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2. 22:52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ㅇ.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隨處作主)
임제 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불법은 애써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있지 않다.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으면 되는 것이다.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 쉰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이는 이 도리를 알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 밖을 향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고
고집스런 놈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진리의 드러남이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붙들리지 않는다.
설령 묵은 습기로 다섯 가지 무간지옥에 들어갈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저절로 해탈의 큰 바다로 변할 것이다.
요즈음 공부하는 이들은 모두들 법을 모른다.
마치 양이 코를 들이대어 닿는대로 물건을
모두 입 안으로 집어 넣는 것처럼
머슴과 주인을 가리지 못하며, 손님인지 주인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이 삿된 마음으로 불문(佛門)에 들어와서는
곳곳에서 이해득실과 시시비비의 번잡스러운 일에 곧바로 빠져버리니,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속된 사람(俗人)이다."
ㅇ. 참다운 출가인
" 무릇 출가한 사람은
모름지기 평상 그대로의 진정견해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처와 마구니를 가려내고 참됨과 거짓을 가려내며
범부와 성인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같이 가려낼 수 있다면 참된 출가인이다.
만약 부처와 마구니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그저 세속의 집에서 나와 또 다른 세속의 집으로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이는 업을 짓는 중생이지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지금 여기에 하나의 부처와 마구니가 한 몸이 되어
나눌 수 없는 것이 마치 물과 우유가 섞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하자.
거위의 왕은 우유만 먹는다.
눈 밝은 도인이라면 마구니와 부처를 함께 물리쳐 버린다.
그대들은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의 바다에서 떳다 잠겼다 할 것이다."
ㅇ. 만법은 생겨남이 없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 어떤 것이 부처이고 어떤 것이 마구니입니까?"
"그대의 의심하는 그 한 생각이 바로 마구니다.
그대가 만약 만법은 생겨남이 없고
마음은 허깨비 같아서 하나의 티끌도, 하나의 법도 없이
어딜가나 청정하면 이것이 부처다.
그러나 부처와 마구니란
깨끗함과 더러움의 두 가지 상대적인 경계일 뿐이다.
산승의 견해에 의한다면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옛도 없고 지금도 없으니,
이 뜻을 깨치는 자는 바로 깨쳐서 오랜 세월을 수행할 필요가 없다.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서
모든 시간 가운데 다른 특별한 법은 없다.
경전에서도 부처님이 '설사 이보다 더 나은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꿈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으니
산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전부다."
ㅇ. 바로 지금 눈앞에서 역력하게 듣고 있는 이 사람.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바로 지금 눈앞에서 호젓이 밝고 역력하게 듣고 있는 이 사람은
어디를 가나 막힘이 없고 시방세계를 꿰뚫어 삼계에 자유자재하다.
온갖 차별 경계에 들어가도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는다.
한 찰나 사이에 법계를 뚫고 들어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말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말하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말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를 말한다.
모든 곳을 향해 갖가지 국토를 다니며 중생들을 교화하지만
언제나 일념을 떠난 적이 없다.
가는 곳마다 청정하여 그 빛이 시방에 두루 비치니 만법이 한결같다."
ㅇ, 본래 아무런 일이 없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대장부라면 본래 아무런 일이 없는 줄을 오늘에야 알 것이다.
다만 그대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생각 생각 내달려 구하면서
자기 머리는 버리고 다른 머리를 찾느라 스스로 쉬지를 못하는 것이다.
저 대승의 으뜸 되는 원교보살, 돈교보살들조차도
법계에 들어가 몸을 나타내어 정토에 있으면서
범부를 싫어하고 성인을 좋아한다.
이런 무리는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쉬지 못하고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종의 견해는 절대 그렇지 않으니,
바로 지금 그대로 깨달음을 이룰 뿐(直是現今),
달리 다른 시절이란 없다(更無時節),
산승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그때그때 병을 따라 약을 쓰는데 있을 뿐,
실다운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와 같이 알기만 한다면 참된 출가이며,
하루에 만 량의 황금을 쓸수 있을 것이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그대들은 제방의 노사들에게 인가를 받아서는
'나는 선을 안다. 도를 안다.' 하고 지껄이지 마라.
설법이 마치 강물이 흐르듯 말솜씨가 뛰어나더라도
이는 모두 지옥 업을 짓는 일이다.
만약 참되고 바르게 도를 배우는 이라면
세간의 괴실을 책망하지 않고 간절히 진정견해를 구하려고 노력할 뿐이니,
진정견해가 원만하고 명백하게 이루어지면
비로소 남김없이 깨달아 마쳤다고 하리라."
ㅇ. 진정견해란 무엇인가?
한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진정견해(眞正見解)입니까?"
"그대들은 언제 어디서나 범부의 경지에도 들어가고,
성인의 경지에도 들어가며, 더러운 번뇌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깨끗한 열반의 세계에도 들어간다.
모든 부처님 국토에도 들어가고 미륵의 누각에도 들어가며
비로자나불의 세계에도 들어가서 곳곳마다 국토를 나타내며
성(成), 주(住), 괴(壞), 공(空)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여
큰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드셨지만,
가고 오는 모양을 볼 수가 없다.
그자리에서는 생사를 찾아도 마침내 찾을 수가 없다.
곧바로 무생법계(無生法界)에 들어가 곳곳에서 국토를 노닌다.
화장세계에도 들어가, 모든 법이 다 텅 비어 있음을 통찰하니
실다운 법이 도무지 없다.
오직 법을 듣는 사람,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이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의지함이 없는 데서 생겨난다.
만약 의지함이 없음을 깨닫는다면 부처도 얻을 것이 없다.
만약 이와같이 보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견해이다."
ㅇ. 찾을수록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명칭과 글귀에 집착하여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이름에 구애되므로
도를 보는 안목이 막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저 십이분교는 모두가
언어문자로 이치를 드러내는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명칭이나 글귀에서 알음알이를 낸다.
이것은 모두 언어문자에 의지하는 것이라,
인과에 떨어지며 삼계에서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다.
그대들이 나고 죽음과 가고 머무름을 옷을 입고 벗듯이
벗어나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에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뿌리도 없고 바탕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다(無形無相 無根 無本 無住處).
활발발하게 약동하고 있으니,
수만가지 방편의 시설은 작용하되 그 자취가 없다.
그러므로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할수록 더욱 어긋난다.
이를 일러 비밀(秘密)이러고 부른다."
ㅇ. 꿈같고 허깨비같은 몸뚱이를 잘못 알지 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그대들은 이 꿈같고 허깨비같은 몸뚱이를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집착하지 마라.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곧 무상(無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 해탈하겠느냐?
그저 밥 한술 찾아 먹고 누더기를 꿰매어 입으며 시간을 보내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 깨치는 것이다.
그럭저럭 즐거운 일이나 쫒아 지내지 마라. 시간을 아껴라.
순간순간 무상하여 죽음에 이르는 길이니
거칠게는 지수화풍이 흩어지는 것이고
미세하게는 생주이멸의 네 가지 변화에 쫓기고 있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무상(無相)의 경계를 잘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임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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