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그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2020. 1. 24. 09:49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의식이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 때 그것이 참된 지(知)입니다.

의식은 형태가 없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의식을 판명할 수 있습니까?

의식은 그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압니까?

만일 의식이 그 자신을 몸과 동일시한다면, 그 정체성은 시간이 가면서 지속적으로 변합니다.


의식은 지(知)를 가지고 있지만, 그 자신에 대한 지(知)는 아닙니다.

의식이 몸 형상을 옆으로 치워두고 그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의식이 그 자신에 대해 명상하면 의식의 자아의식이 사라지는데,

그것은 의식이 그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삼매라고 부릅니다.

의식은 결코 한정되어 있지 않고 무소부재합니다.

그 살아있는 형상은 개미이거나 벌레일 수도 있습니다.

의식은 그 몸 안에도 있고, 바깥의 전체 공간 안에도 있습니다.

의식이 자신을 안 뒤에야 이것이 이해됩니다.

모든 이름들은 의식 그 자체에 주어집니다.

다만 다양한 몸 형상들 때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시간의 주시자이지 시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전능한 신적 의식을 한 개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의식이 자신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의식인데도, 그것을 음식일 뿐인 몸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생기가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반면, 의식은 비행위자입니다.

일체에 대한 주시하기가 의식에게 일어납니다.

브라마,비슈누,마헤쉬(시바)가 의식의 이름인데,

그것은 탄생과 죽음이 없습니다.

만일 탄생과 죽음이 하나의 실제라면,

여러분은 그와 관련된 수천 가지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탄생과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고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의식이 자신의 자유로운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분별입니다.

의식은 해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의식은 이미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느낌'에 대한 확신을 마하비슈누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그 무엇도 잊혀질 수 있지만, 잊혀진 것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그와 같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유롭고 모든 것에 편재하므로, 그것에 대해 명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의식을 오롯한 마음으로 숭배하십시오,.

며칠 간은 불편한 느낌을 들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에 그냥 순복하십시오,

실은 그것이 신이고, 그가 여러분을 돌볼 것입니다.

참스승 안에는 자아의식이 없습니다.

자아의식에서는 우리의 존재성만 출현하며, 그와 함께 이 모든 존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참되고 영원한 것 안에서 깨어 있을 때는 여러분에게 어떤 경험도 없습니다.

진아 안에는 자아의식도 없고, 우리가 의식할 남들도 없습니다.

무지로 인해 (대상들에 대한) 매혹이 있고 여러분이 모든 활동을 하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살피고 보존하고 싶은 것으로서 여러분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적인 공부의 핵심 혹은 총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발견하든 그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사뜨와로 인해 여러분이 자아를 의식하게 됩니다.

설탕에 단맛이 있듯이, 사뜨와 안에서 비롯되는 단어들이 마음이라고 블리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의식은 니루구나(Nirguna,無屬性))에서 비롯되는데,

의식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니루구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존재하고 싶겠지만, 어떤 형상으로 남아 있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지각성은 궁극의 아는 자가 아니고,

지각성 이전인 것이 진정한 아는 자입니다.

사뜨와 성질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성질로 인한 창조계를 누가 물려받겠습니까?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법문집 <자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