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의 금강경 강의(10)

2020. 2. 4. 10:23성인들 가르침/금강경


莊嚴淨土分(장엄정토분) 第十(제십)


[본문]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하사대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如來(여래) 昔在燃燈佛所(석재연등불소)하여

於法有所得不(어법유소득불)아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이시어 如來在燃燈佛所(여래재연등불소)하사

於法(어법)에 實無所得(실무소득)이시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사대,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엣적에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에 얻은 바가 있다고 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연등불소에서 법에 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해설]

연등불은 석가모니불을 인가(수기)하신 먼저 부처님이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묻기를, 여래, 내가 연등불소에서 실로 얻은 법이 없다고 대답하였으니, 이 법은 이름과 상이 끊어지고, 주고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菩薩(보살)이 莊嚴佛土不(장엄불토부)아 不也(불야)니다.

世尊(세존)이시어 何以故(하이고)로 莊嚴佛土者(장엄불토자)는 卽非莊嚴(즉비장엄)일새

是名莊嚴(시명장엄)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냐, 보살이 불토를 단장하느냐, 아니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불토를 단장한다는 것은, 곧 단장이 못되고, 이 이름이 장엄이니라.

[해설]

상이 있는 장엄은 상으로서 하려니와, 상이 없는 장엄은 깨끗한 마음이 장엄인지라, 함이 없이 하는 것이므로,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이 아니라, 거짓 이름하여 장엄이라고, 수보리는 말하였다.

[본문]

是故(시고)로 須菩提(수보리)야 諸菩薩摩訶薩(제보살마하살)이 應如是生淸淨心(응여시생청정심)이나

應住色生心(응주색생심)하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불응주성향미척법생심)이니 應無所住(응무소주)하여

而生其心(이생기심)이니라.

이런고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 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또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법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낼 것이요, 응당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해설]

부처님의 천 가지 만 가지 말씀이 그 뜻이 다른데 있지 않고, 오직, 중생을 건지는데에 있다.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중생의 제 마음을 깨치도록 함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라. 마음을 밝혀라. 마음을 깨쳐라. 마음을 닦아라, 하시고 또 그 마음의 항복받는 법, 주하는 법, 가지는 법, 쓰는 법, 행하는 법, 등을 설하신 것이다.

이 경 전부에 뜻이 이것이요, 천경만론(千經萬論)의 뜻이 이것이니,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자기 마음에서 배우고, 구하고, 깨치고, 행하고, 할 것이요, 다른데서 구하지 말라. 그러면 글이나 말을 의지하지 않고, 소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대문에서  <응당 주한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하신 말씀도, 마음의 주하는 법과 쓰는 법, 행하는 법을 가르치신 말씀이시니, 마음은 본래 주소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여 보라. 마음의 주소가 어디 인가.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처음 만나게 되면, 수인사를 하게 되는데, 먼저 성명을 알린 다음에, 그 주소를 묻고 대답하게 된다. 외국이면 어느 나라에 사느냐고 묻고, 우리나라 사람끼리면 당신은 어느 도 어느 군 어느 면 어느 마을에 사느냐고 묻고, 나는 또 이와 같이 어데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자기의 몸이 있는 주소를 말함이요, 마음을 지적한 말은 못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당신 마음의 주소는 어디냐고 물으면, 이 말을 대답할 사람은 적다. 어찌하여 그런고 하면, 자기 마음의 주소는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형상이 있는 자기 육신과는 달라 몸은 자기 집에 있으되, 마음은 자기 집에 있지 않고, 한 시간에도 몇천만 군데를 돌아다니게 된다. 산이건, 들이건, 하늘이건,땅 속이건, 평지이건, 가시 밭이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마음은 한 때도 쉴새가 없이 바쁘다.

이리하여 마음은 일정한 주소가 없다. 주소가 없으므로 육신의 경계를 따라, 찰라 찰라의 주소(相에 着하는 것)를 자기 주소(마음)인양, 알아, 내집이라는 애착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 주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데로 옮겨, 변하고 변하고 하므로 마음은 한시라도 내 집이라고, 다리 뻗고, 잊어버리고, 편안히 앉아 쉴곳이 없다.

이 마음의 신세야 말로,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웁고 불안할 것인가. 제 집하나 없이 남의 집(경계)으로만 돌아다니는, 팔자 사나운 마음인지라, 자연히 불안과 공포와 전율(戰慄)과 저주와 고독과 비관과 타락과 악의가 아니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이 삼독심(탐심,진심,치심)이 되어, 가지가지의 일을 저질르는 것이니, 죽이고, 죽고, 속이고, 시새우고, 음해하고, 방탕하고, 모욕하고, 경멸하여, 이사회에서 날로 일어나는, 살인,자살,강도, 절도,강간,사기,협잡, 방화, 약탈 등, 무시무시한 죄업들이다.

이리하여 사회는 날로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사람은 점점 짐승으로 화하게 되나니, 마음이 있는 자 어찌 이것을 무심히 보고 말수 있을 것인가. 이리하여 마음의 주소인, 집을 하나 만들어, 정하여 주고, 잘 편히 쉬도록 하여 주자는 것이, 먼저 깨달으신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이요, 또 이 경의 뜻이요, 천경만론(千經萬論)의 뜻인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이 마음의 주소가 될 집을 정하여 줄가. 독자여 !

그리 어렵지 않다. 주(住)가 없는 마음이니, 주가 없는 그곳에다 자리를 잡는 것이 주소가 되고, 정처가 될 것이 아닌가. 주(住)가 없는 지라, 주에도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상(相)에도 주하지 않고, 상 없는 데도 주하지 않을 것이며, 법에도 주하지 않을 것이니, 무주에 주하는 마음의 주처일 것이다.

이 주처를 새로 부처가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본 주소가 그러한 것이거늘, 우리들이 번뇌망상으로 인하여 ,자기의 본주소를 알지 못하고, 보고, 듣고,깨닫고, 아는 경계를 따라, 간데마다 자기 집을 삼고, 닥치는 대로 실상을 삼아, 착(着)하는 병을 이루게 되나니, 모두가 병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큰 것은 커서 병이요, 작은 것은 작아서 병이니, 큰 것은 작은데 쓸수가 없고 작은 것은 큰데 쓸수가 없는 까닭이요, 긴 것은 길어서 병이요, 짧은 것은 짧아서 병이니, 긴것은 짧게 쓸수가 없고, 짧은 것은 길게 쓸 수가 없는 까닭이요, 모난 것은 모나서 병이요, 둥근 것은 둥굴어서 병이니, 모난 것은 둥굴게 쓸 수가 없고, 둥군 것은 모난데 쓸수가 없는 까닭이요, 푸른 것은 푸르러 병이요, 붉은 것은 붉어서 병이니, 푸른놈은 붉게 쓸수가 없고, 붉은 놈은 푸르게 쓸 수가 없는 , 까닭이요, 강한 놈은 강해서 병이요, 약한 놈은 약해서 병이니, 강한 놈은 약하게 쓸 수가 없고, 약한 것은 강한 데 쓸수가 없는 까닭이요, 있는 놈은 있어서 병이요, 없는 놈은 없어서 병이니 있는 놈은 있기에 괴롭고, 없는 놈은 없어서 괴로운 까닭이요, 부처는 부처이시라 걱정을 하고, 중생은 중생이어서 걱정이 있나니, 일체 제법이 모두 병이다.

그러면 이 병은 어떻게 하여야 치료를 할 것인가. 독자여 ! 걱정하지 말라.

바로 네게 좋은 약이 있으니, 다른 데서 구하지 말라. 크도 작도 않고, 길고 짧지도 않고, 모나거나 둥굴지도 않고, 푸르지도 붉지도 않고, 강하고 약하지도 않고, 있지도 없지도 않고, 부처도 중생도 아닌, 한 물건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좋은 약이요, 이 약이 바로 독자 여러분들의 본 마음(일체 상을 여인 깨끗한 마음)인 것이다.

영양존자가 조주에게 묻기를, 한 물건도 잡아오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한즉 조주는 놓아버리라고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다시 묻기를, 한 물건도 갖지 않았거니 무엇을 놓으라 하십니까? 하였더니, 조주는 놓지 않으려거든 짊어지고 가라 하였다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청정본심에는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 벌써 한 물건을 가져온 것이 되고만 것이다. 아무 티하나 없는 우리들 본심에는 없다는 것도, 있는 것이 되고 만다.

독자여 !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죽은 재와 같이 되자는 말인가. 마른 나무가된다는 말인가. 굳은 바위가 되어버린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살길을 찾아야 한다. 도리켜 생각해 보라.

주(住)가 없고 정함이 없는 우리 마음(본심)이기 때문에,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되나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지라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는 것이요, 길고 짧은 것이 아니라, 길 때는 길고, 짧은 때는 짧은 것이요, 모나고 둥군 것이 아니라, 모나게 쓰고, 둥굴게도 쓰는 것이요, 푸르고 붉은 것이 아니라. 푸르게도 만들고, 붉게도 만드는 것이요, 강하고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할 때는 강하고, 약할 때는 약하게 되는 것이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은지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이요, 부처도 이니고 중생도 아닌지라,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나니, 깰 것이 없지만은 께게 하고, 배울 것이 없지만은 배우게 하고, 얻을 것이 없지마는 얻을 것 없는 것을, 깨쳐 얻도록 함이, 부처나 조사들의 자비하신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이므로, 또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임을, 깨어 얻은 사람이라면, 천차 만별의 경계가 어찌 딴 것이리요, 산도 내것, 물도 내것, 하늘도 내것, 땅도 내것, 미운 것도 내것, 원수도 내것, 더러운 것도 내것, 깨끗한 것도 내것, 원숭이 토끼 여우 사슴 꾀고리 제비 개구리 개미 등도 내것이요, 지옥 천당 아수라 부처 중생들이 모두 내것이요, 딴 것이 아닌 것이니, 나 밖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 <나>는 우주전체적인 나인고로 나 아닌 상대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상대물이 없으므로, 아상, 인상,중생상, 수자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아상, 인상 중생상,수자상도  딴 것이 아니요, 내 것이니, 아상도 좋고, 인상도 좋고, 중생상도 좋고, 수자상도 좋다. 나는 여기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강의를 이만 멈추고, 독자 여러분의 성불을 기도하겠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譬如有人(비여유인)이 身如須彌山王(신여수미산왕)하면 於意云何(어의운하)오 是身(시신)이 爲大不(위대부)아 須菩提言(수보리언)하되 甚大(심대)니이다. 世尊(세존)이시어 何以故(하이고)오 佛說非身(불설비신)을 是名大身(시명대신)이니이다.

수보리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몸이 큰 수미산왕하다면, 네 뜻이 어떠하냐. 이 몸이 크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 여쭈되,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어,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몸 아닌 것을 말씀하시어, 이 이름이 큰 몸이라 하셨나이다.

[해설]

수미산은 산 중에 제일 높은 산이어서, 묘고산이라는 뜻이니, 그 높이와 넓이가 삼백 삽십육만리나 되는 가장 큰 산이라 한다. 이 큰 것을 비유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의 몸이 이만큼 크다 하면, 이몸을 크다 하겠는가, 하고 수보리에게 물음심에, 수보리는 부처님의 물으시는 뜻을 알고, 아무리 큰 몸일지라도, 이것은 상이 있는 몸이므로, 제한 된 큰 몸에 불과한 것이옵고, 참으로 큰 몸은 상이 없는, 몸 아닌 몸이라야, 큰 몸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대답 하였습니다. 수미산이 크다 해도, 하늘 아래 있고, 하늘이 크다 해도, 코구멍에 넣으면 한 미진(微塵)에 불과하다.

독자여, 묻노니 코구멍이 어디 있는고.

                                                        -해안 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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