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스님 경책(6)

2020. 6. 26. 21:47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ㅇ. 

한 스님이 임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삼안 국토입니까?"

"나는 그대들과 함께 청정하고 미묘한 국토에 들어가 

청정한 옷을 입고 법신불로서 설법한다.

또 차별없는 국토에 들어가 차별없는 옷을 입고 보신불로서 설법한다.

또 해탈국토에 들어가 광명의 옷을 입고 화신불로서 설법한다.

이 삼안 국토란 모두가 다양한 인연이 만나 이루어진 경계일 뿐이다. 

교학자들은 법신을 근본으로 하고 보신과 화신을 그 작용이라 하지만,

산승이 보기에는 법신도 법을 설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법성신(法性身)의 구별은 현상에 의지해 세운 것이고,

법성토(法性土)란 그 법성의 체에 의지해 설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법성의 몸(법성신)과 법성의 땅(법성토)은 임시적인 법이고

임시로 만든 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빈주먹에 누런 잎사귀를 쥐고 황금이라고 속여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다. 

꽃가시와 마른 뼈다귀에서 무슨 국물을 찾겠는가?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고, 마음 안에도 얻을 게 없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ㅇ.

그대들이 제방에서 닦을 것도 있고 깨칠 것도 있다고 말하는데

착각하지 마라.

설령 닦아서 얻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생사윤회의 업이다.

그대들은 육도만행을 빠짐없이 닦는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두 업을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 것도 지옥 업을 짓는 일이고

보살을 구하는 것도 업을 짓는 일이며

경문을 독송하고 경전을 읽는 것 역시 업을 짓는 일이다. 

부처와 조사는 바로 일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부처와 조사에게는 미혹함이 있고 조작이 있는 유루무위(有漏有爲)와

조작이 없고 미혹함이 없는 무루무위(無漏無爲)가 

다 청정한 업이 된다.

 

ㅇ. 

어떤 눈 먼 중들은 배불리 먹고 나서 곧 좌선하거나 관심(觀心)을 행하며

망념으로 인한 번뇌를 꽉 붙잡아 함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또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곳을 찾는데, 이는 외도의 법이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만약 마음을 안주시켜 고요한 상태를 살펴보고,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대상 경계를 비춰보며, 

마음을 가다듬어 안에서 깨달음을 증득하고자 하며,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선정에 들려 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조작하는 짓이다.'라고 하셨다. 

 

ㅇ.

그대들은 지금 이와 같이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 그대인데

이 사람을 어떻게 닦겠으며 어떻게 깨닫게 하겠으며

어떻게 장엄하려 하는가 !

그 사람은 닦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장엄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만약 그 사람을 장엄할 수 있다면 일체의 모든 물건도 

다 장엄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들은 잘못 알지 마라.

 

ㅇ. 

도를 배우는 법들이여 !

그대들은 곳곳에서 노스님들이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그것은 참된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이 선지식은 불가사의 하지만, 나는 범부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감히 훌륭하신 노스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 눈멀고 어리석은 사람아 !

그대들의 일생을 이런 비굴한 견해에 사로잡혀

멀쩡한 두 눈을 못 쓰게 만들고 있다.

추워서 벌벌 떨면서 입도 떼지 못하는 꼴이 

마치 빙판 위를 걸어가는 당나귀의 새끼 같구나.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는 감히 선지식을 비방하지 못한다. 

구업을 짓는 것이 두렵다'라고 한다,

 

ㅇ.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무릇 큰 선지식이라야 부처와 조사를 비방할 수 있고,

천하의 선지식들을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율,론 삼장의 가르침을 배척할 수도 있으며,

우왕좌왕 몰려 다니는 소견머리 없는 어린애 같은 무리들을 꾸짖을 수 있다. 

역순(逆順) 경계를 활용해 여러가지 방편으로 시험하여

참된 수행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12년 동안 한 개 업의 자성을 찾아 보았지만

겨자씨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ㅇ. 

새색시 같은 선사라면

절에서 쫒겨나 밥을 얻어먹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불안해 한다. 

예로부터 뛰어난 선의 거장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믿지 않아 쫓겨났다. 

그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가 귀한 사람인 줄 알았다.

가는 곳마다 비위를 마춰 사람들이 인정해 준다면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자후 한 소리에 여우의 머리가 깨진다'고 했던 것이다. 

 

                                                 -임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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