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의 금강경강의(7)

2019. 12. 26. 10:17성인들 가르침/금강경


無得無說分(무득무설분) 第七(제칠)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아

如來有所說法耶(여래유소설법야)아 須菩提言(수보리언)하되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컨댄

無所有定法(무소유정법)을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며 亦無有定法(역무유정법)을

如來可說(여래가설)이니​

수보리야 네 뜻은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냐, 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 말씀 여쭈되, 내가 부처님의 말씀하신바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정한 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옵고, 역시 정한 법 없는 것을 여래께서 가히 설하셨나이다.

[해설]​

나는 저 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최고진리인 가장 잘 사는 법​이라고 말하였다. 잘 살고저 하는 사람은, 먼저 잘 사는 법을 배워 얻어야 할 것이니, 잘 사는 법이란 무엇인가, 이 마음을 모든 상에 착하지 아니함이 가장 잘 사는 법이다. 어째서 그러하냐, 상에 착하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니, 자유가 없는 것은 잘 사는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윗 대문에서 법과 비법을 다 버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여래가 얻은 법은 법이 아니고 무엇일가 하고, 의심할가 염려되어, 이 대문에 와서는 수보리를 불러, <너는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느냐>고 물으신 것이니, 수보리의 대답은 이러하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무엇이 잘 사는 법이라고 이름 지을 정해진 법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 무슨 법을 설하신 일정한 법도 없읍니다>이렇게 말하였다.

독자여 ! 이에 이르러 절망하지 말라. 잘 사는 법이라고 지정할 무슨 법이 없으며, 또 어떻한 법을 정하여 말씀하신 것이 없다 하니, 잘 살기를 구하는 자, 무엇을 의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내지 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곧, 마음 법이다. 마음 법은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다. 비유컨데 어떤 그림 그리는 화공이, 무색(無色) 종이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범을 그리면 범이 되고, 토끼를 그리면 토끼, 개를 그리면 개, 사람을 그리면 사람, 부처를 그리면 부처, 지옥을 그리면 지옥, 천당을 그리면 천당, 푸른 색을 칠하면 푸르게, 누런색을 칠하면 누렇게, 붉은 색을 칠하면 붉게, 흰색을 칠하면 희게, 검정색을 칠하면 검정색이 되는 것과 같이, 모두가 실다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아무 티하나 없는 우리 본심 위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동이니, 서이니, 남이니 북이니, 선이니 악이니, 괴로우니 즐거우니, 죄이니 복이니 하는 등, 천차만별의 종종 상(相)이 생기게 되나. 한 생각만 쉬고 보면, 이러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인 것이니, 본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열반경지(涅槃境地)에 돌아가는 것이다.

이 자리는 한 물건도 없는지라 얻을 것이 없고 설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얻을 것 없는 것을 얻는 것이 아뇩보리(阿耨菩提)요, 설할 것 없는 법을 설하신 것이 어뇩보리인 것이다.

[본문]

何以故(하이고)오 如來所說法(여래소설법)은 皆不可取(개불가취)며 不可說(불가설)이며 非法(비법)이며 非非法(비비법)이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一切賢聖(일체현성)이 皆以無爲法(개이무위법)으로 而有差別(이유차별)일새니라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가히 취할 수도 없으며, 가히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며, 법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일체 현성이 다 무위법(함이 없는 법)하나로써 차별이 있는 까닭입니다.

[해설]

여래의 설하신 법은 일정한 법이 없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마음법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법을 가지고 어느 때는 크다고 말씀하시고, 어느 때는 작다고 말씀하시고, 어느 때는 아무 것도 없다 하시고, 어떤 때는 우주에 가득 차 있다고 말씀 하시고, 어떤 때는 법이라 하시고, 어느 때는 법이 아니라고 하시고, 어느 때는 하나도 취하지 말라 하시고, 어느 때는 하나도 버리지 말라 하시고, 어느 때는 상에 착하지 말라 하시고, 어느 때는 상이 아니라 하시고, 어느 때는 바라밀(波羅密, 저 언덕에 이른다)을 설하시고, 어느 때는 바라밀이 바라밀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어느 일정한 법이 없으니, 어떻게 취할 수가 없고, 어떻게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소이인가 하면 일체 성현들이 다 이 법(無爲法) 하나로써 중생을 제도하게 되므로, 소승(小乘)을 대하면 소승법을 설하고, 대승(大乘)을 대하면 대승법을 설하고, 외도를 만나면 외도법을 설하고, 이귀를 만나면 아귀도를 설하고, 축생을 만나면 축생도를 설하게 되나니,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무량 무수한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각각 차별이 있게 설하신 법이기 때문이다.

                                                         - 해안선사 강의<금강반야바라밀다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