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4. 10:16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제1장 사마타 송(止)
[본문]
흡흡하게 마음을 쓸 때에는 흡흡하게 무심으로 쓰며,
무심으로 흡흡하게 쓰면 항상 쓰되 흡흡함도 없다.
恰恰用心時 恰恰無心用 無心恰恰用 常用恰恰無
[해설]-한자경 교수
흡흡함은 마음을 쓰는 모양인데, '흡(恰)'이 심(心)과 합(合)으로 파자 되듯이 '마음과 합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에 대상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본래의 마음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거기 머물러서 마음과 합치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대상이 주어져 마음을 쓸 때에도 대상에 이끌려 망정(妄情)을 일으키거나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 본래의 마음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분별심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곧 흡흡하게 무심으로 마음을 쓰는 '무심법'에 해당한다.
무심에 머물러 무심으로 마음을 쓰면 결국 마음 쓰는 모습인 흡흡함 자체도 없게 되므로 결국은 '흡흡함도 없다'고 말한다.
행정은 흡흡한 마음 씀을 '적성등지(寂惺等持)'의 무심(無心)으로 설명한다.
"마음을 조절하는 법은 혼침과 들뜸 둘을 버리는 것이다. 근(根)과 진(塵)으로 마음을 쓸 때에 이르러 성성과 적적을 함께 유동하게 하며 치우쳐 취하지 않는다. 즉 근과 경으로 인해 마음이 움직일 때 흡흡한 마음은 대산을 분별하지 않고 고요히 머물러 적적(寂寂)하되 그러면서도 마음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 성성(惺惺)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적적으로써 들뜸을 버리고, 성성으로써 혼침을 버리는 것이 적적성성인데, 흡흡한 마음은 바로 이와 같은 고요하게 깨어 있는 마음, 적적성성의 마음을 말한다.
함허는 흡흡을 이렇게 설명한다.
"흡흡은 마음을 쓰는 모습으로, 눈이 보고 귀가 들으며 몸이 느끼고 의가 생각할 때 근(根)과 진(塵)이 상대하는 모습니다. 흡흡한 마음 씀이 세상 만물을 떠난 것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하여 만물을 보고 듣는 상태임을 말한다.
다만 일상의 대립 분별적 관계와는 다른 관계이어야 할 것이다.
이어 본문의 말 "(A) 흡흡하게 마음을 쓸 때에는 흡흡하게 무심으로 쓰며, (B) 무심으로 흡흡하게 쓰면 항상 쓰되 흡흡함도 없다" 에 대해 "앞의 두 구(A) 자세한 말(曲談)은 이름과 상으로 피로하지만 곧바른 말(直言)은 번다한 무거움이 없다는 것으로 다음의 '무심'을 말한다.
뒤의 두구(B)는 지금 말한 무심처가 유심과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치연한 작용'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앞의 구(A)는 이름과 형상을 좇는 복잡한 말이 아니라 단박한 말이 더 무심에 가깝다는 것을 밝힌 것이고,
뒤의 구(B)는 그러한 무심의 마음 씀이 바로 제대로의 마음 씀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라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흡흡한 마음 씀이 어떤 마음 씀인지를 논한다.
1. 수행방식 : 그치기(止)
1) 생각을 멈추기(息念)와 대상을 잊기(息塵)
(1) 식념(息念)과 망진(忘塵)의 순환
[본문]
① 무릇 생각(念)은 대상(塵)을 잊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②대상은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잊히지 않는다.
①夫念非忘塵而不기息 ②塵非息念而不忘
[해설]-한자경 교수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일상적 마음활동으로부터 어떻게 흡흡한 마음활동, 무심의 마음 씀으로 나아가는지를 설명한다. 울이ㅢ 일상적 마음횔동은 주객분열 위에서 성립한다.
주관인 내가 객관인 세계를 반연하는데, 능연(能緣)의 나와 소연(所緣)의 세계는 서로 다른 둘로 간주된다.
나와 세계, 주와 객, 능과 소의 이원성이 전제되는 것이다.
사물은 나 아닌 것으로서 주관인 나에게 객관대상으로 등장하며, 나는 그 나 아닌 것을 반연하여 대상으로 인식한다. 대상이 있어야지 그것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활동이 있고, 인식활동이 있어야지 그것을 통해 대상이 확인된다. 대상을 통해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을 통해 대상이 확인된다. 대상이 있으면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대상이 있다. 즉 ①진이면 념이고(진->념) ② 념이면 진이더(념->진), 이것이 우리의 일상적 마음 씀의 차원이다.
반면 흡흡한 마음 씀은 나의 세계를 불이로 아는 마음 활동이다.
즉 주객분별, 능소분별을 넘어선 차원에서 일어나는 마음활동이다.
그러자면 나와 세계가 능과 소, 주와 객의 이원성으로 분리되지 않아야 하고, 결국 능연으로서의 념과 소연으로서의 진, 능연식과 소연경이 함께 사라져야 한다.
념도 멈추어야 하고, 진도 잊어야한다. 즉 식념과 망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주객분별의 차원에서 주객무분별의 경식쌍망(境識雙忘)의 차원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잇는가?
여기에서는 '① 념은 진을 잊어야 멈추고 ②진은 념을 멈추어야 잊는다'라고 말한다.
즉 '①망진이어야 식념이고 (망진->식념) ② 식념이어야 망진이다(식념->망진)'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식념과 망진이 서로 맞물려 있다면, 과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식념을 하자면 우선 망진이어야 하고, 망진을 하자면 우선 식념이어야 한다.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듯 원을 그리고 있으면, 그 원을 따라가면서는 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념과 진, 식과 경, 주와 객이 함께 사라지는 념진쌍망(念塵雙忘)의 일이 일어나자면, 그 일은 원을 따라가는 시간적 흐름 속에서 점차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한 찰나에 동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분별적 마음에서 불이의 마음으로의 이행은 일상의 논리를 따라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한 찰나에 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차원의 순간이동이어야 하는 것이다.
행정은 "진이 있으면 념이 있다. "고 한다. 진이 있으면 념이 있으니, 결국 진이 없어야 념이 없다는 것, 즉 망진이어야 식념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①"망진->식념"의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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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법문은 한자경 교수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에서, 지(止)수행, 관(觀) 수행, 중도(中道) 부분만 발췌해서
제가 앞서 공부한 산종영가집을 다시 복습도 할겸, 또한 겸사로 다른 분들과 함께 정보공유하기 위해서 브로그에 포스팅해 봅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연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건이 허락하는한은 이 수숭한 불교수행자료를 여러분함께 브로그와 카폐에 게재해서 함께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영가현각선사는 선종6조 혜능대사의 수제자라고 하며, 혜능처소에서 하룻밤만 묵고 깨달았다고 해서 일숙각(一宿覺)이라는 별명을 얻었답니다. 천태지관에 정통하고 유마경을 보고 통달했으며,북종선의 신수선사에게 선(禪)을 배워서 선종수행법에도 밝다고 합니다. 유명한 저서로는 <증도가>가 있고, 이 <선종영가집)도 선종게통에서는 수숭한 교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역자인 한자경 교수는 이와여자대학교 철학과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유식불교학)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이화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서양 초월심리학과 불교 유식학에 조예가 밝으신분 같습니다.저서로는 칸트초월철학과 불교 유식학에 관련된 수많은 저서가 현재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여유있는 분들은 서점에서 이 <선종영가집>을 직접 구입해서 여유있고 심도있게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전에 읽어 본 적이 있는 이 책이지만, 다시 한번 복습하면서 머리 속에서 세밀하게 재정리해 보기 위해서, 여기 브로그에 천천히 게재해 보는 것입니다.
<교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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