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일어나자 마자 즉시 알아치려라

2018. 8. 30. 20:23성인들 가르침/기타 불교관련글



마음은 보통 두 가지 상태이다.

평온한 상태와 출렁이는 상태,

마음은 때로 차분하여 마치 잔잔한 수면처럼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다.

이것이 마음의 평온한 상태다. 이 상태는 보통 오래가지 않는다.

생각들이 떠오르고 출렁인다.

실제로 생각의 출렁임은 일견 평온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 같지만,

이 두 상태는 본성상 아무 차이가 없다.

두 상태 모두 그 자체로서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평온도 출렁임도 마음의 두 면모일 뿐이다.

대부분 우리는 자신의 마음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마음이 차분한지 출렁이는지 그것도 잘 살피지 않는다.

명상 시간에 앉아서 문득 장 보러 가는 생각을 한다고 치자.

이 생각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저절로 스러지게 놓아두면,

생각은 거기서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반면 그 생각을 알아차리지 않고 점점 더 커지게 놓아두면 그 생각은 두 번째 생각,

예컨대 명상 수행을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을 낳고 이어 세번째 생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장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낳는다.

머지않아 또 다른 생각들이 당신 마음에 마구 떠오를 것이다.

이건 어디서 살까, 저건 어떻게 팔까, 이런 생각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명상에서 이미 아주 멀어진 셈이다 !

생각들이 하나둘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목적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의 목적은 생각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단순함과 생생함 속에 머무르면 그럴 수 있다.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도록 가만히 두고 생각을 조장하지도 생각에 집착하지도 않으면 그럴 수 있다.

생각의 움직임을 더 이상 부추기지 않으면 생각은 저절로 스러져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마음에 무엇을 자꾸 구축하여 평온한 상태를 바꾸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다보면

애쓰지 않고도 마음을 자연스러운 평온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때로 아주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어닥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생각이 오게끔 놓아두고 그 생각들 속에서 불변인 것,

즉 마음의 근본성품을 관찰하라.

또 때로는 밀어닥치는 생각의 흐름을 돌연 끊고 그렇게 적나나하게 드러난 깨어 있는 의식을 지켜보라.

한 생각이 나타나자 마자 그 공한 본성을 알아차리라.

그 생각은 즉시 두 번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을 것이며 그리하여 환상의 사슬은 끊어질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렇다 하여 마음의 자연스러운 활동을 없애버리거나

떠오르는 생각마다 특별한 해독제를 써서 끊어버리려 애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설령 그런 시도를 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단지 마음의 공성을 알아차리고 생각들이 편안히 이완된 마음 속에서 맑아지게 두어

마음의 원초적이고 불변하는 본성이 뚜렷하고 안정적으로 다시 나타나게 하면 된다.

습관의 힘에 의해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숱한 생각이 난무하는 극장이 된다.

이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과거로 사라지며 현재의 생각에 자리를 내어 주는 것 같고,

또 현재의 생각들은 미래의 생각들을 낳는다.

생각 하나하나가 다음 생각을 강화하다 보니 시간이 가면서 이어지는 생각들의 힘은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이처럼 연속되는 덧없는 생각들에 우리는 의식 혹은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쭉 이어진 진주 구슬에 목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각들은 의식의 흐름을 이루고,

이런 의식이 여러 생의 대양에 에너지를 댄다.

우리는 단지 깊은 생각이 부족하여 이런 마음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강물은 몇 분의 일 초라는 짧은 시간에도 결코 같은 강물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강물이 어제 본 강물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강물은 아마도 이미 큰 바다로 들어 갔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마음을 관통하며 우리 마음이 절대 독립된,

그 자체만의 정체성이 있는 하나의 실체가 아님을 보여주는 무수한 생각도 강물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의 깊게 점검해 보자.

과거의 생각들은 시신과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다.

미래의 생각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생각들은 우리를 꽉 잡고 있으나 빛깔도 모습도 없으며 결코 그 위치를 정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절대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

게다가 논리적으로 볼 때 과거의 생각, 현재의 생각, 미래의 생각은 서로 만날 수 없다.


만약 과거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 사이에 어떤 지속성이 있다면,

그건 과거의 생각이 아직도 있으며 스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니면 현재의 생각이 과거에 속해 있어 지금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만약 과거가 이렇게 현재까지 확장될 수 있다면 그 결과 미래도 역시 이미 여기 와 있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생각의 진정한 본성을 모르기 때문에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도록 놓아두고, 

심지어 여러 감정과 혼돈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할 때까지 놓아두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우리를 덮치는 추론과 감정의 물결을 차분히 평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분노는 가장 상서롭지 못한 감정 중 하나로서,

우리가 지닌 모든 좋은 품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

화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뱀을 그저 보기만 해도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은 뱀의 생김새 자체가 공포스러워서가 아니라,

뱀이라는 동물이 거의 언제나 성을 낼 수 있고 우리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마음이 적의를 품기 쉬운 것은 오직 악의적인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쌓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알어차리고

그 화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화는 저절로 잣아들고

우리는 항상 남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처음 일어난 적개심이 두 번째 생각을 낳도록 놓아두면 잠깐 사이에

우리는 모든 통제를 잃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어서라도 적을 파멸시키려 나서게 된다.

                                                                    -딜고 켄체 린포체- 

                                                             -티베트 지혜의 서(담앤북스)-