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설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485. 우다이경(優陀夷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병사왕(甁沙王)16)은 존자 우다이(優陀夷)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이 때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느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우다이가 말하였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라고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두 가지 느낌인, 즐겁다는 느낌과 괴롭다는 느낌만 있어야 마땅합니다.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곧 적멸(寂滅)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말했지만, 우다이는 왕에게 세 가지 느낌이라는 것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존자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이 때 존자 우다이가 앞에 했던 말들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고 여쭈었다.
저는 세 가지 느낌이라고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저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함께 찾아와 세존께 그 뜻을 여쭙습니다. 정확히 몇 가지 느낌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우다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때로는 한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두 가지 느낌을 말하며, 세 가지·네 가지·다섯 가지·여섯 가지·열여덟 가지·서른여섯 가지 ……(내지)…… 백 여덟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한량없는 느낌을 말한다.
어떤 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인가?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느낌인가?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 가지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느낌인가?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느낌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에 얽매이는 느낌·색계(色界)에 얽매이는 느낌·무색계(無色界)에 얽매이는 느낌과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즐거움의 근본·기쁨의 근본·괴로움의 근본·근심의 근본·평정의 근본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안촉(眼觸)에서 생기는 느낌과 귀·코·혀·몸·뜻의 감촉에서 생기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열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6희행(憙行)을 따르고, 6우행(憂行)을 따르며, 6사행(思行)을 따르는 느낌이니, 이것이 열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여섯 가지 탐착(貪着)을 의지한 기쁨, 여섯 가지 탐착을 여읜 것을 의지한 기쁨, 여섯 가지 탐착을 의지한 근심, 여섯 가지 탐착 을 여읜 것을 의지한 근심, 여섯 가지 탐착을 의지한 평정, 여섯 가지 탐착 을 여읜 것을 의지한 평정이니, 이것을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백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서른여섯 가지 느낌에서 과거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과 미래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과 현재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을 합한 것이니, 이것을 백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한량없는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런 느낌 저런 느낌 등을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비구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이름으로 말하는 것, 이것을 한량없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우다이여, 나는 이와 같이 느낌의 참다운 뜻을 갖가지로 말하느니라. 세간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논쟁하고 서로 반대하며, 끝내 나의 법(法)과 율(律)에서 진실한 뜻을 얻지 못해 스스로 쉬지 못하느니라.
우다이여, 만일 내가 말한 이 갖가지 느낌의 이치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이해하고 안다면 논쟁이나 서로 반대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다툼도 이 법과 율로써 그쳐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다이여, 두 가지 느낌이 있으니, 탐욕의 느낌과 탐욕을 여읜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탐욕의 느낌이라고 하는가? 5욕(欲) 공덕(功德)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이니, 이것을 탐욕의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탐욕을 여읜 느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읜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탐욕을 여읜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중생들이 이 초선을 의지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즐거움이요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또 이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지니고 있던 각과 관을 여의고 안으로 깨끗해져서,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2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훌륭한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내지)……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까지 점점 더 훌륭한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이가 '오직 이 이치만이 있다. 나아가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 최고의 즐거움이요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또 이보다 더 뛰어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일체의 비상비비상입처를 뛰어넘어 생각[想]과 느낌[受]의 소멸을 몸으로 증득하여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저것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출가한 이학(異學)이 '사문 석종자(釋種子)는 (생각과 느낌의 소멸이 지극한 즐거움이다)라고 말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느낌 중 즐거움의 수효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느낌 중 즐거움의 수효는 이러이러하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다이여, 네 가지 즐거움이 있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을 여읜 즐거움·멀리 여읜 즐거움·적멸(寂滅)의 즐거움·보리(菩提)의 즐거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우다이와 병사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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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고려대장경에는 '문(問)'자로 되어있으나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문(聞)'자라야 옳다. '문(聞)'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16) Bimbisara이고 빈바사라왕(頻婆沙羅王)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으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486. 일법경(一法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정녕 싫어하여 여읠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17)이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거처18)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19)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7. 일법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바르게 싫어하여 여읠 마음을 내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이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가지 거주처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진정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괴로움을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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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7식처(識處)라고도 한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신이상이식주(身異想異識住)·신이상일식주(身異想一識住)·신일상이식주(身一想異識住)·신일상일식주(身一想一識住)·공무변처식주(空無邊處識住)·식무변처식주(識無邊處識住)·무소유처식주(無所有處識住)이다.
18) 9지(地) 혹은 9유(有)라 한다. 욕계(欲界)가 1지(地)이고 4색계와 4무색계가 각각 4지씩 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잡생희락지(雜生喜樂地)·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이다.
19) 10악업(惡業)을 말한다.
488. 일법경 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 관찰하며, 탐욕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한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거처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무상하다고 바르게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 관찰하며, 탐욕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한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9. 일법경 ④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이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9가지 거주처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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